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슬픔의 삼각형>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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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랙코미디 영화에서 놀라운 점이자 호불호가 결정적으로 갈려지게 될 포인트는 2부 중반 요트의 마지막 순간으로 향하는 전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난장판이 된 선상만찬 이후 다들 멀미와 구토를 연발하며 흩어진 가운데 오직 둘만이 비위도 좋게 만취한 상태로 자리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그 둘은 러시아 출신 비료재벌 자본가 승객 VS 미국 출신 사회주의자 선장이다.
2부 내내 다른 간부 승무원들의 재촉에도 몸이 안 좋다며 선실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던 선장은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승객과의 장광설 대결에서 열의에 가득 차 있다. 선장은 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직무는 유기한 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일관하지만 오직 승객과의 '입 배틀'에는 눈을 반짝이며 물러서지 않는다. 둘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온갖 문장을 인용하며 술주정을 벌이는 가운데 부자 승객들은 차례로 토사곽란을 일으키며 화면에 온통 구토를 쏟아낸다. 해당 장면은 얼핏 미국 슬랩스틱 코미디 장르에서 종종 등장하는 화장실 유머코드와 연결되듯 보이지만 그 실제 용도는 전혀 다르게 사용된다. 현학적으로 다가오는 주정과 토론의 갈림길 같은 대화와 끝이 없을 것처럼 연속되는 구토의 향연은 서로 정확히 연결되어 있다.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어록을 줄줄이 인용하며 자본주의 질서를 찬양하는 구소련 출신 '똥 팔이' 비료재벌 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 및 미국과 유럽의 3세계 수탈 및 위선을 소리 높여 고발하는 미국 출신 호화유람선 선장의 설전은 뜯어보면 노골적으로 구현되는 근·현대 서구사상사 논쟁 그 자체이다. 특히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공산주의자) 선언' 해석에 대한 설전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주제의식과 잇닿아 보인다. 공산당 선언은 사실상 작품의 다른 묘사와 설정 전체를 아우르며 영화의 설정과 전개를 결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전혀 연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1848년에 발행된 소책자에서 '자본주의는 모든 구멍으로 오물을 쏟아낸다!'는 예언적 구절과 <슬픔의 삼각형> 영화 속 분출되는 토사물(과 <기생충>을 떠올리게 하는 '분뇨의 역류'까지) 묘사는 하나로 통합되는 체험으로 전환된다.
선장 역할을 맡은 명배우 우디 해럴슨의 극중 역할은 사실상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그 자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유럽 정치영화'의 맥을 이어가는 작품세계를 가진 감독은 복지국가 북유럽 백인 중장년 남성 지식인이 '캐비어 좌파'(혹은 '강남 좌파')로 자신을 규정하고 신랄하게 자신이 누리는 환경에 대해 성찰하지만 세상을 바꾸거나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냉소 가득한 선장 캐릭터로 고스란히 표상해낸다. 즉 선장은 감독의 '스피커'이자 '오너캐' 자체인 셈이다.
국제영화제들에서 각광을 받지만 대중적으로는 '먹물 지식인의 한계'를 구현한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곤 하는 경향의 영화들 중 근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슬픔의 삼각형>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돌출된 존재이자 '똥 팔이' 재벌 외에는 다른 이들과 연결고리가 부재한 이 캐릭터의 존재 이유는 그것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몰락해가는 세계를 응시하지만 그 세계 밖으로 빠져나와 신세계를 개척할 용기는 없는 서구 지식인의 현주소를 표상하는 존재다.
반대로 다른 모든 이들과 연결성을 갖지만 선장의 장광설을 실제로 행동으로 구현하는 존재는 하급 승무원 애비게일이다. 그는 2부에선 화장실 청소, 즉 '똥'을 치우던 존재감 제로의 캐릭터였다. 하지만 3부에서 애비게일은 모든 타인들의 생사여탈을 손에 거머쥔 '캡틴'이다. 모두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자신의 명줄이 걸렸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이 생에서 처음 얻은 권력과 신분이 어떤 위상인지 깨닫게 되기에 이른다.
