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맞담> 스틸컷
인디그라운드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공간은 영화에서 의미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탐미적인 부분에 대한 역할을 맡거나 인물을 위한 배경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의 작품에서 최소한으로 제한되는 경우를 만나게 되는 일은 드물다. 배경에 변화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은 인물의 동선이 억제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극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부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2018)은 놀라운 작품이었다. 밀실을 배경으로 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등장인물을 한정된 공간 안에 늘어놓으면서도 극의 볼륨을 제대로 쌓았다.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부모를 마주하게 했던 영화 <매스>(2022)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런닝 타임 내내 두 부부가 만난 교회의 방 안에서 인물의 표정과 몸짓만 담아내며 대사로만 극을 움직인다. 오래된 영화 <쏘우>(2004)와 같은 밀실 호러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을 고정하거나 배경을 움직이지 않는 작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작품에는 배경의 전환을 통해 얻게 될 긍정적인 효과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무언가가 존재한다.
영화 <맞담> 역시 공간을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공간에서 오롯이 극을 쌓아 올리고 있는 작품이다. 수험생인 딸 승희(유은아 분)의 집이 무대가 된다. 엄마 선영(강지원 분)의 생일날 딸의 가방에서 발견된 담배를 둘러싼 작은 소동극. 김준형 감독은 이 단순하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를 두고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는 가족의 보편성을 스크린 위에 그리려 한다.
02.
"맨날 이런 식이야. 둘 중의 한 명이라도 날 믿어줬으면 이런 일 없잖아."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점진적으로 커지는 사건의 크기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물 사이의 갈등이다. 사건이 덩치를 키워가는 지점의 문제는 인물이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먼저 내놓기에 바쁘고, 그로 인해 마찰이 일어나면서 발생한다. 이 영화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갈등의 원인을 찾는 일이어야 하는 이유다. 표면적으로는 신과 신 사이에 놓이는 몇 번의 장면, 딸 승희의 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가 느끼기에 부모는 자신을 믿기보다 의심을 먼저 하는 쪽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담배와 같은 물건을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는 수험생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엄마는 물론, 중재하려던 아빠 민혁(장정식 분) 역시 사건이 커지는 과정에서 엄마 쪽에 함께 선다. 문제는 담배가 담배가 아닌 대마초로 의심되는 상황이 펼쳐지면서다. 어느 쪽이라도 먼저 딸이 왜 이런 물건을 습득하게 되었는지, 신변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물어봤다면 쉽게 해결되었을 문제다. 물론 이를 막기 위해 영화는 상황을 촉박하게 밀어붙인다.
딸 승희의 태도에도 갈등을 유발할 문제는 분명히 있다.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한 엄마의 추궁에 사실을 이야기하거나 잘못을 고백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 가방을 왜 뒤졌나는 강 대 강의 태도로 맞불을 놓는다. 엄마 선영이 제기한 문제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대응은 한번이 아니라 이후에도 반복된다. 남자 친구가 담배를 준 건 아니냐는 의심에 핸드폰은 또 왜 몰래 훔쳐봤냐고 화를 내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갈등이 되는 담배를 가방 속에 넣어둔 사람은 승희 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