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수림의 꽃다발>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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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림의 꽃다발에는 있으면 좋은 감정부터 있지 않아도 좋았을 감정까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감정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처음의 시작은 동운의 제대를 축하하는 아주 기분 좋은 감정이다.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는 해방감은 물론, 제한된 공간에 갇혀 고생했을 남자친구에 대한 축하, 그리고 특별한 제약 없이 이제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겠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까지 말이다. 그리움과 애틋함, 사랑과 같은 감정은 기본 옵션이다.
이런 처음의 감정들만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현재 수림이 놓여있는 상황과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까지 겹치면서 남자친구가 제대를 하기도 전에 꽃다발에는 아쉬운 마음들이 함께 놓이게 된다. 돈이 충분하지 않아 제일 좋은 꽃다발을 해주지 못한다는 약간의 미안함과 서글픔, 꽃다발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여고생과 부딪히면서 떨어지고만 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속상함, 그리고 충분하지 못한 선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한 불안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 복잡한 꽃다발을 들고 남자친구가 전역을 하는 부대 앞으로 향한 여자친구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영화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포착하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새벽에 꽃시장을 다녀왔다고, 비어 보일까 봐 종이꽃을 몇 개 접어 꽂았다며 웃고 있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계속해서 남자친구의 표정을 살피는 그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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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수림의 마음을 동운이라도 잘 들여다 살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근처 모텔에서 사랑을 나누기는 했지만 적어도 첫 끼니는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줄 알았던 수림과 달리 동운은 배달을 시켜 먹자고 하고, 남들 다하는 전역 기념 촬영도 동운은 자신의 짧은 머리가 조금 길고 나면 찍고 싶다고 말한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수림이 미리 스튜디오에 예약을 다 해놨다고 이야기를 하는데도 말이다.
갑자기 두 사람의 모텔방으로 배달 주문된 커다란 꽃바구니도 수림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종이를 접으면서까지 모자란 부분을 채워온 자신의 장미 꽃다발과는 눈에 보이게 차이가 날 정도로 크고 화려한 동운의 꽃바구니가 고마우면서도 씁쓸하다.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지만 새벽 아침부터 꽃시장에 나갔던 자신의 어제가, 지갑을 몇 번이나 확인하며 최대한 맞춰 꽃다발을 마련해야만 했던 자신의 현실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탓이다.
결정적으로 꽃다발을 받을 때만 기뻐하고 그 후론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은 동운의 태도가 수림은 섭섭하기만 하다. 이제 3, 4일이 지나면 꽃잎이 떨어지고 말 수림의 값싼 장미. 물론 그가 그런 부분까지 모두 알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자신이 애써 선물한 꽃다발을 다시 제 손으로 물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반가울 수는 없지 않겠나. 침대에 누워 가장 편한 자세로 중국집에 짜장면을 주문하고 있는 그를 뒤로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