▲영화 <젖꼭지 3차 대전>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03.
이 영화에서 중심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젖꼭지이지만, 이가 상징하는 것은 여성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평등에 해당된다. 이 지점의 문제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억압되고 제한되어 왔음을 설명하고 강조하기 위해 백시원 감독은 영화 속에 여러 레퍼런스들을 심어 놓는다. 가수 박지윤의 성인식이 유행하던 때에 배꼽티 금지령이 있었던 사실과(이때는 여성의 배꼽 노출이 문제가 되어 모자이크를 당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 보다 더 오래 전인 가수 김완선씨의 시대에는 찢어진 청바지조차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지금 여성과 달리 남성이 자유롭게 상의를 탈의하고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근거를 제시한다. 1930년대의 미국에서는 남녀 모두가 바닷가에서 상의를 탈의할 수 없는 법이 있었지만 남성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70년간 여성의 불편함에 대해서는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두 젖꼭지의 운명이 달라지게 된 것이라는 의미다. 젖꼭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는 자유로울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영화가 남녀 갈등을 조장하거나 성차별만을 부각하기 위한 작품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성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용 피디의 반대쪽에 서 있는 마 부장이라는 인물은 극적인 대립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에 가깝다. 오래된 가치만을 고수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은 묵살하는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이다. '모든 남성이 그렇다'는 흑백에 가까운 시선을 이 영화가 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용 피디 곁에서 함께 싸우고 힘이 되는 조연출 호진(장요훈 분)의 존재로 증명이 된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는 남성이 어떻다던가, 여성이 어떻다는 식의 대사는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
04.
영화가 구조화한 세 단계에 걸친 두 사람의 대립은 그런 마 부장의 시선과 주장이 얼마나 편협하고 기울어져 있는 것인가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그는 처음에 여성의 노브라와 유두의 존재가 성상품화에 해당하고 심의에 벗어난다며 개인의 주장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곧 젖꼭지라는 단어조차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다며 그 글자가 주는 뉘앙스 자체마저 불쾌하다며 이 주장에 명확한 근거나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선정적인 젖꼭지와 신성한 젖꼭지가 따로 있다거나, 남자아이의 젖꼭지는 괜찮고 여자아이의 젖꼭지는 문제가 있다는 식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갈등이 심화되고 용 피디의 의견에 합당한 근거가 더해질수록 마 부장의 주장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한다.
반대의 위치에서 마 부장의 압력을 조금씩 피해 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가는 마 피디의 행동에는 익살스러우면서도 눈물 나는 구석이 있다. 심의 규정이라는 직장 내 시스템과 상사의 고루한 입장이 자신의 의견은 물론 여성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상황. 직접 들이받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현실적인 부분과 실리적인 부분 모두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 때문이다. 영화가 이런 방향으로 진행되는 까닭은 이 작품이 코미디 장르로 표현되고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 지점의 문제가 개인의 노력으로 단시간에 해결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