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과 2021년 'tvN 목요스페셜'로 방송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조정석과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배우들 사이에서 조금은 낯선 배우 한 명이 '99즈 5인방'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99즈'의 홍일점이자 신경외과 부교수 채송화를 연기했던 전미도였다. 전미도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할 때만 해도 매체연기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뮤지컬 쪽에서는 이미 많은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스타배우였다.

올해 상반기를 강타했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는 메인빌런 박연진(임지연 분)의 남편 하도영 역의 정성일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어딘가 모르게 유재석을 닮은 듯하면서도 진중하고 차분한 매력을 가진 재평건설 대표 하도영은 문동은(송혜교 분)의 복수를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도영 역의 정성일 역시 10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높은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배우였다.

사실 뮤지컬 배우들은 무대에서 연기와 노래, 안무를 모두 소화하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재들이 많다. 따라서 한때 드라마나 영화 쪽에서 뮤지컬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들을 섭외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이는 할리우드에서도 일찌감치 시작됐는데 1960년대 뮤지컬 영화의 레전드로 꼽히는 <메리 포핀스>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 줄리 앤드류스 역시 대표적인 뮤지컬 배우 출신 스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국내에서만 4번에 걸쳐 재개봉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 받은 고전 영화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국내에서만 4번에 걸쳐 재개봉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 받은 고전 영화다.(주)팝엔터테인먼트
 
인기 뮤지컬배우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1935년 영국에서 태어난 앤드류스는 10대의 어린 나이부터 뮤지컬 무대에 오를 정도로 일찌감치 그 재능을 인정 받았다. 13살 때는 영국 국왕 조지 6세를 위한 공연에서 'God Save the King'이라는 노래를 독창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19살이 된 1954년부터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앤드류스는 <마이 페어 레이디>와 <신데렐라> <카멜롯> 등의 뮤지컬에 출연하며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앤드류스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영화화될 때 영화 출연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일라이자 둘리틀 역을 고 오드리 헵번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앤드류스에게는 곧바로 디즈니가 기획하던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를 통해 영화출연 기회가 찾아왔다. 디즈니는 당시 만삭이었던 앤드류스가 출산할 때까지 기다렸고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에서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앤드류스에게는 아직 '한 방'이 더 남아 있었다. 바로 <메리 포핀스>가 개봉하기 전부터 촬영을 시작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앤드류스가 주인공 마리아 역을 맡아 뛰어난 노래실력과 함께 사랑스런 연기를 선보인 <사운드 오브 뮤직>은 82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2억 8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5개 부문을 휩쓸었다.

1966년 <하와이>와 <찢어진 커튼>을 연속으로 흥행시킨 앤드류스는 1970년대 영화에서 잇따라 쓴맛을 보며 슬럼프에 빠졌다. 앤드류스는 1982년 <빅터/빅토리아>를 통해 건재를 과시했지만 196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진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후반 목 수술 도중 의료사고로 인해 앤드류스의 최대장점이었던 노래실력을 잃게 됐다. 하지만 앤드류스는 2001년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 앤 해서웨이의 할머니로 출연하며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대 이후 성우 활동도 겸하고 있는 앤드류스는 <슈렉> 시리즈에서 릴리안 왕비, <슈퍼배드> 시리즈에서 주인공 그루의 어머니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2018년 <아쿠아맨>에서는 괴수 카라덴의 목소리를 담당하기도 했다. <메리 포핀스>의 상징과도 같은 배우 앤드류스는 지난 2018년 <메리 포핀스 리턴즈>가 제작될 때 새로운 메리 포핀스를 연기하는 후배 에밀리 블런트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카메오 출연조차 거절하기도 했다.

물가상승률 적용시 역대 흥행 6위로 상승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표 OST <도레미송>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개사돼 오늘날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표 OST <도레미송>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개사돼 오늘날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주)팝엔터테인먼트
 
<사운드 오브 뮤직>은 동명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오스트리아 잘츠부크르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음악을 사랑하는 말괄량이 견습수녀 마리아(줄리 앤드류스 분)가 원장수녀의 권유로 해군명문집안에서 7남매를 돌보는 가정교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다뤘다. 올해로 개봉 58년이 지난 옛날 영화지만 현재까지도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불리며 세계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무려 174분의 긴 런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다. 영화 중반에는 폰 트랩 대령(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리아가 아이들과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폰 트랩가를 떠난 후 갑자기 영화가 멈추기도 한다. 이는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인터미션'으로 불리는 쉬는 시간으로 과거에는 런닝타임이 긴 영화에도 '인터미션'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영화의 흐름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인터미션'이 거의 사라졌다.

뮤지컬 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음악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많은 음악들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그중에서도 대중들에게 매우 익숙한 두 곡이 관객들의 귀를 사로 잡는다. 하나는 영화 중반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다는 아이들을 위해 마리아가 처음 가르쳐 주는 <도레미송>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각 나라의 언어로 개사해 부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노래다.

또 하나의 OST는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제를 관통하는 노래 '에델바이스'다. "내 조국을 축복해 주렴(Bless my Homeland Forever)"이라는 마지막 가사 때문에 많은 이들이 '에델바이스'를 오스트리아의 민요나 국가 정도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1950년대 후반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영화에서는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이 처음으로 감정을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82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8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당시에도 제작비의 34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흥행성적은 2022년 물가를 기준으로 무려 28억 8400만 달러까지 올라간다. 이는 역대 영화들 중 전체 6위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는 영화는 인플레이션 적용시 41억 9200만 달러로 흥행성적이 치솟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다.

숀 코너리 제치고 폰 트랩 대령 연기한 배우
 
 폰 트랩 대령이 두 차례에 걸쳐 부르는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민요가 아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위해 창작된 노래다.
폰 트랩 대령이 두 차례에 걸쳐 부르는 <에델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민요가 아닌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위해 창작된 노래다.(주)팝엔터테인먼트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였던 폰 트랩 대령 역은 고 숀 코너리와 고 율 브리너 같은 쟁쟁한 스타배우들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크게 유명하지 않았던 고 크로스토퍼 플러머에게 돌아갔다. 이는 원작의 폰 트랩 대령과 배우 플러머의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한 고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고집이었다. 다만 플러머는 노래실력이 그리 뛰어난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노래 부분은 대역을 사용했다.

폰 트랩 대령은 고집이 세고 뼛속까지 군인정신이 박힌 인물로 7명의 자식들 역시 군대식으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그가 출장을 가장해 애인을 만나러 떠난 사이 아이들은 마리아의 교육방식에 감화됐고 아빠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에델바이스>를 열창한 후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플러머는 2000년대 이후에도 <알렉산더>와 <내셔널 트레저>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사실 영화 속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은 고 엘리너 파커가 연기한 슈레이더 남작부인이었다. 대령과 교제하는 남작부인은 남편과 사별한 인물로, 마리아가 대령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눈치챈다(심지어 마리아 자신보다도).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자 마리아가 돌아온 후 대령에게 이별을 고한다. 굉장히 쿨한 캐릭터지만 "나는 나를, 하다 못해 내 돈이라도 원하는 사람이 필요해요"라는 남작부인의 대사는 꽤나 서글프게 들린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고 로버트 와이즈 감독 쥴리 앤드류스 고 크리스토퍼 플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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