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없는 사회는 없다. 계급 없는 이데올로기도, 계급 없는 종교도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조직과 개념은 자연스레 계급을 형성한다.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자들이며 인위적인 것을 벗어던지자는 평화공동체 안에서조차 계급이 형성되고는 한다. 그 계급을 없애려 다시 인위적인 장치가 들어가고 그러다 무엇이 인위적인 것이며 자연스런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은 본래 나누고 구분하는 동물인가. 더 높아지고 강해지기 위하여, 남보다 나아지고 타인 위에 군림하려는 존재인가. 인간이란 과연 그러한 것인가를 되묻게 될 때가 지금껏 얼마나 많았는지.
 
사회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가치체계를 이데올로기라 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엔 수종의 이데올로기가 경합하며 협력하고 있을 테다. 그중 가장 강한 놈을 우리는 자본주의라 한다. 그리고 그와 긴밀히 붙어 있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있을 테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오늘의 교육체계 또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대학교 이름을 서열화해 줄줄이 외울 수 있다. 심지어는 그 대학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이들조차도. 서연고서성한이니 설카포고연한이니 하는 요상한 글자를 줄줄 꿰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시절부터 정답 맞추고 오답 피하는 게임에 매여서 살아간다. 그 결과로써, 초중고 12년 노력의 결실로써 대학교와 과를 선택한다. 그들에게 그는 그저 제가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 수준을, 순위를, 계급을 확인하는 일종의 계급장으로 작용한다.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JIFF

 
농어촌 특별전형 겨냥한 이사... 이 가족의 사연
 
한국사회에도 엄연히 계급이 있다. 앞에 적은 학벌부터 사는 곳, 직업, 외모, 그리고 무엇보다 돈, 이 모두가 계급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외제차 한 대 뽑는 게 싸게 먹혀요', '명품 시계 하나 차는 게 싸게 먹혀요' 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계급에의 편입, 혹은 편입의 흉내라도 내는 상징으로써 차와 시계가 기능한다는 뜻일 테다. 학벌도, 직업도, 자산도 때로는 계급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왜 구하지 않겠는가.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서 만난 <여름이 지나가면>은 계급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장병기 감독의 115분짜리 장편영화를 나는 누구의 추천으로 처음 접했다. 수많은 섹션, 경쟁과 비경쟁, 온갖 특별상영까지 볼 작품이 넘치는 영화제에서 추천은 작품을 고르는 좋은 기준이 된다. 특히나 상대가 영화에 조예가 있고 나름의 취향이 선 사람이라면 추천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여름이 지나가면>은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에게 한 편 추천을 부탁하여 받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아들과 함께 지방 마을로 이사를 가는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전학이다. 이들의 전학 배경엔 이사예정지의 신도시 개발계획이 자리한다. 개발이 승인되고 동네가 군에서 시로 승격되면 대학입시에서의 농어촌 특별전형 혜택도 사라지게 된다. 부랴부랴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는 엄마와 공부야 아이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닌가 싶은 무관심한 아빠, 그리고 제 의견은 상관 않고 바뀌는 상황이 마뜩찮은 아이로 이뤄진 가정이다. 여느 가족이 그러하듯 엄마가 교육전쟁을 지휘하는 총대장이다.
 
아빠는 도시에서 돈을 벌고 엄마와 아들만 이사를 온다. 학급 담임은 엄마에게 다른 엄마들 모임에 나가보라 권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들의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 80cm 아이의 시야가 190cm짜리 어른과 다르듯이, 열두 살 아이들의 사회도 어른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두 세계는 때로 겹치지만 자주 어긋난다. 때로는 권력의 형태며, 작용하는 방식까지도.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JIFF

 
불량과 불쌍, 경외와 무시 사이
 
전학 첫날, 아들 기준이 잠시 교무실 밖에 내다 놓은 운동화가 사라진다. 아이다스 새 신발이다. 처음부터 도둑이란 생각이 들지만 CCTV는 고장이 나 있고, 굳이 색출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선생은 내심 제가 가르치는 학생 한 명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 아닌 누구라도 그랬을 터다. 이 학교, 이 마을엔 문제아 형제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기준과 기준엄마가 이 마을이란 사회에 젖어드는 모습을 비춘다. 기준이는 학교와 친구들, 또래들의 세계로, 기준엄마는 학부모들과 재개발을 바라는 마을 주민들의 세계로 말이다. 기준이의 세계는 비교적 수평적이다. 학교에는 일진이라고 부를 만한 문제아들도 없다. 성실하고 순박한 아이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유독 튀는 아이가 하나 있다. 바로 선생님이 의심한 아이, 영준이다.
 
