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
안 그래도 친미국가로 분류되던 한국이 미국·일본과 더욱 밀착함에 따라,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러시아도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한국을 막 대하는 국가가 종전에는 '1개'였지만, 지금은 그 숫자가 늘어나려 하고 있다.
북한은 통일도 필요 없다며 남한을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면서 압박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끼어들지 말라며 한반도 문제에도 점점 개입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경제적 손실이 크게 발생했다.
안보를 명분으로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했는데, 오히려 안보가 약해졌을 뿐 아니라 경제에서까지 손실이 발생했다. 미국과 일본에 편향된 외교의 결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고려 균형외교의 결실
KBS <고려거란전쟁>의 배경인 고려 전기는 이 점에서 모범이 될 만하다. 중국 송나라(북송)와 거란족 요나라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지향했고, 이로 인해 따돌림을 당하거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을 겪지 않았다.
고려는 제6대 주상인 성종(재위 981~997)부터 제8대 주상인 현종(재위 1009~1031) 때까지 요나라의 대규모 침공을 3차례나 받았다. <고려거란전쟁>에서도 묘사됐듯이, 현종 즉위 이후의 제2차 침공 때는 요나라 성종(요성종)이 4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침공했다.
이런 중에도 고려는 요나라와의 관계가 파탄나지 않도록 힘썼다. 요나라의 군사적 침공을 물리치면서도 동아시아 최강인 요나라의 위상을 받아들였다. 송나라가 아닌 요나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하고 요나라에 사대했다. 요나라에 사대한 것을 높이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요나라와 거듭 전쟁하면서도 요나라와 동맹한 것은 고려 조정이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애썼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 역시 존중했다. 요나라의 눈치를 살피며 송나라에도 사신을 파견해 군사협력을 추진하기도 했다. 어느 한 나라를 무조건 믿고 따르기보다는 정세가 바뀔 가능성에 항상 대비했던 것이다.
이 같은 균형외교는 고려가 송나라·요나라 양쪽의 배척을 받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았다. 도리어 고려의 국제적 위상을 고양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의 고려열전에 기록돼 있다.
고려열전은 송나라가 정화(政和)라는 연호를 쓰던 시기에 고려 사신을 "하국(夏國)의 위에 두었다"고 알려준다. 휘종황제 때인 1111~1117년 사이에 송나라가 서북쪽에 인접한 서하(西夏)보다 고려를 더 높이 예우했다는 설명이다. 서하보다도 높였다는 표현은 고려를 최고로 예우했다는 의미였다.
정화 연간이면 고려 현종이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뒤다. 특히 현종 시절에 첨예하게 전개된 균형외교의 결과로 고려왕조가 송나라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