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나 때문에> 스틸컷
호우주의보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성별이나 인종, 능력과 국가 등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있다. 이 차별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체로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도록 속인된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차별을 받는 개인이 다른 집단이나 타인의 도움을 얻지 못할 경우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게 되는 이유다. 차별이라는 단어로 한번 낙인이 찍히고 난 후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직 세상에 맞설 힘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도 모자라고 어떤 방식으로 빠져나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달리 감독의 영화 <한나 때문에>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문제로 어른들의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나(유지아 분)는 다문화 가정 출신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이집 다른 원생들의 부모로부터 모진 대우를 받는다. 겉으로는 자신이 차별하는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아이와 떨어뜨려 놓기 위해 뒤에서 애를 쓴다.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는 한나의 반을 맡고 있는 선생님 유영(연금선아 분) 뿐. 영화는 차별적인 시선과 대우로부터 한 아이를 지켜내기 위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한다.
02.
모든 어른이 아이 전부를 보호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어떤 어른은 특정한 아이만을 보호한다. 자신의 아이만 귀하고 사랑스러운 부모들. 같은 반 친구인 우진(김의연 분)의 엄마 역시 그중 하나다. 자신의 아들이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한나와 같은 반에 다녀야 하는 사실을 불쾌해한다. 꽤 강경한 쪽이다. 아들의 언어 발달이 느린 이유도 한나와 친하게 지내는 동안 옮은 것이며, 이 어린아이가 나쁜 의도로 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소문까지 퍼뜨린다. (영화에서 설명이 되는 것처럼 실제로 유아의 자위행위는 촉감이나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것일 뿐 어른의 행위와는 전혀 다르다.) 모두 한나를 어린이집에서 내쫓기 위한 모함이다.
어린이집의 원장과 다른 선생님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가 다른 문화에서 와서 배울 게 많다는 명목으로 제 나이보다 더 어린 친구들의 반으로 데려간다. 내보내지 않으면 어린이집을 옮기겠다는 다른 부모들의 협박에 나름의 중재안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피해를 받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는 한나일 뿐이다. 영화가 내내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가해와 폭력 앞에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있을까.
어른들의 이 추악한 행태를 몰라서는 결코 아니다. 돼지코 모양을 하며 자신이 못생겼냐며 묻는 한나의 모습에는 그런 어른들에 의해 할퀴어진 마음이 묻어 있다. 지극히 어른들의 사정에 의한 것이며 또 어른들의 폭력에 의한 것이다. 다시, 내내 말이 없던 한나가 유일하게 유영에게 말을 건네 오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아이도 안다. 누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인지, 또 누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진짜 어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