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컷
(주)디스테이션
02.
사람의 목숨에 경중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두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극 중 명지와 지은의 슬픔은 동일하면서도 조금 다른 무게를 갖는다. 동생을 원해서 잃은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에 가까웠다는 점에 놓여있는 지은의 슬픔과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개인의 선택에 놓여있는 명지의 슬픔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다. 실제로 이 부분은 같은 유가족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지은이 명지에 대해 평생의 부채 의식을 갖게 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되긴 했지만 동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손을 건넨 사람.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 선택으로 인해 평생의 슬픔을 얻게 된 명지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조그맣게 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지은이다.
황망한 상실 이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침대에 누워 있는 신체적 모양으로 동일하게 그려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적어도 영화적으로는 두 사람의 감정이 다르지 않음을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하고 표현하는 방식이자, 슬픔의 모양이라는 것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림이기 때문이다(지은의 경우에는 동생의 사고로 인한 충격 때문에 일어난 편마비 증상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회복에 대한 의지를 잃고 침대 위에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모습도 오래 표현된다). 물론 두 사람이 누워있는 장면의 의미가 긍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의 시간 속에 여전히 발이 묶인 채로 슬픔과 고통을 계속해서 묻어가는 과정이며 이제 사라져 버린 존재만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
03.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조금 다르다. 한 사람은 낯선 도시에서의 경험과 장면들을 통해, 또 한 사람은 곁에 남은 다른 사람의 애정과 도움으로 조금씩 회복해 간다. 명지 또한 자신이 향했던 도시에서 오래된 친구 현석(김남희 분)을 만나게 되지만 그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존재에 의한 회복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동생의 친구인 혜수(문우진 분)의 적극적인 보살핌과 도움을 받게 되는 지은의 경우가 곁의 누군가로 인해 새로운 의지와 희망을 얻게 되는 쪽이다. 함께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도, 보육원에서 곧 내쫓길 상황에 놓인 지은을 혜수가 살뜰히 보살피는 것도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어느 쪽이든 이 모두는 누구에게나 과거의 상실이나 아픔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지 이를 딛고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고자 함이다.
사촌 언니의 제안을 빌려 영화가 명지를 폴란드 바르샤바라는 낯선 공간으로 데려다 놓는 이유는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려내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집안 곳곳에 남겨져 있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조금이나마 잊기 위한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감독은 그녀의 신체에 '장미색 비강진'(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이라는 생소한 피부병을 아로새기며 단지 공간을 환기하는 것만으로 한 사람의 슬픔을 지워낼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 핸드폰의 A.I 기능과 함께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의 자리를 떠올리던 장면들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또렷해진다. 약국에서 사 온 약을 그 상처 위에 문지르는 행위와 남편의 빈자리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파하는 모습 사이에 서 있는 그녀. 이후 아직 정확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친구 현성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조차 마치 사고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명지의 모습에는 어떤 불안까지도 엿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