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었던 1998년 <기막힌 사내들>을 통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장진 감독은 2014년 <우리는 형제입니다>까지 17년이라는 길지 않은 동안 12편의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 비록 지금은 10년째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한창 바쁘게 활동하던 시절에는 뛰어난 상상력과 독창적인 색깔로 '장진식 코미디'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감독으로 영화계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장진 감독도 정작 흥행에서 재미를 본 적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장진 감독은 한국 영화가 전국 관객 집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전국 관객 200만을 넘긴 영화가 단 두 편 밖에 없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류승룡, 정재영, 신하균 등 천만 배우들을 '장진 사단'으로 거느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장진 감독의 영화에서는 택시강도 당한 간첩(<간첩 리철진>), 어리바리한 킬러(<킬러들의 수다>), 불치병 걸린 야구 선수(<아는 여자>), 외출을 나온 무기수(<아들>) 등 주로 마이너한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장진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 성적(258만)을 기록했던 영화는 '권력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3명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2009년작 <굿모닝 프레지던트>였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장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장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 CJ ENM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

사실 대통령은 국경일 행사나 대국민 담화에서 TV를 통해 볼 수 있는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지만 그만큼 일반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들은 항상 정돈된 모습만 보여주는 대통령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또는 뜻하지 않는 국가의 위기가 닥쳤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해 할 수 밖에 없다.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만들어지는 이유다.

1996년에 개봉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영화 시작 48분 만에 백악관이 폭파 되고 자유의 여신상이 쓰러지는 장면으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는 빌 풀만이 걸프전에서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던 토마스 J. 휘트모어 미 대통령 역을 맡았는데 휘트모어 대통령은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의 마지막 전투에 직접 참전한다.

1997년에 개봉해 3억15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린 해리슨 포드 주연의 <에어 포스 원>은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1호기 '에어 포스 원'이 공중 납치를 당한다는 내용의 액션 스릴러 영화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전직 공군 특수부대 출신의 미국 대통령은 테러범의 요구를 묵살하고 인질들을 구출하고 테러범을 각개 격파한다. <에어 포스 원>은 게리 올드만의 악역 연기가 빛났던 영화이기도 하다.

1995년에 개봉했던 마이클 더글라스와 아네트 베닝 주연의 <대통령의 연인>은 재선을 노리는 미 대통령 앤드류 쉐퍼드와 백악관에 파견된 환경문제 전문 로비스트 시드니 웨이드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다. 6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7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기대만큼 높은 수익을 올리진 못했지만 '백악관 내에서 벌어지는 현직 대통령의 로맨스'라는 흔치 않은 소재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연인>의 영향을 받아 2002년 대통령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 개봉했다. '국민배우' 안성기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연기했고 최지우가 대통령의 외동딸 영희(임수정)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 역을 맡았다. 임수정의 신인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2002년 연말 시즌에 개봉했음에도 서울 관객 16만으로 큰 흥행은 하지 못했다.

3명의 대통령이 보여준 인간미

 장진 감독은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통해 장동건과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다.

장진 감독은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통해 장동건과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원(?)을 이뤘다. ⓒ CJ ENM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3명의 대통령을 통해 대통령의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는데 주력했다. 임기 말년의 김정호 대통령(이순재 분)은 월드컵 개최 기념 복권 발매행사 때 구매한 복권이 244억 원에 당첨되면서 고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담았다(김정호 대통령은 복권 구매 당시 1등에 당첨되면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도 일확천금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리는 똑같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 두 번째 대통령으로 등장한 차지욱(장동건 분)은 뉴욕에서 공부를 한 유학파 대통령으로 아내와 사별 후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다. 대통령 취임 후 일본과 북한의 군사적 갈등과 아버지의 신장 이식을 부탁하는 청년의 간절한 호소 사이에서 고뇌한다. 하지만 차지욱 대통령은 강경하면서도 인간적인 선택을 했고 결국 일본과 북한의 갈등도 해결하고 사람도 살리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개봉 시점을 기준으로 3년 후에 등장할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예견한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 한국에 없었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경자 대통령(고두심 분)은 지역 개발계획을 둘러 싼 야당의 음모에 걸려 남편과 이혼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한경자 대통령은 청와대 조리장(이문수 분)과의 대화 후 집을 나간 남편(임하룡 분)을 찾아가 춤을 추면서 사랑을 확인한다.

유명 배우들이 대거 카메오로 출연

 박해일은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암살자로 오해 받는 효심 가득한 청년을 연기했다.

박해일은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암살자로 오해 받는 효심 가득한 청년을 연기했다. ⓒ CJ ENM


현재 KBS 일일드라마 <스캔들>에 출연하고 있는 한채영은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김정호 대통령의 딸 김이연 역을 맡았다. 김정호 대통령과 차지욱의 아버지가 오랜 친구 관계였기 때문에 차지욱과 김이연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냈다. 차지욱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한경자 대표가 있는 야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김이연은 차지욱 대통령 퇴임 후 학교에서 재회해 서로 사랑을 확인했다.

<타짜> 시리즈의 짝귀로 유명한 배우 주진모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경호실장을 연기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호 책임자가 계속 바뀌는 실제 정치계와 달리 영화 속에서는 주진모가 연기한 경호실장이 3명의 대통령을 모셨다. 대체로 냉정하게 대통령의 곁을 잘 보필 하지만 차지욱 대통령의 시장방문 때는 대통령 습격(?)을 막지 못해 해임위기에 놓이기도 했다(물론 해임되진 않았다).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장진 감독의 영화답게 많은 유명 배우들이 대거 카메오로 출연했다. '1억 배우' 류승룡은 차지욱 대통령과 남북한 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극비리에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밀사를 연기했다. 박해일은 아버지의 신장 이식 수술을 위해 특이 체질을 가진 차지욱 대통령에게 신장이식을 부탁하는 투서를 가지고 차지욱 대통령 앞에 나타나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는 청년을 연기했다.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개봉했던 2009년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차우>, <10억>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정유미도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카메오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했다. 정유미는 김정호 대통령의 영부인(전양자 분)이 즐겨보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연기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굿모닝프레지던트 장진감독 이순재배우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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