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CJ ENM

tvN 토일 드라마 <정년이>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17일 방영된 12화로 종영된 <정년이>는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 삼아 1950년대를 풍미했던 여성 국극계의 주역이 되길 꿈꾼 정년이(김태리 분)의 파란만장 성장기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때론 이기심과 질투에 사로잡혀 잘못된 길로 접어 들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잡고 소리에 매진한 젊은 소리꾼 정년이와 더불어 허영서(신예은 분), 문옥경(정은채 분), 서혜랑(김윤혜 분), 강소복 단장(라미란 분) 등의 매력 넘치는 캐릭터는 매회 보는 이들을 사로 잡았다.

​젊은 세대에겐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여성 국극의 세계를 늘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던 <정년이>는 마지막 11회와 12회를 거치면서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엔딩 방식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적잖게 나눠지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올해 방영된 TV 드라마 중 <정년이>는 단연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진한 울림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마지막 공연... 그래도 포기는 없다

 tvN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C ENM

합동 공연 도중 국극에 흥미를 잃고 영화계로 떠나버린 문옥경의 이탈은 매란국극단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공연 중단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을 모두 떠 안게 되면서 빚더미에 오르게 된 국극단을 살리기 위해 강단장은 돈 마련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극단 단원들의 이탈까지 줄을 이으면서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

이를 막기 위해 영서는 자존심따윈 내버린 채 어머니를 만나 할머니가 자신의 몫으로 남긴 유산을 내달라고 요청한다. 대신 이번 공연 후 국극을 그만두겠다고 약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돈을 받을 강단장이 결코 아니었다. 결국 극단 건물을 팔기로 결정한 강단장은 오히려 속이 후련한 눈치였다.

정년의 위로를 받은 강단장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매란국극단의 기반은 이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야. 너도 있고 영서도 있고, 공연을 올릴 사람들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리고 진행된, 어쩌면 매란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쌍탑전설' 오디션에서 정년이는 특유의 소리로 심사위원과 현장 기자들, 단원들 모두를 감동시키면서 주인공 아사달 역을 맡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나는 일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왕자님 된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CJ ENM

그토록 갈망했던 '쌍탑전설'의 막이 오르는 당일, 정년이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강단장은 "'쌍탑전설'은 온전히 네 무대고, 무대를 마음껏 만끽하고 즐기면 된다"라면서 주인공으로서 갖게 될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줬다.

매란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다들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했던 초록이(오마이걸 승희 분) 등 동료들은 모두 손을 모아 소리를 질렀다.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보자는 정년이의 말처럼 국극단 식구들은 무대에서 감동의 연기로 현장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멀리 목포에서 딸의 자랑스러운 공연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문소리 분)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정년이의 소리에 눈물 바다를 이뤘다. 국극의 새로운 왕자가 탄생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드라마 <정년이>는 12회에 걸쳐 짧지만 의미있는 행보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녀노소 사로 잡은 <정년이>의 비결​

 tvN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CJ ENM

올해 상반기 <눈물의 여왕>, <선재업고 튀어> 등을 성공시킨 tvN이었지만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다양한 스타 배우들을 앞세운 작품들이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정체기를 탈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년이>를 통해 제대로 탄력을 받았고 폭발적이진 않지만 잔잔하게 사람들을 TV와 OTT 화면 앞으로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젊은 세대와 중장년층을 골고루 작품 속 매력에 흠뻑 빠지게끔 만드는 '세대 대통합'을 이룬 점은 <정년이>만의 색다른 비결이자 특징이다. 국극에 대한 어느 정도 이해력을 지닌 어르신뿐만 아니라 이에 생소한 2030 젊은 시청자들까지 아우르는 몰입감 넘치는 이야기들의 대향연은 여타 경쟁작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이뤄냈다.

주연을 맡은 김태리를 비롯한 모든 배우들이 저마다 혼신을 다한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구멍 없는' 캐스팅의 완성을 이뤄낸 점은 <정년이>의 자랑거리로 손꼽을 만했다. 원작과의 다른 전개, 캐릭터 삭제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존재했지만 이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던 건 역시 출연 배우들의 명연기 덕분이었다.

 tvN 드라마 '정년이'
tvN 드라마 '정년이'CJ ENM

오래전부터 소리 수업을 받았다는 김태리는 웹툰 원작자가 캐릭터 탄생에 참고했던 최적의 배우였음을 이번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각인시켰다. 처음엔 정년이의 훼방꾼 정도로만 여겨졌던 영서 역의 신예은, 감초 캐릭터를 넘어 걸그룹 보컬 능력자로서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초록 역의 승희, 원작 웹툰 대비 비중이 커진 주란 역의 우다비 등 젊은 출연진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 또한 매회 볼거리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정년이>가 재발견한 정은채, 김윤혜, 그리고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된 라미란, 특별출연 이상의 무게감을 선사한 문소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활약을 펼쳤다.

비록 '쌍탑전설' 무대 이후 영화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국극의 미래를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긴 듯한 에필로그 엔딩을 두고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지만, 이 또한 충분히 이해되는 선택으로 해석됐다. 정년이가 '쌍탑전설'을 통해 새로운 왕자님의 된 것처럼 드라마 <정년이> 역시 2024년 시청자들에겐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별이 됐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칼럼니스트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실립니다.
정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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