영준은 늘 늘어지고 때 묻은 셔츠를 입고 다닌다. 선생님의 말도 잘 듣지 않고 엇나가기 일쑤다. 학교 안에서도 밖에서도 문제아란 표현을 듣는 영준에겐 형이 하나 있다. 영문이다. 영문은 동네 모든 아이가 알고 있는 존재다. 또래집단의 우두머리다. 동네에선 누구도 영문을 건드리지 못한다. 건드리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스르지 않으려고 숨죽일 때도 많다. 뒤에 영준을 태우고 오토바이를 모는 영문의 모습이 기준의 눈엔 어딘지 멋있다.
 
기준 엄마의 시선에서 영문이든 영준이든 그저 불쌍한 존재다. 이들에겐 돌봐줄 부모가 없다. 엄마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나 마을사람들이 돌아가며 찾아올 때마다 밥을 준다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 중 못한 이를 돌보는 공동육아, 공동보육이다. 그러나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이 어찌 민감한 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겠는가.

모두에게 있는 부모가 저 혼자 없다는 사실도. 영준이 자주 같은 집만 찾는 건 그래서다. 영문이 영준에게 그래도 한 집만 가지 말고 골고루 가라는 얘길 하는 것 또한 역시 그래서다. 제 동생을 끔찍이 살피는 영문도 아직은 어린 아이, 홀로 동생을 책임질 수 없는 것이다.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 JIFF

 
점령된 농어촌 대입특례... 이 영화가 말하는 것
 
영준은 아이들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만, 영문은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다. 영문은 어른들의 시선을 안다. 영문이 지나가는 아이들을 불러 돈을 뜯으면서도 집에다 알리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그래서다. 알려지면 안 된다. 어른들에게 영문과 영준 형제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저 불쌍한 존재니까. 두려움도, 동경의 대상도 아닌 못나고 불쌍한 애들일 뿐이니까.
 
엄마가 마을의 현안인 재개발 문제로 바쁜 사이, 기준은 영문이 군림하는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간다. 그가 제 신발을 신고 있는 걸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는 내심 자랑스레 여긴다. 모두가 탐내는 플스4를 직접 들어서는 영문이네 집에 가져다 두고 그곳에 매일 놀러가는 명분으로 삼는다. 그가 자전거를 훔치고 아이들 삥을 뜯는 모습조차 모방하려 든다. 모든 사회엔 계급이 있고 모든 구성원은 높은 계급이 되고자 한다. 기준의 엄마가 안다면 단박에 비난할 이 모습 또한 그 엄마가 아이를 농촌으로 전학시키고 재개발에 열을 올리는 모습과 얼마 다르지 않다. 그저 속한 세계가 다를 뿐.
 
영화는 한국에 엄존하는 두 세계를 비춘다. 두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현실의 그것과 얼마 다르지 않다. 한국 교육철학은 자유경쟁 중심의 수월성 교육이 수많은 낙오자를 양산한다는 사실을 비판해왔다. 그로 인하여 형평성 교육이념을 강화할 수 있는 몇 가지 장치를 제도로써 마련해 두었다. 농어촌전형 대입특례제도가 그중 하나다.
 
농어촌전형 특례는 자유경쟁에서 낙오할 밖에 없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못한 성적으로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그러나 그 제도조차 남보다 빨리 정보를 취하고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해 더 나은 벌이를 얻도록 하려는 빼꼼이들에게 점령된 지 오래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어떤 마음은 지켜져야만 한다고
 
자유경쟁은 더는 자유경쟁이 아니다. 온갖 전형에 빠삭한 정보력 있는 엄마들이 아이 입시에 일등공신이 되는 세상이다. 정보와 돈이 교육의 성과로 직결된다. 적극 지원하는 부모를, 돈을, 환경을, 그밖에 온갖 유무형 자산을 갖춘 이와 아무것도 없는 이의 경쟁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다.

어디 경쟁 뿐인가. 버티고 살아내는 데도 넘기 힘든 격차가 있다. 영화는 기준에겐 당연한 것이 영문과 영준에겐 그렇지 못함을 드러낸다. 기준에겐 한 차례 실수인 것이 영문과 영준에겐 씻기 힘든 과오가 된다. 부모의 존재가, 재력의 격차가, 곧 계급이며 신분이 된다.

영화의 백미는 영화 속 건실한 모습을 한 인물들의 입에서 "너는 쟤와 달라"하는 말이 터져나오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우리가 사는 세상엔 계급이 있다는 것을 이로써 알도록 한다.

영화 밖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영화 속 어른들은 이들 형제의 사정을 돌아보지 않는다. 들여다 본다 해도 쉬이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높고 멀리 볼 수 있는 이들은 낮고 좁은 시선을 가진 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이해할 필요가 없이 살아왔으니까. 그리하여 영문과 영준의 여름은 기준의 여름과는 다른 계절이 된다. 누군가에겐 서핑의 계절이 다른 누구에겐 폭염이며 혹서기로 기억되듯이.
 
<여름이 지나가면>을 보며 때로 어떤 마음은 미리 구해져야만 하는 게 아닐까를 생각한다. 여름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계급이 드러나는 계절이 오기 전에, 구해져야만 하는 마음들이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여름이지나가면 장병기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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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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