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은 국제 맹그로브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Conservation of the Mangrove Ecosystem)이다. 201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제정해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이한 이 날엔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이 파괴해 온 수많은 생명종 가운데 맹그로브만큼 생태적 가치가 큰 종이 드물기 때문이다.
 
맹그로브는 열대 및 아열대 지방 강 하구에 주로 서식하는 식물이다. 정확한 학명은 아니지만 리조포라(Rhizophora) 속에 속하는 식물군 70여 가지를 통상 맹그로브라 부른다. 한 그루 나무가 아닌 집단 서식체 형태로 존재하는 맹그로브는 줄기와 주된 뿌리에서 호흡근이라 불리는 여러 갈래의 뿌리가 물 위로 거꾸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특징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강 하구에서 물 위로 뿌리가 노출된 나무들이 얽히고설킨 형상으로, 다른 곳에선 마주하기 힘든 독특한 풍경을 빚어낸다.
 
특유의 악취와 복잡한 형태 때문에 맹그로브가 자리한 곳엔 인간이 들어서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도리어 다양한 생명종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열대어와 산호초, 다양한 물고기가 맹그로브가 빚어낸 생태계 안에 들어서 살아간다. 맹그로브의 날을 영어로 적을 때 환경체계(Ecosystem)란 단어가 붙는 이유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 20세기 폭스

 
인류가 맹그로브를 기억하는 방법
 
인간은 맹그로브를 반기지 않았다. 그저 반기지 않는 수준을 넘어 보이는 대로 밀어내고 불태워왔다. 강 하구를 매립해 농지로 만들고, 근 십수 년 동안은 미국과 동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새우를 기르는 양식장을 만들기 위해 이를 해쳐왔다. 다양한 생태자원이 살고 그로 인해 영양분 또한 많은 맹그로브의 터전이 양식장으로 전환하기엔 그만이었다고 전한다.
 
수많은 동식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하고, 막대한 탄소를 저장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역할까지 해온 맹그로브다. 맹그로브 숲이라 불러도 좋을 이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해쳐지는 실태에 경각심을 가진 인류는 365일 가운데 꼭 하루쯤은 맹그로브의 날로 지정해 주의를 환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가 바로 7월 26일, 국제 맹그로브의 날이다.
 
그 특별한 생김 때문일까. 영화 가운데서도 이따금 맹그로브가 등장하는 순간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라이프 오브 파이>가 되겠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한 이 대단한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맹그로브로 가득한 섬이 나오는 순간을 꼽는 이가 많다.
 
이안 감독의 2013년 작 영화는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한 무명작가가 인도에서 만난 노인의 소개로 캐나다에 사는 인도인을 만나며 시작한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피신 물라토 파텔(아역: 수라즈 샤르마 분, 성인: 이르판 칸 분)이 바로 그다. 피신이라는 이름이 인도어로 오줌이라는 뜻인지라 어려서부터 놀림거리였던 그는 스스로 '파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낸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 20세기 폭스

 
망망대해 떠돌던 파이, 맹그로브 섬에 닿다
 
세상 여러 종교와 신에게 남다른 관심이 있던 파이다. 그런 그 앞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다름 아닌 이민이다. 부모가 국가 지원이 줄어든 동물원 사업을 정리하고 이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가족들은 캐나다로 떠나는 배에 여러 동물을 싣고 대양을 건너는 화물선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운명은 예기치 않은 곳으로 파이와 그 가족들을 데려간다. 폭풍우를 만난 배가 크게 흔들리다 마침내 침몰에 이른 것이다. 몰래 갑판 위로 올라와 있던 파이가 부랴부랴 선실 내부로 들어가려 하지만 이미 물이 가득 차 가족들을 구할 길 없다. 어찌어찌하여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르는데 겨우 살아난 것은 사람이 아닌 얼룩말과 오랑우탄, 점박이 하이에나와 리처드 파커란 이름의 벵골호랑이뿐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파이가 이 동물들과 함께 표류하는 여정으로 흘러간다. 다리를 다친 얼룩말이 죽고, 오랑우탄까지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힌다. 리처드 파커가 그 하이에나를 제거한 덕에 보트엔 겨우 평화가 찾아오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남아있다. 바로 망망대해를 떠도는 상황, 그 자체다.
 
