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마라는 자신을 입양한 부모로부터 정신병원에 입원 당하면서 비디오 테이프에 저주를 걸었다.
CJ ENM
사실 <링>의 원작 영화는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고의 공포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작이다. 국내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배두나가 귀신으로 나온 국내 리메이크 버전이 먼저 개봉해 서울에서만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만큼 <링>은 탄탄한 스토리와 으스스한 분위기로 'J-호러의 열풍'을 주도한 작품이다.
할리우드에서는 드림웍스가 제작했고 훗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만들며 명성을 높인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여기에 '영화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가 음악을 담당하는 등 호러 영화로는 상당히 많은 공을 들였다. 호러물로는 48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된 <링>은 2억49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투자가 아깝지 않은 높은 수익을 남겼다.
할리우드판 <링>은 원작의 메인 스토리와 설정을 따라가면서도 배경을 미국으로 현지화하고 영화의 마스코트(?) 야마무라 사다코 역시 미국인 소녀 사마라 모건으로 변경했다. 여기에 공포영화 특유의 관객을 놀래키는 장면을 최소화하고 '천천히 엄습해오는 공포'를 잘 표현했다. 실제로 많은 호러 영화 팬들은 리메이크 영화임에도 할리우드판 <링>의 완성도에 높은 점수를 줬다.
10대 시절인 1980년대 중반에 데뷔했지만 무명 시절이 꽤 길었던 나오미 왓츠는 2001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출연하며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런 왓츠가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후 차기작으로 선택한 작품이 바로 호러영화 <링>이었다. 왓츠는 자신과 아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는 레이첼 켈러 역을 잘 소화하며 할리우드에서 확실한 스타 배우로 자리잡았다.
1편을 통해 제작비의 5배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한 <링>은 3년이 지난 2005년 원작영화의 감독 나카타 히데오가 연출한 속편을 선보였다. <링 2>는 전작과 달리 관객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5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6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괜찮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2017년에 개봉한 <링스> 역시 83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리며 제작비(2500만 달러) 대비 좋은 성과를 올렸다.
뉴질랜드 배우 마틴 헨더슨이 연기한 노아는 비디오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레이첼의 전 남자친구이자 레이첼의 아들 에이든(데이비드 도프먼 분)의 생부다. 섬에 들어갔다가 위험에 빠진 레이첼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저주를 풀었다고 안심하는 순간 TV 밖으로 기어 나온 사마라(더베이 체이스 분)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영화에서 가장 허무하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레이첼의 아들 에이든을 연기한 데이비드 도프먼은 <링>시리즈와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등 공포 및 호러 영화에 많이 출연한 아역배우다. 에이든은 영화 엔딩에서 자신을 살리려는 엄마 레이첼과 함께 질병처럼 퍼질 비디오의 복사 버튼을 누른다. 영화에서는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4차원 아들로 나오지만 도프먼은 13살의 어린 나이에 UCLA 대학에 합격했고 18살에는 하버드 법학 대학원에 입학한 수재다.
원작 영화에서 관객들을 잠 못 이루게 만들었던 공포의 존재 사다코에 해당하는 캐릭터는 가수 겸 배우 더베이 체이스가 연기한 사마라가 대신했다. 사마라는 아이가 없는 리처드와 애나 부부에게 입양됐지만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사마라는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 자신이 겪은 고통이 세상에 퍼지길 원했던 생각을 몸소 실천(?)해 준 레이첼을 끝까지 살려준다.
동양 공포영화 리메이크한 작품들
한편, 할리우드는 아시아의 공포 영화 판권을 구입해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각색해 리메이크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무리 좋은 원작으로 리메이크를 하더라도 언제나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원작의 무서운 분위기와 스토리가 현지 관객들에게 잘 전달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설픈 각색이나 연출, 원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만들어 현지 관객들이 낯설게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비디오 판으로 먼저 제작됐다가 2002년과 2003년 극장판으로도 개봉했던 <주온>은 <링>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공포 영화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2003년 6월 개봉해 전국 100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할리우드에서는 2005년 <그루지>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세 편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2019년 스핀오프까지 제작되면서 원작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편에서 한국배우 장근석이 출연기도 했던 영화 <착신아리>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세 편에 걸쳐 제작됐고 2005년에는 드라마로 제작돼 방송되기도 한 일본의 공포 영화다. 할리우드에서는 지난 2008년 <원 미스드 콜>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간신히 제작비를 회수했다. 이 영화는 미국의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점수에서 0%라는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눈이 보이지 않던 주인공이 각막 이식 수술을 받고 귀신을 보게 된다는 설정의 공포영화 <디 아이>는 홍콩과 싱가포르, 태국의 합작 영화로 2004년 속편, 2005년 3편까지 개봉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지난 2008년 제시카 알바가 주연을 맡아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할리우드판 <디 아이>는 1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8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제시카 알바의 '몇 안 되는' 흥행작이다.
한국영화 <장화, 홍련>은 잘 짜여진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 김지운 감독의 뛰어난 영상미가 어우러지면서 개봉 당시 314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크게 흥행했다.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지난 2009년 드림웍스에서 <The Uninvited>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국내에서는 <안나와 알렉스: 두 자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개봉해 4만8000명은 동원하는 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