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요즘말로 도시정비사업. 나라 전체가 부수고 새로 짓는 일에 열을 올린다. 수십, 수백 년 씩 된 건물이며 도로가 그대로 보존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엔 오래된 건물이 탈 없이 살아남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낙후된 지역은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것이 자연스런 일처럼 여겨지고, 그 주기 또한 몹시 짧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 심지어 아시아 곳곳에서도 짧게는 반세기, 길게는 수백 년을 살아남은 건축물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각종 통계는 영국 건축물의 평균수명이 130년에 이르고 프랑스는 80년, 미국은 75년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의 건축물은 다르다. 한국에서 가장 흔히 지어지는 건물, 아파트만 보더라도 그 평균수명이 불과 30여년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평균연식이 20년이 넘었다며 '늙었다', '고령' 운운하는 기사가 수없이 쏟아질 정도다.
 
부수고 새로 짓는 일이 나쁜 것만은 아닐지 모르겠다. 기술적으로 비할 수 없이 발전한 요즈음 건축물이 그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훨씬 나은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부 부실시공으로 '순살아파트'란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공법이 꾸준히 발전한 덕에 안전과 삶의 질 면에서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오류시장 스틸컷

▲ 오류시장 스틸컷 ⓒ SIEFF

 
재개발, 재정비, 재건축 뒤 감춰진 것
 
뿐인가. 이 시대 시민들은 도시정비사업으로 지역과 개인의 부 또한 증가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한 밑천 단단히 잡은 선배세대가 분명히 존재하고,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이익을 기대하며 대기줄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투기가 아닌 투자라고, 오랜 노력에 따른 마땅한 이득이라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게 개발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줄을 섰다. 개발사업이 표와 깊은 연관이 있는 만큼 지자체장에게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는 일이겠다. 그렇다면 왜 새로 짓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기엔 가려진 문제가 있다.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다. 이른바 건축폐기물이다. 건물을 부수고 짓는 과정에선 흙부터 못쓰게 된 자재, 즉 폐벽돌, 폐블록, 폐콘크리트, 폐아스콘, 폐목재, 폐합성수지, 폐금속편류 등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다. 환경부 통계에 따르면 매년 건설폐기물이 8000만 톤 내외가 발생한다. 그 대부분은 폐콘크리트와 폐아스팔트 등이 차지한다. 대부분이 불연성 폐기물로 재활용하지 못할 경우 처리가 마땅찮다.
 
8000만 톤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같은 기간 배출된 생활폐기물이 2000만 톤이란 점을 고려하면 그 규모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환경부는 건축폐기물 대부분이 재활용된다고 말한다. 통계는 2022년 발생한 7618만 톤의 건설폐기물 가운데 7593만 톤, 약 99.7%가 재활용됐다고 적고 있다. 폐기물을 사용해 시멘트를 제조해 쓰는 등 매립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류시장 스틸컷

▲ 오류시장 스틸컷 ⓒ SIEFF

 
곳곳에서 발견되는 쓰레기산... 진실은?
 
그러나 환경단체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곳곳에 무단투기되고 방치된 쓰레기더미가 통계가 담지 못한 현실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적 드문 각지 산지며 공사장 등에 업체가 처리하지 않고 도주해 남겨진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는 게 현실이다. 건설폐기물 처리비용을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에 떠넘기는 관행이 무단 방치 및 도주하는 일을 속출하게 하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1만 톤이 넘는 건축폐기물을 무단 투기한 허울뿐인 회사에 과태료 몇 백 만 원 솜방망이 처분만 하고 손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수차례 재편집을 거쳐 2023년 완성된 다큐멘터리 <오류시장>은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초청돼 상영기회를 가졌다. 온라인 상영과 함께 특별상영 섹션인 시네마그린틴에 선보이게 된 것이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측은 시네마그린틴에 대하여 '재미있는 환경 영화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환경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환경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만의 특별 프로그램'이라 설명한다. 지난 2012년부터 진행해온 이 프로그램은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환경영화를 접하게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신청한 학교는 직접 극장을 찾을 필요 없이 시네마그린틴 초청작을 수업시간에 온라인으로 상영할 수 있다. 영화제가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춰 관객과 만나는 지평을 극장 바깥으로 넓힌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오류시장 스틸컷

▲ 오류시장 스틸컷 ⓒ SIEFF

 
시장 개발사업 다큐와 환경영화제의 만남
 
흥미로운 건 <오류시장>이 환경과 묶였다는 점이다. 앞서 제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돼 상영했던 영화다. (관련기사: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65809) 지난 상영분에 추가로 다듬어 붙인 완성본이라곤 해도 환경과의 만남은 어딘지 낯설다. 기후위기와 자연, 동물 등에 대해 다루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통상의 작품군과 달리 <오류시장>은 부당한 시장 민간개발에 맞서는 상인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영화 속에선 개발 추진과정의 불공정함과 오류시장의 역사 등을 담을 뿐,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명확했던 연결고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앞서 적은 재정비사업과 그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건축폐기물 문제가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개발사업 추진의 전후사정을 살핌으로써 무리한 개발을 조장하는 민간사업자, 또 투기세력의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과도한 재개발이 이뤄짐에 따라 감당키 어려운 쓰레기가 발생하게 되는 현실 또한 알도록 한다.
 
영화가 담고 있는 주된 이야기, 즉 다수 지분을 확보한 개발업체가 상인들을 명도소송으로 쫓아내고 시장 자리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서기까지의 과정, 지자체가 이 자리에서 장사해온 이들이 아닌 개발업체의 편처럼 움직이는 모습, 서울시 시장 정비사업이 정하고 있는 규정에 미달한 개발업자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지분 쪼개기'란 꼼수를 쓰다 상인들과 맞서게 되는 이야기는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이 시대 자본과 권력의 흐름을 알도록 보조할 뿐이다. 개발업체도 지자체도 상인들마저도, 누구도 개발사업에 따른 폐기물의 발생과 그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네마그린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시네마그린틴 초청작이 한 학교 교실에서 상영되는 모습.

▲ 시네마그린틴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시네마그린틴 초청작이 한 학교 교실에서 상영되는 모습. ⓒ SIEFF

 
멈추지 않는 개발 속 환경이 설 자리는?
 
물론 이는 영화가 담고 있는 바가 아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말하려 한 바도 물론 아니겠다. 그러나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이 작품을 초청한 순간, 영화는 환경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낼 수 있다. 어째서 인간은 개발 가운데 폐기물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특히나 이 나라 수도 서울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폐기물을 다루지 못하고 주변 도시로 실어나가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너무나 자주 외면되고는 하는 것이다.
 
환경, 또 탄소배출과 관련한 기후문제가 당면한 위기로 작용하는 오늘에 이르러 이는 더욱 시사점이 크다. 건축 소재와 제품을 생산하고 운송하며 처리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11% 가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건축물의 생애주기가 짧고, 재정비 사업이 활발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서울에서만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새로 30개의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이 신규 지정됐을 만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개발 사이 우리는 환경과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까. 그것이 <오류시장>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된 의미라 할 수 있을 테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SIE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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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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