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남녀관계의 사랑만을 대우하는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를 향해 퀴어의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봅니다.[편집자말]

데이팅 앱을 처음 사용했던 건 2010년이었다.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기반으로, 근처의 게이들과 데이트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신문물이었다. 일종의 소셜 미디어 서비스였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일찍부터 데이팅 앱이 게이들에게 필요했던 건, 익명성을 기반으로 빠른 만남을 가질 수 있고, 프로필을 통해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현실적으로 게이들에게 회사나 학교에서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는 불가능한 로망이었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앱을 통한 만남은 게이들의 전유물로 생각했다.

몇 년 뒤 '틴더(세계 최대 소셜 데이팅 앱)'가 등장하면서부터 데이팅 앱을 보는 시각이 일반화되고, 쿨해진 듯하다. 언제까지나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할 것 같았던 젊은 이성애자들 사이에도 앱 데이트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갔다. 이성애자는 각종 모임, 소개팅 등 오프라인의 만남을 추구, 커뮤니티가 좁은 성소수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만남이라는 관계 공식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자만추'와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연애를 하는 게 귀한 일이 됐다.

'나는 SOLO'의 매력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SBS Plus, ENA

'연애'가 복잡해지면서 동시에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가 올라갔다. 나 역시 ENA, SBS플러스에서 방영 중인 < 나는 SOLO >의 애청자다. < 나는 SOLO >가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 중 하나는 안정적인 연출 패턴이다. 기수별로 다양한 일반인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특별하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정도 비슷하다.

먼저, 출연자들을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불러 모은다. 지역의 소도시는 겉으로는 얼추 비슷해보며도 각각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마치 <생활의 발견>·<하하하>·<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2000년대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그 도시를 배경으로 출연자들이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상적인 모습과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는 출연자들 감정선을 따라 한 장면, 한 장면 연결한다. 출연자들은 그 안에서 며칠 동안 데이트하고 애정과 질투를 느끼며 이해와 오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무엇보다 < 나는 SOLO >는 소수자성을 띤 특집이 많다. 이혼을 경험한 '돌싱'이나 한 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모태 솔로' 특집이 대표적이다. 현실에서는 그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지 몰라도, 방송이라는 필터를 거치면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이 도드라진다.

돌싱특집을 보고 있노라면, 출연자들의 솔직 당돌한 모습에 '첫 번째 결혼은 예행연습이고 두 번째 결혼이 진짜가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 나는 SOLO > 출연자들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다. 자기만족과 수치심 사이에서 방송에 비친 객관적인 자신을 통해 '거울치료'를 하고 현실로 돌아와 성장한다.

돌싱 순자의 사랑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SBS Plus, ENA

여러 기수 가운데 화제가 되는 건 아무래도 '돌싱 특집'이다. < 나는 SOLO > 16기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많은 '밈'과 명장면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최근 종영한 두 번째 돌싱특집 22기 역시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 '순자'의 사랑이 가장 빛나 보였다. 아이가 둘인 순자가 돌싱이지만 아이가 없는 '영호'를 좋아하며 통영의 횟집에서 데이트 중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어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부대낌, 그리고 피어나는 낯선 감정들, 그리고 잠시 떠나온 현실이 겹치는 복잡한 감정이 화면 밖으로도 전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으로 얼마나 현재에 몰입하고 있는지 보였다.

돌싱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새 사랑을 찾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물이 단지, 상대가 자신을 두고 갈팡질팡해서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최종 선택까지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진심을 전하는 모습은 22기 출연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녀의 일편단심을 알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로 거절해야만 하는, 영호의 "끊임없는 사랑을 줘서 고마웠고, 항상 응원할게"라는 진심 어린 말의 애틋함에 동료 출연자들도 눈물 흘렸다.

순자와 영호의 감정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었던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일로 마무리됐다. 끝이 정해진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순자의 진심과 눈물을 보며 공감했을 것이다. 이처럼 연애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순애보다. 사랑은 귀하고,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으니까.

이 모든 게 '트루먼쇼'라고 할지라도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
<나는 SOLO> 22기 방송 중 한 장면SBS Plus, ENA

그러나 과연 이 모든 게 하늘이 내려준 운명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제작진은 일반인들의 출연 신청을 받고, 입사 면접에 가까운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의 직업, 성장 배경, 종교, 심지어 이상형까지 모든 신상정보를 인지한 상태에서 최종 출연자를 결정한다.

이번 22기에서도 종교 갈등으로 이혼한 사람과 독실한 종교인을 동시에 출연시키는 걸 보면 < 나는 SOLO >는 마치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사회 실험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TV 프로그램이었다는 설정의 영화 <트루먼 쇼>가 세상에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이 TV에 나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꽤 많은 이들이 트루먼이 되길 자처한다. '연애'라는 이름의 현실 도피이자, 동시에 꿈의 실현을 위해서 위해서 제작진이 창조한 가상의 세계로 뛰어든다.

데이팅 앱부터 소셜 미디어, 오프라인의 '자만추'까지 인간관계는 복잡해지지만 '사랑'이 귀한 건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연애 프로그램 역시 더욱더 다양해질 확률이 높다. 남녀의 연애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게이들의 연애를 그린 <남의 연애>가 OTT 웨이브를 통해서 2022년 첫 공개된 이후 올해 시즌 3까지 제작됐다. 제작사에선 후속 프로그램으로 국내 최초로 레즈비언 연애 프로그램인 <너의 연애>의 출연자를 현재 모집 중이다.

성소수자들을 향한 곱지 않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시선 속에서 퀴어 연예 예능의 제작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퀴어인 나는 아직까지 퀴어의 연애보다 < 나는 SOLO >가 더 흥미롭다. 그래서 오히려 내심 < 나는 SOLO >를 제작하는 촌창엔터테인먼트에서 < 나는 SOLO > 퀴어 특집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솔로 연애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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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스 에디터. 도시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진행하며, 에세이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주로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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