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빽도>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01.
설날, 친척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정민(정용훈 분)과 수민(이도은 분) 남매는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수민은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해 백수로 지내는 중이고 정민 역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삼수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큰집에 즐비한 어른들의 화려한 과거가 두 사람의 어깨를 더 무겁게 짓누른다. 서울대, 서울대, 그리고 또 서울대다. 어지간하면 이 두 사람도 집안 어른들의 걸음을 따라 쉽고 편하게 인생을 살아갈 법도 할 텐데, 그 뛰어난 유전자에 누가 못된 장난을 쳤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집안에서 정민과 수민 남매가 미운오리새끼인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한참 분위기가 서먹해질 무렵 사촌동생 재영(태경 분)이 의기양양하게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한 손에는 빛나는 서울대 합격통지서가 들린 채로다. 당연하게도 가족 어른들은 난리가 난다. 언제 준비했는지 어느새 두 손엔 플래카드까지 들렸다. 환대도 이런 환대가 없다. 이때까지 뜨거운 눈총만 받으며 잘못한 것도 없이 잘못한 사람처럼 무릎 꿇고 앉아 있던 두 남매에게는 이 장면이 못내 서운하다.
집안 어른들의 대를 이어 한국 최고의 명문대학에 당당히 입학한 재영과 인생이 영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정민, 수민 남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는 사소한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펼쳐지게 된 세뱃돈 전부를 건 내기 윷놀이 한판으로 옮겨가게 된다. 보통의 경우 친척들이 둘러앉아 던지는 윷놀이가 친목과 화합의 상징이라면, 이 영화 <빽도> 속의 윷놀이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적통(嫡統)인 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겨루는 유전자 사이의 치열하고도 유치한 대결이랄까.
02.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영화 <빽도>는 성적제일주의가 야기하는 많은 문제들을 담고 있는 무거운 작품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 문제가 하나의 가족 내에서 벌어짐으로 인해 더 쉽게 비교되고 큰 차별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이야기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코미디 형식을 빌려 그려낸다는 것이다. 극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이를 다루는 형식은 가볍게 가져감으로 인해 전체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모습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부분들 모두가 그렇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거리는 사촌 동생 재영의 모습은 물론 두 남매가 조금은 과하게까지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들조차 이 영화가 차용하고 있는 형식의 문법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이후 펼쳐지는 윷놀이 장면을 통해서도 윷가락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경쾌한 소리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묵직한 타악곡,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의 속도감 등을 통해 그 호흡을 잃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의 연출은 30분이 채 되지 않는 단편 영화의 특성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런 매체의 특성을 감독이 잘 이해하고 활용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