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 포스터. ⓒ 넷플릭스

 
2007년 6월 14일,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발리에서 '루 펄먼'이 전격 체포돼 미국으로 송환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대규모 폰지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곧 자신의 죄를 인정했으며 이듬해 재판에서 25년형이 확정된다. 100만 달러를 갚을 때마다 한 달씩 감형해 주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2016년, 60세 초반의 나이로 감옥에서 사망하고 만다. 심장 질환이었다.

그런데 루 펄먼은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이기에 대규모 폰지 사기,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받아 다른 투자자들에게 지급하는 사기를 저질러 25년형이나 받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걸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는 루 펄먼의 모든 걸 낱낱이 파헤친다. 

루 펄먼은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나고 그가 하는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순 없다. 살아생전 영상이나 언론 인터뷰를 되돌려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AI로 그를 되살려 그의 책 <밴드, 브랜드와 거액>의 내용을 그대로 읊게 했다.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지만 고인을 이런 식으로 되살린 경우는 드물어 윤리적으로 괜찮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다. 대규모 사기를 저질러 거의 모든 사람이 곁을 떠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가 감옥에서 사망한 후 시신을 고향으로 모셔 장례를 치러야 했는데, 아무도 그의 시신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겨우 치른 장례식에는 5명도 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살아생전 명성에 비해 터무니없는 마지막이었다.

루 펄먼,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 넷플릭스

 
루 펄먼은 1980년대, 트랜스 콘티넨탈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비행기 임대 사업을 했다. 팝스타들과도 거래를 했는데 그중에 '뉴키즈 온 더 블록'도 있었다. 당시 그는 그들의 능력을 의심했는데 알고 보니 음반 판매로 2억 달러, 투어와 굿즈 등으로 8억 달러 매출을 올린다는 게 아닌가. 그는 빠르게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보이 밴드 기반의 틴팝 그룹을 결성한다. 그 유명한 전설적인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시작이다. 

하지만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정규 데뷔 앨범 성적은 생각했던 것보다 부진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는 팝이 아닌 락과 힙합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틴팝 보이 밴드가 설 자리는 없었다. 루 펄먼은 발 빠르게 방향을 선회해 유럽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대박이 난다, 특히 독일에서. 정점을 찍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한 백스트리트 보이즈는 역대급 히트를 하며 '틴팝'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뉴키즈 온 더 블록보다도 훨씬 더 큰 히트를 한 것이다.

루 펄먼은 보이 밴드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이밴드 2탄을 준비한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동생 격이랄까, 그 보이밴드가 전설적인 '엔싱크'다. 훗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속했던 그룹으로 더 명성을 떨쳤다. 엔싱크는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너무 바빠 소화할 수 없었던 디즈니 행사에서 대박을 터뜨렸고 이후 백스트리트 보이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틴팝 황금기의 마지막 열차를 탔다고 할 수 있겠다. 루 펄먼과 백스트리트 보이즈, 엔싱크 모두가 돈방석에 앉았을 건 불 보듯 뻔해 보였다.

그런데 두 보이 밴드의 멤버들은 역대급 흥행을 이끄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정산받았다. 이들은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 채 오직 성공만을 바라보고 루 펄먼을 '빅 파파'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머리가 웬만큼 커서 자신과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한 점 투성이였다. 결국 루 펄먼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진행한다. 루 펄먼이 큰돈을 착복하고 제대로 된 정산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장 기간 폰지 사기 사건의 주동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엔 싱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더티 팝: 보이 밴드 사기극>의 한 장면. 루 펄먼과 엔 싱크. ⓒ 넷플릭스

 
루 펄먼은 잘나가는 변호사를 데려와 자식 같은 이들의 줄소송에 대응한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소송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후에 터진다. 그에게 유리하게 변호해 준 바로 그 변호사가 루 펄먼을 고소한 것이다. 그는 루 펄먼에게서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런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간 루 펄먼에게 투자한 수백 명의 투자자들이 그에게서 제대로 된 투자 정산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액수가 공식적으로만 5억 달러 이상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규모.

그의 '사기 행각'이 하나둘 드러날수록 충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또 일파만파 퍼졌다. 그의 인생 자체가 거의 사기였다. 밥 먹듯이 문서를 위조해 자신의 위상을 드높였고 잘나가는 사업가로 둔갑했으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허위 사실을 유포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았고 이 투자자의 투자금을 저 투자자에게 주는 식으로 자금을 융통했다. 수십 년과 이를 반복하며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폰지 사기 사건의 주인공으로 남았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는 그에겐 거대한 사기 행각의 주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루 펄먼은 이른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고 할 만하다. 누군가에겐 성격 좋고 아이디어가 비상하 믿을 만한 친구이자 사업가였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뿌리째 뽑아 버린 사기꾼에 불과했다. 그건 두 보이 밴드의 멤버들 사이에서도 갈리는데, 누군가에겐 꿈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빅 파파'의 기억이 크게 남아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 자신의 사기 행각의 수단으로 젊은 시절을 갈취한 '악덕 사기꾼'으로 남아 있다. 후자가 압도적인 것 같다. 

백스트리트 보이즈와 엔싱크 그리고 기타 등등,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음악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별들을 만든 장본인 루 펄먼, 하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폰지 사기 사건의 주동자로도 이름이 남았다. 이 작품으로 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는데, 루 펄먼은 여러모로 '큰'사람이었다.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세상을 뒤흔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느 쪽의 유산이 더 오래, 더 깊게, 더 넓게 남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는 '사기꾼'으로 남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루펄먼 폰지사기 백스트리트보이즈 엔싱크 보이밴드사기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