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마케팅이 되는 세상이다. 선한 영향력을 표방하며 탄소중립, 재활용, 공정무역, 지속가능 어업 마크를 붙인 제품이 곳곳에서 팔려나간다. 소비자들은 웃돈을 주고 이런 제품을 구입하며 스스로 선한 일에 기여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환경에 기여하는 선순환의 고리다.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러나 어떤 이는 이것이 몹시 나쁜 상황이라고 말한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며 스스로 선에 기여한다고 믿는 마음이 완전히 조작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면서도 그에 거리낌 없게 만드는 것, 환경마케팅이 소비자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속죄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다. 실제와는 상관없이.
 
핵심은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뤄지는 고리의 투명성이다. 순환고리가 왜곡 없이 유지되는 한 소비자의 속죄도 악에의 동참보다는 나은 결과로 이어질 테니.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포스터 ⓒ SIEFF

 
말로는 ESG, 실상은 그린워싱... 이 기업들의 실체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ESG: 자본주의 대전환' 섹션 초청작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허실을 파헤친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대신 탄소 배출권을 사들여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릿글자를 딴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 쓰는) 경영을 한다고 표방하는 업체들의 실상을 쫓는 과정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시작은 프랑스에 기반을 둔 전통적 에너지기업 '토탈에너지(Total Energies)'다. 영화는 중국과 합작으로 우간다 원유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토탈의 실체를 폭로한다. 틸렝가 이코프(Tilenga Eacop)라 불리는 사업으로, 앨버트호 근처에 400개의 유정을 뚫고 매일 20만 배럴의 원유를 뽑아 올린다. 기름을 운반하기 위해 무려 1445km 길이의 파이프가 16개 자연보호구역을 가로질러 설치된다. 파이프는 원유가 굳지 않도록 섭씨 50도의 온도로 유지된다. 원유는 이렇게 우간다에서 탄자니아 항구까지 옮겨진 뒤 원유선에 실려 유럽으로 향한다.
 
틸렝가 이코프란 초대형 건설사업은 매년3400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승용차로 치면 1300만 대의 배출량이다. 건설사업은 대규모 토지수용 또한 필요로 하는데, 모두 10만 명이 집을 잃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SIEFF

 
우간다 찾아 확인한 석유업체의 실체
 
언제나 그러하듯 사업을 주도하는 토탈은 모든 과정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토탈 최고경영자 파트릭 푸야네가 프랑스 내 비판자들을 향하여 '제 집 안방에서 욕하기란 너무나 쉽다'고 비난을 쏟아낸 것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클레어 테송이 직접 우간다, 틸렝가 이코프 현장으로 떠난 것도 그래서다. 그녀는 자국 대기업이 우간다에서 벌이는 개발사업이 과연 그들 말처럼 정당하고 모두에게 이로운 것인지를 하나씩 검증해나간다.
 
토지수용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수소문해 만나는 게 그 시작이다. 감독은 피해주민 수십 명을 인터뷰한다. 로베르 비리무예 세촌누아라는 한 남성은 공사가 시작된 지 4년 동안이나 제 땅을 쓰지 못했다. 땅에서 모래를 채굴하는 일로 그는 제 가족들을 먹여살려왔지만, 어느 순간 업체에 의해 골재 채취가 금지됐다. 토탈이 토지수용 대가로 제시한 건 300일치 일당 뿐. 평생의 터전이라 생각하고 땅을 구입한 세촌누아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비슷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마을 유일한 샘물 위로 송유관이 지나가며 물을 쓰지 못하게 된 사례도 있다. 프랑스 석유개발회사와 중국 자본이 우간다 정부와 결탁해 맺은 협약은 이 나라의 자연을, 그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서류로는 알아볼 수 없던 사실을 감독은 직접 현지를 찾아 진행한 인터뷰를 통하여 조금씩 알아간다. 그리고 마침내는 이 같은 문제를 폭로하다 투옥된 이들과도 만나게 된다.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SIEFF

