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돈을 갖고 튀어라> 스틸컷
전주국제영화제
02.
평소처럼 이어지던 두 사람의 역할극에서 유나가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오늘따라 정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더 진지하고 적극적인 데다 이유 모를 식은땀까지 계속해서 흘린다. 이에 함께 어울리던 여자의 마음속에는 이제껏 없던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점심을 먹으러 같이 나오던 길에 매고 있던 가방에 진짜로 훔친 돈이 있을 것만 같다.
영화의 서스펜션은 이 미묘한 불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장르와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언더커버 요원의 비밀스러운 잠입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마음이나 주인공만 모르는 비밀을 영화와 관객이 공유하고 있을 때 느끼게 되는 긴장감이랄까. 그런 조마조마한 상황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상황극이 그런 심리를 더욱 키운다.
앞선 지점이 의심과 불안의 시작점이라면 점심시간이라는 제한된 물리적 제약은 발화점이 된다. 평소와 달리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현실마저 부정하고 이 작은 연극을 계속 이어가려는 정식의 말과 태도로 두 사람의 달콤한 시간은 연인의 장난이라는 경계를 넘어서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던 유나의 불안은 이 시점에서부터 현실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이 돈이면 (진짜로 훔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보낼 수 있으니 바로 출국하자는 남자의 말도 더 이상 거짓만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