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비홍2-남아당자강 포스터

▲ 황비홍2-남아당자강 포스터 ⓒ 조이앤클래식


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내아이들치고 보지 않은 이가 없는 영화가 있다.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우뢰매> 시리즈 등 그런 영화가 제법 되긴 하지만, 이 영화도 그 목록에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바로 <황비홍> 시리즈다.
 
70년대를 이소룡이, 80년대부터 성룡이 최고 액션스타 자리에 올랐다면, 90년대부터는 이연걸의 시대가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성룡이 무술영화 중심의 나유프로덕션에서 보다 상업적인 작품을 두루 만드는 골든하베스트로 이적하며 빈 정통무술영화 스타의 자리를 이연걸이 꿰찼다고 해도 좋다.
 
<황비홍> 시리즈는 엘리트 무도인의 길을 걷다 영화계에 뛰어들었으나 좀처럼 작품이 뜨지 않던 이연걸을 일약 스타배우로 만든 기념비적 작품이다. 황비홍은 홍가권이란 중국의 전통 무공의 전승자이자 이를 개량해 발전시킨 청나라 말기의 무도인으로, 광동성 일대에서 홍가권이 차지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청나라 말기의 특성상 곽원갑 등과 함께 중국 고유의 무술을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영화는 황비홍이란 전설적 인물 위에 당대 시대상을 대표하는 무인의 상징성을 입힌 영웅담이다. 아편전쟁 이후 반세기 넘게 서구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해 있던 청나라의 현실 가운데서 중국인의 자부심을 세우는 인물로 황비홍의 존재를 부각한다. 오랜 기간 외세에 짓밟히며 유약하고 무력하단 인상이 남아 있는 당대 중국의 인상을 뒤집고, 중화의 기치 아래 새로운 영광을 꿈꾸던 1990년대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던지는 작품으로 제작됐다.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조이앤클래식

 
90년대 중화 자존감 지킨 전설적 작품
 
유구한 전통을 가진 무예는 중국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편전쟁, 즉 고작 수만 명에 지나지 않던 영국군에게 그야말로 무참히 짓밟힌 대제국 청나라의 패배는 중국 근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무력이 비교조차 되지 않았던 무참한 패배, 심지어는 여러 열강조차 예상치 못했던 격차를 확인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겐 자존감이 완전히 박살나는 순간이었을 테다. 그로부터 오랫동안 수많은 나라에게 본토의 이권을 빼앗겨온 중국이니 조국의 힘없음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무예는 중국에도 무라는 가치가 남았음을 일깨우는 요소였다. 젊은이들이 신체를 단련하고 투로를 익히며 격투에 나서는 전통적 무예가 중국에는 여적 수백수천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 곽원갑과 황비홍처럼 주변에 신망을 얻은 무인들이 나타났고, 이들을 추앙하며 따르는 세력이 일어났다. 쑨원과 같은 민족지도자가 곽원갑으로 하여금 정무체육회를 조직하게 하고, 황비홍에 그에 가입한 건 이 같은 흐름에 따른 것이다.
 
곽원갑은 그중에서도 갑이라 부를 만한 인물이다. 이소룡의 <정무문>, 성룡의 <신정무문>을 비롯하여 일찌감치 곽원갑과 그 후예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끊이지 않고 제작된 건 당연한 일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있던 홍콩영화계는 자연히 또 다른 이야기에 골몰하게 되고, 곽원갑 만큼은 아니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진 황비홍에게 주목이 갈 밖에 없었다.

홍콩영화계 최고의 제작자이자 감독인 서극이 <황비홍> 시리즈를 이끈 선장이었다. 삼합회의 검은 돈이 장악한 당대 홍콩영화계에서 독자적 자본을 끌어들여 영화사를 설립했던 서극이다. 그가 제작한 <영웅본색> 시리즈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당대 홍콩영화계를 이끄는 기수로까지 평가받았고, 그가 다음 주목한 게 바로 <황비홍> 시리즈였던 것이다. 정통 무술영화니만큼 오로지 무술 실력으로 이연걸을 과감히 캐스팅했고, 당대 유명 여배우였던 관지림까지 출연을 확정지으며 기대를 모았다. 오우삼에게 바통을 받아 연출했던 <영웅본색 3>에 이어 <황비홍> 시리즈에선 직접 감독 자리를 꿰찼다.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조이앤클래식

