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 들어서자 배우가 관객을 맞이했다. 관객이 배우를 맞이하는 보통의 상황과 달리, 연극 <일리아드>는 배우가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배우는 퇴장하지 않는다. 관객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무대를 지킨다.

연극 <일리아드>는 기원전 8세기에 쓰여졌다고 알려진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또는 '일리아스')를 배우 한 명이 '내레이터'에 분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내레이터는 트로이 전쟁을 다루는 '일리아드'를 관객에게 설명하며, 때때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관객과 배우 사이를 구분하는 제4의 벽은 없다. <일리아드>에서만큼은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아니라 화자와 청자의 관계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레이터의 모습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리스의 맹장 '아킬레우스'를 묘사하다가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를 묘사하고, 어떨 때는 누군가의 아내를, 누군가의 아버지를, 전쟁의 동원된 어린 병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게 트로이 전쟁을 묘사하고, 전쟁을 지켜본 자신의 소회를 밝히고, 전쟁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 더웨이브

 
전쟁을 향한 근본적 질문

내레이터는 오래 전부터 전쟁을 지켜봤고, 지금도 지켜보고 있으며, 자신이 본 바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존재다. 트로이 전쟁을 개괄하는 내레이터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필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왜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무엇이 이들을 싸우게 하는가?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을 죽이려 할 때, 여신 아테나가 막아선다. 아테나는 아킬레우스에게 죽이지 말라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 아킬레우스는 여신의 말을 따른다. 전쟁에 신이 개입하고, 전쟁의 방향성을 점지해준 것이다. 트로이 전쟁 이후에도 신이 동원된 전쟁은 무수히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필자는 고민했다. '전쟁하게 하는 신'이라면 대체 그 신은 누구인가.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신의 서사는 진정 신의 뜻인가, 아니면 호전적인 인간의 의지인가.

트로이를 위해 싸우는 헥토르는 자신이 "체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힌다. 그에게 체제는 국가, 제도, 가족 등이었다. 전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진 많은 사람들도 그 체제를 믿었을 것이다. 국가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전쟁에서 이겨 체제를 지켜야 한다고, 희생과 헌신으로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껍데기를 벗겨내면 남는 것은 없다. 병사들은 왜 싸우는지 알지 못한다. <일리아드> 속 내레이터의 회고에 따르면, 그들은 "왜 싸우는지 잊어버렸다". 여기서 오는 허무함은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한다.

특히 아킬레우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온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일화는 전쟁의 참상을 통렬하게 드러낸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처참하게 훼손한다. 이에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시선을 돌려달라고 간청한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행동을 회고하며 눈물을 보이고, 시신을 돌려준다. 이때 두 인물에게서 일련의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핵심이라고 느낀 건 바로 다음 장면이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안장하고 애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묻는다. 이에 프리아모스 왕은 11일이 필요하다고 답하고, 아킬레우스는 11일 동안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11일 후에 전쟁을 재개하겠다는 말이다. 전쟁의 참상을 느꼈고, 이로부터 허무함을 깨달았음에도 이들은 전쟁을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왜 싸우는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 더웨이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극이 한참 진행 중일 때, 내레이터는 전투 장면을 치열하게 묘사한다. 빠른 속도로 전투 장면을 그려내는 내레이터의 눈에서는 광기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는 와중에 현대인에 대한 묘사도 등장한다. 끼어들기한 차에 분노하고, 클락션을 울리고, 욕을 하는 현대인 말이다.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형태만 다를 뿐 트로이 전쟁 때의 분노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깨달았다. 분노는 더 교활해지고 치밀해졌다. 분노가 적대와 증오를 낳고, 나아가 혐오를 낳는 시대다. 피는 튀기지 않지만, 오히려 피 튀기지 않아 더 무서운 전쟁의 연속을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다.

이제야 내레이터 역할의 배우가 공연 시작 전부터 공연이 끝나고 관객이 퇴장하는 순간까지 무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가 연극에서 다루는 트로이 전쟁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전쟁이 존재했고, 트로이 전쟁 이후에도 아직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의 분노와 전쟁의 참상이 지속되는 한, 내레이터는 무대에서 내려올 수 없는 존재다.

내레이터라는 존재가 언젠가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긍정하고 확신할 수 없어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순간, 내레이터는 자신이 지켜봐온 전쟁의 이름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깊고 짧은 호흡을 내쉰 후, 정면을 응시한 채 강한 어조로 전쟁의 이름 하나를 추가로 말한다. 그 이름이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다.

"제3차 세계대전"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연극 <일리아드> 공연사진 ⓒ 더웨이브

 
한편, 연극 <일리아드>는 9월 8일까지 대학로에 위치한 예스24아트원 2관에서 공연된다. 황석정과 최재웅, 김종구가 번갈아가며 '내레이터'를 연기한다.
공연 연극 일리아드 호메로스 예스24아트원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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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사회를 이야기하겠습니다. anjihoon_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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