선장을 대신해 그와 마지막까지 입씨름을 벌이며 사상은 전혀 다르지만 지적 유희의 쾌감으로 부대꼈던 '똥 팔이' 러시아 재벌은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해 애비게일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필사적으로 영합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정확한 것이다. 소련 체제에서 공산주의를 배웠지만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러시아 신흥재벌들처럼 자신이 그저 관리책임을 지던 '콤비나트'(공업단지)를 사유화한 뒤, 모두가 하찮게 여기지만 식량 생산에 필수불가결한 비료산업의 거물로 떠오른 이 재벌은 소련 붕괴 때 기민하게 발휘했던 판단력을 다시금 발휘한다. 그가 시장을 장악하고 자신이 타고 있던 수천억 대 요트를 사버리겠다며 제멋대로 날뛸 수 있던 건 그가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섬에서 그 권능을 가진 이가 누구인지는 누가 봐도 빤한 것이다.
'멋진 신세계'라는 환상에서 벗어났지만 대안은 못 찾은 지식인의 성찰
애비게일은 자신이 가진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통해 8명의 단출한 원시 공동체 내에서 권력을 획득한다. 여성이 중심된 모계 구조다. 금력과 육체적 힘으로 군림하던 남성들이 여성들의 동맹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그렇게 구현된 공동체는 결코 평등한 목가적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애비게일은 1부 속 칼과 야야가 패션업계 구도 내에서 상대적으로 역전된 처지 때문에 일어나던 위계문제를 제기한다. 야야가 업계 내 우월적 지위로 칼을 수행비서처럼 부려먹던 것에 비해, 3부 속 애비게일은 생존을 위한 식량과 편의를 무기로 야야의 방관 하에 칼을 분할 점유한다. 1부와 3부 핵심설정이 수미상관으로 연결되는 순간이다. 난삽하게 펼쳐지는 것 같은 짧지 않은 이야기가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 서로 거미줄처럼 접속되어 있는 설정인 것이다. 모든 게 다 계산되어 있구나 하는 오싹함과 경탄이 동시에 발현된다.
물론 3부의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애비게일 개인에게는 한풀이 겸 아마 일생 처음으로 자신이 주도권을 쥔 삶의 시간일 테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논의되는 입주 가사도우미 외국인력 수입 관련 부정적인 입장에서 거론되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사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과거 1960~1970년대 한국 신축아파트 설계에는 현관 옆에 창고 같은 작은 방이 있었다. 바로 '식모' 방이다. 그렇게 필수업무를 수행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이제 외국인-타자가 대신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핵심은 '존재하지만 주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존재다. 애비게일은 비록 이전의 문명세계에서 자신이 누리던 혜택은 부재하지만 훨씬 만족감이 높은 섬에서의 삶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이는 원래의 질서를 회복하고 싶다. 현재 애비게일이 지닌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징후도 포착된다. 채집과 낚시에서 수렵으로 이행되면서 인류 초창기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장면이 등장하고 그 직후에 공동체의 지속 여부를 놓고 결정적 전환점이 영화 속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뼈대를 이루다시피 집요하게 강조되는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5단계 이론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체제를 뒤집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과 노력을 수반하는 작업인지, 막상 전복된 상황에서 더 나은 세상이 금방 도래하는 것도 아니라는 묵시록적인 예지도 결론으로 향하는 데 한몫 보탠다.
3부에 살아남은 모두가 (막을 수 없어 뵈는) 자본주의 구질서 복귀에 동일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칼이 애비게일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본인의 입장은 흥미로운 상상을 펼치게 만든다. 반대로 야야가 애비게일에게 대하는 태도는 이 영화가 끝난 후 등장인물들에게 닥칠 미래를 예측하게 만드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주는 충격력은 유사 장르의 전형성을 뛰어넘어 관객을 도발한다. 그 도발에 대한 관객 각자의 태도를 통해 <슬픔의 삼각형>은 고도의 냉소를 띤 문명론 성찰이냐, 아니면 고장난 테이프처럼 반복해 답습되는 정치성 가미된 과잉된 설정 유희냐 중 일방향으로 구부러질 테다.
<작품정보> |
슬픔의 삼각형 Triangle of Sadness
2022|스웨덴,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그리스|코미디/드라마
2023. 05. 17. 개봉|147분|15세 관람가
감독/각본 루벤 외스틀룬드
주연 샬비 딘(야야 역), 해리스 디킨슨(칼 역), 우디 해럴슨(토마스 스미스 역),
돌리 드 레온(애비게일 역), 즐라트코 부리치(드미트리 역), 비키 베를린(폴라 역)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공/공동배급 ㈜플레이그램
공동배급 메가박스중앙(주)
공동제공 ㈜하이스트레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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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5회 유럽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즐라트코 버릭), 각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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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굴드바게상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분장상, 의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