 
서극과 이연걸, 홍콩영화계 전설의 만남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서극불패, 대성공이었다. 서극의 전성기가 이로부터 열렸다 해도 좋을 만큼 걸출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황비홍 2 - 남아당자강>은 첫 편의 기세를 이어 제작한 후속편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사실상 황비홍(이연걸 분)의 제자인 양관(원표 분)이라 해도 좋았지만, 이연걸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폭발적이자 아예 이야기를 황비홍 원톱 영화로 수정해 만든 작품이다. 원표는 아예 하차하고 황비홍 중심의 이야기로 채워지는데, 이연걸은 기다렸다는 듯 러닝타임 내내 제 존재감을 과시한다.
 
2편은 은밀하게 혁명활동을 진행 중인 젊은 쑨원(장철림 분)이 등장하는 특별한 시리즈다. 청나라 군주제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우는 신해혁명의 주역으로, 중국과 대만, 홍콩 모두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그다. 그런 쑨원이 암암리에 활약하는 도중 황비홍의 도움을 입는다는 게 영화의 주된 줄거리라 하겠다.
 
배경은 청나라 말엽인 1890년대, 외세의 침탈과 혹세무민하는 국내 세력들로 인해 나라가 혼탁한 지경에 처해 있던 시기다. 전설 그대로 무예와 동양의술에 통달한 황비홍은 신여성 양이모(관지림 분)와 제자 양관(막소총 분)을 데리고 광동성에 도착한다.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황비홍2-남아당자강 스틸컷 ⓒ 조이앤클래식

 
폐쇄적 국수주의 넘어 다름을 존중하는
 
그런데 도착한 광동성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백련교라 불리는 신흥종교 지지자들이 몰려다니며 서양의 것이라면 죄다 부수고 불태우는 과격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 갈라진 분파로써 중국 역사의 여러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던 백련교는 한족이 결집하여 타 민족과 부딪칠 때 구심점이 되기도 하였는데, 영화 속에선 무지한 백성을 자극하여 폭력성을 끌어내는 극우적 종단으로 그려진다. 무튼 백련교도가 서양복식을 한 양이모를 납치하고 서양인들도 죽이려들자 황비홍이 나서 그들에 맞서는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 줄기를 이룬다.
 
그러한 과정에서 황비홍은 쑨원과 그 동지를 알게 되고, 이들이 하려는 일의 가치를 깨닫고 결정적 도움을 주기에 이른다. 황비홍은 처음엔 백련교도들과 맞서 일대 결전을 치르고, 나중엔 청나라의 부패한 관료(견자단 분)에 맞서 혈투를 벌인다. 이 두 차례 액션은 이 시리즈를 넘어 당대 홍콩영화 최고의 액션 가운데 꼽힐 만한 명장면들을 낳았는데, 역사상 모든 배우 가운데 무술로는 최정상급이라 해도 좋을 이연걸과 그 동문인 견자단, 또 감독 서극의 전성기에 찍은 액션신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황비홍 2>는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전의 많은 홍콩영화가 역사를 다루며 한족 중심의 세계관을 일방적으로 떠받들었다면, 이 영화는 의화단의 난을 연상시키는 백련교도의 폭력을 비판적으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족 외의 것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고 폐쇄적이며 혐오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규탄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견지하려 든다는 이야기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사상을 폭넓게 품으려 했던 쑨원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점부터가 이를 방증한다. 10여 년 전 나온 이소룡의 <정무문>이 외세를 적대시하는 한족 결집의 주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내보인 것과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여러모로 <황비홍 2>는 중국 반환 이후 몰락한 홍콩영화계와 시진핑 집권 뒤 국수주의적으로 변해버린 중국영화계의 오늘을 고려할 때 다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색채의 작품이라 해도 좋겠다. 중국의 무너진 자긍심을 일으켜 세우면서도 중국 외의 것을 존중하는 태도, 오늘의 중국문화에 간절한 태도가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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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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