 
주민 삶 개선한다더니... 조작된 진실
 
토탈은 저들의 개발사업이 현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그저 밀려나고 빼앗긴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것만이 아니다. 아예 적극적으로 사실을 조작하기도 한다. 토탈은 주디스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홍보영상을 제작하고 여러 언론을 동반한 팸투어로 그녀의 개선된 삶을 알린다. 그녀에게 벌통을 비롯해 양봉을 위한 도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감독이 수소문해 찾은 그녀의 집엔 아무도 없다. 벌도 없다. 온갖 영상과 기사에 등장한 양봉통은 비어있다. 주민들에 대한 토탈의 재정지원은 조작된 양봉통처럼 실체가 없는 것이다.
 
영화는 토탈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쉽게 조작된 사례를 추적한다. <그린워싱>의 후반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허실을 폭로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으로 하여금 온실가스 포화상태를 완화하는데 공헌하도록 하는 게 탄소배출권 제도의 핵심이다. 바다와 토양의 탄소흡수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탄소를 받아낼 수 있는 숲 또한 파괴되고 있으므로, 기업의 탄소중립 의무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상품의 경우 탄소중립은 마케팅에도 도움이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네스프레소 제품은 탄소중립'이란 네스프레소 경영자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네스프레소는 '커피의 선한 영향력으로 토양 재생, 생태계 복원,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핵심적인 마케팅 카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SIEFF

 
스타 환경운동가와 환경단체의 실체

그러나 이것이 진실인가. 테송은 네스프레소에게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기업 퓌르 프로제를 추적한다. 프랑스의 스타 환경운동가 트리스탕 르콩트가 운영하는 퓌르 프로제는 페루 등 여러 나라에서 조림사업을 진행하며 얻은 탄소배출권을 네스프레소 등 기업에 판매한다. 감독은 이번에도 현장을 찾아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허실을 살핀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이 나무를 심는 일 등으로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구입함으로써 사실상 죄와 덕을 맞바꾸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죄, 환경파괴는 즉각적인 반면, 덕인 조림사업은 최소 30여 년 간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말인즉슨, 조성된 삼림이 보전되어 이산화탄소 등을 머금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테송이 찾은 페루의 숲은 전혀 관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퓌르 프로제로부터 위탁받아 관리되는 어느 지역 삼림에선 관리자 8명이 1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돌본다. 위탁농이 수백그루의 나무를 베어나간 사례도 심심찮게 확인된다. 그러나 퓌르 프로제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관리며 감독은 서류 상에만 존재한다.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그린워싱: 기후 살인자 스틸컷 ⓒ SIEFF

 
유명무실 탄소배출 거래제... 한국은?
 
이렇게 얻은 탄소배출권을 네스프레소 같은 업체가 사들이고, 탄소배출에 대한 면죄부를 얻는다. 면죄부를 얻을 뿐 아니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다는 게 <그린워싱>이 주장하는 바다. 업체는 면죄부를 얻고, 소비자는 탄소중립을 어긴 제품을 소비하며 속죄하는 마음을 갖는다. 자연보호를 위한 선순환이 아닌, 심리적 자유를 보장하는 악순환이 이뤄질 뿐이다. 이것이 탄소배출권 거래제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이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워싱'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기업이 겉으로는 환경을 보호하는 것처럼 선전하는 행태를 말한다. 토탈처럼 지역 주민을 밀어내고 심지어 탄압하는 행태를 방조하거나, 퓌르 프로제 같이 실효성 없는 정책에 기생해 수익을 챙기며, 네스프레소처럼 마케팅적으로 환경을 운운하는 모습이 모두 소비자를 기만하는 기업의 양태를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 유럽보다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낮고, 탄소배출 거래제 또한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그에 따라 그린워싱 등의 문제가 보다 심각할 것이 분명하지만, 이를 전격적으로 다룬 다큐나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그린워싱>을 초청 상영한 데는 이 같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본주의 아래 작동하는 기업이란 결국 이윤을 위해 당국과 시민을 속이게 마련이고, 이는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마찬가지란 사실을 이 영화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국제환경영화제 SIEFF 그린워싱 클레어테송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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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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