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설>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3.
이 작품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장면은 용준과 여름, 가을 자매가 다르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반인인 용준이 수화를 할 수 있어서 처음부터 그 거리가 좁혀진 상태로 시작되기는 했지만, 대화를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이외의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존재 자체가 아닌 환경의 차이다(용준이 어떻게 수화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엔딩크레디트 이후의 클립에서 알 수 있다). 조선호 감독은 이를 위한 장치를 여럿 마련해 둔다. 자매의 집에 달린 붉은 경광등과 등 뒤에서 다가오는 차량의 존재를 용준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여름의 예민함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다르다는 점이 극 중에서 언제나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이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인물들의 행동을 통해 관객이 긍정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의 장면도 활용되고 있다. 세 사람이 함께 클럽으로 향하는 장면이 여기에 속한다. 음악은 사라지고 공간의 진동만 남는 이 신의 체험을 통해 관객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을 다른 작품에서도 이미 활용된 바 있다. 형식은 조금 다르지만, 영화 <코다>(2021)에서도 주인공의 무대를 바라보는 농인 부모의 장면에서 음소거의 형태로 간접적인 체험이 이루어진 바 있다. 다시, 여름과 가을이 클럽 안의 스피커에 손을 대면서 다시 클럽의 음악이 선명해진다. 환하게 웃는 인물들 사이에서 마음이 먹먹해질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은 막연한 이해 – 체험 – 공감의 과정을 경유하며 더 큰 울림을 준다.
만원 버스 안에서 멀리 떨어져 앉은 여름과 가을의 대화를 용준이 연결해 주는 장면 역시 수화라는 언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순간이다. 음성 언어였다면 타인에게 피해를 줬을 가능성이 있고, 혹은 대화를 포기했어야 할 상황이지만 이들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의사소통을 해낸다. 일반인인 용준이 자매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는 부분도 의미가 있지만, 수화의 특성을 잘 활용하며 이 언어가 얼마나 따뜻한 언어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