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제국을 중심으로 한 추축국과 미국, 소련, 중국, 프랑스가 이끄는 연합국이 맞서면서 6년 동안 이어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 21년 만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중심이었던 미국과 소련이 종전 후 초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양 국이 중심이 된 새로운 냉전시대가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은 큰 규모와 오랜 기간 때문에 훗날 많은 대중예술작품을 통해 다뤄졌고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987년 <태양의 제국>을 만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98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명작을 연출했다.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가족 드라마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본 영화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01년에는 <더 록>과 <아마겟돈>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떠올랐던 마이클 베이 감독이 벤 애플렉과 조쉬 하트넷, 케이트 베킨세일 같은 젊은 배우들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 긴 러닝타임과 뻔하고 빈약한 스토리라는 비판과 웅장한 스케일,  화려한 액션연출이라는 호평이 공존하며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렸던 영화 <진주만>이었다. 

 <진주만>은 국내에서 서울관객 100만을 돌파하며 크게 흥행했다.

<진주만>은 국내에서 서울관객 100만을 돌파하며 크게 흥행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2000년대 초·중반에 전성기 보낸 영국배우

1973년 영국에서 태어난 베킨세일은 10대 시절 섭식장애를 겪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도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해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1993년 영화 <헛소동>을 통해 배우로 데뷔한 베킨세일은 1995년 배우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연극과 TV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발랄하고 새침한 소녀나 거만하고 속물적인 젊은 여성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그렇게 영국 내에서 이름을 알리던 베킨세일은 지난 2001년 할리우드의 대작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바로 절친한 두 친구와 삼각관계에 빠지는 미 해군 간호사 애블린 존슨을 연기했던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이었다. <진주만>의 흥행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베킨세일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언더월드>에 출연했다.

베킨세일은 훗날 두 번째 남편이 되는 렌 와이즈먼 감독이 연출한 <언더월드>를 통해 고난도의 액션훈련을 소화했다. 2016년까지 5편에 걸쳐 제작된 <언더월드> 시리즈는 많지 않은 제작비로도 5억3900만 달러라는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베킨세일은 <언더월드> 시리즈를 찍으면서 <반 헬싱>과 <에비에이터>, <클릭>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했다.

베킨세일은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직업정신 투철한 간호장교부터 섹시한 여전사, 시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배우, 낭만주의에 빠진 운명론자 등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엔 대표작 <언더월드> 시리즈를 제외하면 출연하는 영화마다 좋은 평가를 받지도,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지도 못했다. 할리우드 활동을 기준으로 전성기가 비교적 짧았던 셈이다.

베킨세일은 지난 2012년 남편 렌 와이즈먼 감독이 연출한 <토탈리콜> 리메이크작에서 원작의 샤론 스톤이 연기한 로리 퀘이드 역을 맡았다. 하지만 <토탈리콜>은 1억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억 달러의 성적에도 미치지 못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2016년 <레이디 수잔>으로 오랜만에 호평을 받은 베킨세일은 2021년 액션코미디영화 <졸트>에 출연했지만 북미에서 극장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CG 최소화한 실감나는 전투장면 촬영
 

 <진주만>은 영화 속 전투장면의 상당부분을 CG 없이 직접 촬영했다.

<진주만>은 영화 속 전투장면의 상당부분을 CG 없이 직접 촬영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진주만>은 1996년 <더 록>으로 3억3500만 달러, 1998년 <아마겟돈>으로 5억53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1억4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전쟁 드라마다. '미국식 영웅주의'를 강조한 스토리와 3시간에 달하는 긴 런닝타임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세계적으로 4억4900만 달러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흥행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진주만>은 미국의 영화 평론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24%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에 2400여 명이 참여한 국내 N포털사이트에서는 네티즌평점 8.59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진주만>은 국내에서 2001년 5월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106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진주만>이 국내관객들의 정서에 어울리는 영화였다는 뜻이다.

<진주만>이 국내에서 크게 흥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더 록>과 <아마겟돈>을 크게 흥행시켰던 마이클 베이 감독에 대한 믿음과 1시간이 넘는 화려한 액션 장면 등 여러 요인이 있었다. 하지만 <진주만>은 전쟁영화의 비장함뿐 아니라 레이프(벤 애플렉 분)와 대니(조쉬 하트넷 분), 애블린(케이트 베킨세일 분)의 애틋한 삼각관계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관객들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영화에 대한 여러 비판들과 별개로 <진주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중전 장면의 상당수는 실제 전투기를 띄워 촬영했다. 이 같은 장면들을 촬영하기 위해 최고의 파일럿들을 섭외해 실제에 가깝게 촬영했고 전투기 격추장면을 비롯해 안전문제로 촬영이 불가능한 일부 장면을 제외하면 CG사용을 최소화했다.

<진주만>은 한스 짐머가 만든 < Tennessee >와 페이스 힐이 부른 < There You'll Be > 등 OST도 상당히 유명하다. 사실 < There You'll Be >는 셀린 디옹에게 맡기려 했는데 이미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불렀던 셀린 디옹이 '영화 주제가 전문가수'로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우려해 고사했다. 하지만 페이스 힐이 부른 버전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조연으로 등장한 진주만 공습 실존인물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연기한 도리스 밀러는 실제 진주만 공습에 참여했던 실존 인물이다.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연기한 도리스 밀러는 실제 진주만 공습에 참여했던 실존 인물이다. ⓒ 한국소니핏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출세작 <굿 윌 헌팅> 이후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 <아마겟돈>을 통해 할리우드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벤 애플렉은 <진주만>에서 전투기 조종사 레이프를 연기했다. 레이프는 영화 속에서 난독증을 가진 파일럿으로 나오는데 실제로 난독증을 가진 사람이 파일럿이 될 확률은 매우 낮다. 신체검사 이후 레이프의 난독증이 부각되는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불필요한 설정이었다.

젊은 시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청춘스타였던 조쉬 하트넷에게도 <진주만>은 데뷔 후 처음 출연했던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하트넷은 <진주만>에서 레이프의 여자친구 애블린을 짝사랑하는 대니 역을 맡았는데 대니는 레이프의 전사소식을 들은 후 애블린과 하룻밤을 보낸다. 대니는 영화 후반 일본군의 총에 맞고 죽어가면서 레이프에게 "나를 대신해 내 아이의 아빠가 돼줘"라는 유언을 남긴다.

<진주만>의 세 주인공 레이프, 대니, 애블린은 모두 가상 인물이지만 <진주만>에서는 실제 진주만 공습에서 활약했던 실존인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쿠바 구딩 주니어가 연기했던 도리스 밀러였다. 도리스 밀러는 진주만 공습에서의 활약으로 해군십자훈장을 수여 받았는데 영화에서도 도리스는 중상을 입은 함장을 구호하고 대공기관총으로 일본기를 격추시키는 활약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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