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와 <헤어질 결심>의 두 남자 주인공 송강호와 박해일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배우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더 있다. 바로 2003년과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함께 출연했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와 용의자 관계였던 두 사람은 3년 후 <괴물>에서는 (사이가 썩 좋지 않은) 형제 사이로 출연했다.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송강호와 박해일 모두 철저하게 영화에만 전념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지난 1990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송강호는 지금까지 영화로 1억 1300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아직 세상에 공개된 드라마는 한 편도 없었다(송강호의 첫 드라마 <삼식이 삼촌>은 아직 편성이 되지 않았다). 박해일 역시 무명 시절 시트콤 단역 출연과 4분짜리 단막극, 자료화면으로 등장했던 <아홉수 소년>을 제외하면 정식으로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다.

송강호와 박해일처럼 배우 커리어 내내 영화에 전념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에 드라마 위주로 활동하는 배우들도 적지 않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천서진 역으로 2021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소연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소연의 많지 않은 영화 커리어 중엔 청소년 관객들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1997년에 개봉했던 하이틴 판타지 영화 <체인지>가 있었다. 
 
 청소년배우들이 주축이 됐던 영화 <체인지>는 서울 16만 관객을 동원하며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청소년배우들이 주축이 됐던 영화 <체인지>는 서울 16만 관객을 동원하며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한국영상투자개발(주)
 
올해로 연기경력 30년 차 된 베테랑(?) 배우

중학생 시절이던 1994년 이정재, 김희선 주연의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김소연은 성숙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드라마와 예능, CF를 넘나들며 다방면에서 활동하던 김소연은 1997년 <사춘기>로 유명했던 정준과 함께 영화 데뷔작 <체인지>에 출연했다. <체인지>가 개봉했던 1997년 1월 김소연의 나이는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기 전인 만 16세에 불과했다.

김소연이 벼락을 맞고 문제아 강대호와 몸이 바뀌게 되는 모범생 고은비를 연기한 <체인지>는 겨울방학 시즌에 개봉해 청소년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서울에서만 16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김소연은 1998년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오지명 원장의 셋째 딸이자 권오중의 여자친구 오소연을 연기했는데 당시 극 중에서 오소연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성인이 된 후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통해 악역 허영미 역을 멋지게 소화한 김소연은 < 2004 인간시장 >과 <가을 소나타>, 영화 <칠검> 등이 모두 저조한 성적에 머물며 슬럼프에 빠졌다. 하지만 김소연은 2008년 드라마 <식객>을 통해 안정된 연기를 선보였고 2009년에는 대작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여전사 김선화를 연기하며 이미지 변신과 함께 제법 길었던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김소연은 2014년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여군특집>에 출연해 체력과 운동능력은 다소 부족해도 강한 멘탈로 이를 극복하는 정신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2016년 MBC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에 출연한 김소연은 이 작품을 통해 만난 배우 이상우와 2017년 결혼식을 올렸고 2019년엔 KBS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 출연했다. 하지만 김소연의 커리어는 2020년부터 가장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김소연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3개의 시즌에 걸쳐 제작된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이브의 모든 것> 이후 20년 만에 악역 캐릭터 천서진 역을 맡아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했다. 2021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과 SBS연기대상 대상을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달린 김소연은 지난 4월 종영한 <모범택시> 시즌2 마지막회에 카메오로 출연해 멋진 액션연기를 선보였다. 현재는 지난 6일 첫 방송된 tvN드라마 <구미호뎐 1938>에 출연하고 있다.