목마름과 배고픔을 어찌어찌 견뎌내고 달래가며 긴 시간을 지낸 뒤 파이는 한 섬에 닿는다. 미어캣으로 가득한 이 묘한 섬엔 배를 채울 수 있는 해초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가운데는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웅덩이까지 있다. 부족한 것이 없는 낙원에 오른 파이는 어쩌면 일생을 이곳에서 보내도 좋겠단 생각까지 했으리라. 저 먼바다엔 무엇도 기대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만이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 20세기 폭스

 
떠다니는 나무의 섬, 맹그로브 군락
 
이 섬을 가만히 보자면 바닥엔 흙과 암석으로 이뤄진 땅이 없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무줄기뿐이다. 나무가 뿌리 내린 곳을 알 수 없이 줄기와 뿌리가 위로 올라와 서로 얽히고설키며 하나의 거대한 섬을 이룬 것이다. 도저히 현실 같지 않은 이 신비하고 기묘한 섬은 맹그로브로 이뤄졌다. 실제 맹그로브가 이처럼 거대한 섬을 이루기는 어렵고, 섬만큼 큰 군락을 이룬다 해도 영화 속에서처럼 환상적인 생태를 갖추지는 못할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안은 맹그로브에 착상을 얻어 영화 속 더없이 환상적인 섬을 시각화하는 데 성공했다. 파이는 이 섬에서 며칠을 보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최후의 항해를 시작한다. 멀리 떨어져 보면 하늘을 보고 누운 사람의 형상을 이루는 이 거대한 나무의 섬은 영화 속 장면과 달리 인간과 만나 끊임없이 제 터전을 잃고 스러져가는 중이다.
 
맹그로브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해 있다. 그중 40%가 조금 안 되는 면적이 동남아시아 일대에 분포돼 있다. 헥타르(㏊)로 따지자면 2020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조사 기준 555만헥타르다. 단일국가 중에선 인도네시아가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태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에도 적잖은 면적이 조성돼 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포스터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포스터 ⓒ 20세기 폭스

   
오늘의 인간이 맹그로브를 알아야 하는 이유
 
문제는 이들 숲이 급속히 줄어간다는 점에 있다. 특히 맹그로브 숲 자리에 새우 양식장을 조성하는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새우 양식장이 즉각적인 외화벌이 수단으로 각광받는 현실 가운데 돈도 무엇도 나오지 않는 맹그로브 숲을 보전할 유인이 이들 국가에 얼마 되지 않는다. 환경재단 등 한국의 몇몇 단체가 맹그로브 식재에 힘을 써 수십만 그루를 심었다고는 하지만, 파괴되는 속도에 비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근 몇년 간 한국 대형마트에서 큰 인기를 누린 블랙타이거새우와 킹타이거새우, 또 각종 요리에 폭넓게 들어가는 흰다리새우가 모두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태평양 연안 일대 양식장에서 길러진다. 그중 많은 수가 수십 년 전만 해도 맹그로브 숲을 이루었던 자리다. 한국이 수입하는 새우의 절반을 생산한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베트남에선 지난 몇 년 간 생태에 대한 경각심이 크게 일어나 맹그로브 숲 파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외신보도는 이것이 어디까지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임을 지적한다.
 
맹그로브 숲 보호는 여론의 영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호를 위한 노력 상당 부분이 여론에 떠밀린 재단과 기업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 들어온 저가 양식새우의 절대적 소비량 또한 맹그로브 숲 파괴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맹그로브의 가치와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 생태를 보전하는 일과 몹시 가까이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속 섬, 그 섬을 이루는 독특한 나무, 그것이 맹그로브임을 아는 건 그 시작이 된다. 그 섬이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섬을 살려야 한다. 끝의 끝까지 내몰린 파이에게 마지막 의지처가 돼 주었던 그 떠다니는 섬이 우리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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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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