몸을 사리지 않은 김소연과 정준의 열연
 
 <체인지>가 영화 데뷔작이었던 김소연은 강대호와 고은비의 영혼을 오가는 연기로 열연을 펼쳤다.
<체인지>가 영화 데뷔작이었던 김소연은 강대호와 고은비의 영혼을 오가는 연기로 열연을 펼쳤다.한국영상투자개발(주)
 
영화 <체인지>의 원작은 일본의 야마나카 히사시 작가가 쓴 창작동화 <내가 그 녀석이고 그 녀석이 나이고>다.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었던 원작동화가 1982년 일본에서 <전학생>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면서 중학생으로 각색됐고 1997년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면서 다시 고등학생으로 각색됐다. <체인지>는 개봉 직전 표절 의혹이 불거지자 뒤늦게 제작사에서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과 <울랄라 부부>, 영화 <내 안의 그 놈>처럼 창작물에서 주인공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 몸이 바뀐다는 '영혼 체인지'는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체인지>가 개봉했던 1997년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영혼 체인지'가 나온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 청소년 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체인지>가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체인지>의 두 주인공 정준과 김소연은 영화 데뷔작이었음에도 영혼이 바뀐 강대호와 고은비 역을 멋지게 소화하며 <체인지>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했다. 영혼이 바뀐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다소 과장된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었지만 정준은 TV드라마를 통해 단련된 연기를 <체인지>에 쏟아 부었다. 김소연 역시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했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관객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체인지>에서는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자 대호와 은비가 영혼을 되돌리기 위해 수업시간에 학교 시계탑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날이 개면서 두 사람은 끝내 벼락을 맞지 못한다. 사건이 정리된 후 모범생 은비는 담임교사(이승연 분)와 조용하게 상담을 하지만 문제아 대호는 학생주임(이경영 분)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다. 요즘엔 상상하기 힘들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교육을 가장한' 교사들의 폭력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체인지>는 영화만큼 인기 작사가 박주연이 노랫말을 쓰고 신인가수 조장혁이 만들고 부른 동명의 주제가 <체인지>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에서는 학교 축제 장면에서 (강대호의 영혼이 들어간) 은비가 (은비의 영혼이 들어간) 대호를 위해 불렀다. 당시 김소연과 조장혁은 개봉 전 홍보를 위해 음악프로그램에서 <체인지>를 불렀는데 김소연은 당시 그녀와 루머가 있었던 타 가수 팬들의 야유 때문에 무대를 소화하는 데 큰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경영-이승연 등 화려한 조연과 카메오
 
 <체인지>는 선생님 역의 이경영(오른쪽)과 이승연 등 조연 캐스팅이 유난히 화려했던 영화였다.
<체인지>는 선생님 역의 이경영(오른쪽)과 이승연 등 조연 캐스팅이 유난히 화려했던 영화였다.한국영상투자개발(주)
 
<체인지>를 연출한 이진석 감독은 당시 MBC 드라마국에 소속된 PD였다. 따라서 <체인지>는 여느 청소년 영화들에 비해 매우 화려한 조연 및 카메오 캐스팅을 자랑한다. 현재 <낭만닥터 김사부3>에서 돌담병원 외상 센터장이자 김사부의 라이벌 차진만 교수를 연기하고 있는 이경영이 출세지향형의 학생주임 역을 맡았다. 당시 많은 영화에서 주연을 도맡아 하던 이경영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상당히 작은 역할이었다.

대호의 영혼이 들어간 은비의 담임교사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 시청률(65.8%)을 기록한 드라마 <첫사랑>의 여주인공이었던 이승연이 맡았다. 당시 연기자로서, 그리고 패션리더로서 전성기를 달리던 이승연이 학생이 주인공인 청소년 영화에서 선생님 역으로 출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승연은 1995년 이진석 PD가 연출했던 드라마 <호텔>에 출연했던 인연으로 기꺼이 <체인지> 출연을 결정했다.

<체인지>는 짧은 출연으로 웃음을 줬던 카메오들의 면면도 대단히 화려했다. 당시 한국영화의 원톱배우였던 박중훈은 학교의 전기를 수리하는 인부로 출연해 학생들 앞에서 코믹한 춤을 선보였고 김혜수는 강대호를 치한으로 오해하는 지하철 승객으로 등장했다. 이 밖에 변우민이 대호, 은비가 생리대를 구입하는 약국의 약사로, 중성적인 이미지로 사랑 받았던 이정섭은 대호와 은비, 그리고 친구들이 모인 카페의 사장으로 등장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체인지 이진석 감독 김소연 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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