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광고와 결합하는 건 시대의 자연스런 흐름으로 여겨진다. TV 상업광고 연출자이던 이들이 영화계로 건너와 뿌리내린 것도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 유명한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부터 <뷰티 인사이드>를 연출한 한국의 백 감독에 이르기까지, CF 연출자 출신으로 영화계에서 성공한 이들이 꾸준히 나타났던 것이다.
 
영상과 이야기, 음악의 결합체로써 단단히 채워진 보는 이의 빗장을 열어젖혀 파문을 일으키는 것, 영상광고와 영화에 분명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광고와 영화의 만남은 그저 연출자의 이동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기생충> 이후 국민메뉴가 되어버린 '짜파구리'나 < 007 > 시리즈 이후 전 세계적 음료가 된 '마티니', <로마의 휴일> 이후 낙후되어가던 환경에도 낭만적 관광지로 재탄생한 로마의 사례는 영화가 가진 홍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큰 자본을 들여 간접광고(PPL)를 진행하는 사례도 수없이 많은데, 긴박한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특정 회사의 로고가 커다랗게 보이는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S24 Hours MOVIE SERIES 포스터

▲ S24 Hours MOVIE SERIES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영화와 광고의 만남, 무주산골영화제까지
 
광고업계의 기민한 침투가 이쯤에서 멈출 리 없다. 영화 가운데 제 제품을 슬쩍 밀어 넣는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 업체가 아예 영화를 제작하기에 나선 것이다. 고도화된 카메라 성능으로 영화 한 편을 찍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가 되자 휴대폰 제작업체가 영화감독을 섭외해 작품을 찍도록 하는 사례가 벌써 여럿이다. 수년 전부터 애플은 아이폰으로 영화 전체를 촬영한 작품을 제작지원해오고 있는데, 아예 '샷 온 아이폰(Shot on iPhone)' 시리즈로 프로모션 차원에서 묶어 공개하기도 했다.
 
완성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이제는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된 션 베이커가 2015년 <탠저린> 전체를 아이폰으로 촬영해 발표한 건 대단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애플은 촬영을 위해 그에게 아이폰5S를 기꺼이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션 베이커는 화질과 해상도 측면은 이미 영화촬영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 밝혔다. 벌써 한참된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그만한 완성도는 아니지만 2011년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4로 단편 <파란만장>을 찍어 개봉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삼성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까.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2024년 1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삼성이다. 열성팬이며 브랜드 이미지 측면에선 애플에 미치지 못한대도 기술력에서 밀린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딘지 서운하다. 애플이 강점을 보여온 카메라, 특히 화질과 해상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주장하는 삼성이다.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가 있다면 갤럭시로 찍은 영화가 없으란 법 없다.
 
삼성전자 야심작, 따끈한 감독과 배우로부터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제12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상영된 < S24 Hours MOVIE SERIES >는 올해 처음 공개된 갤럭시 S24로 찍은 단편 모음집이다. 무주가 매해 주목할 만한 배우를 가려 뽑는 '넥스트 액터'에 선정된 고민시가 주연을 맡았다. 감독은 넷플릭스 시리즈 < D.P. >로 주목받은 한준희다. 가히 따끈한 감독과 배우의 만남으로, 삼성이 얼마나 기대를 품고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는지가 드러난다.
 
'한낮의 한 낯선', '노크 IN THE 다크', 'WINNING 9PM', '내가 원한 아침'까지 네 편의 단편이 함께 묶였다. 각 5분에서 6분 정도의 짤막한 영화로, 전편 합쳐 25분짜리 12세 관람가 극영화로 초청됐다. 공개 한 달 만에 유튜브에서 1000만 뷰를 훌쩍 넘겼고 전 채널을 합산해 5000만 뷰에 이르렀다는 화제성이 삼성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은 모양이다. 기존 광고물보다 한 차원 나아간 완성도가 작품을 어엿한 극영화로 영화제에까지 내걸게 되었으니 영화와 광고 사이 놓인 장벽이 또 한 층 무너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첫 편 '한낮의 낯선'은 애인과 헤어지고 함께 떠나기로 했던 여정을 홀로 떠나는 여자의 이야기다. 프랑스행 비행기 안에서 훤칠한 프랑스 남자에게 운명을 느끼는 그녀의 설렘을 흥미롭게 포착했다.
 
장르성 두드러진 4편의 단편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노크 IN THE 다크'는 6분짜리 짤막한 미스터리 스릴러라 해도 좋겠다. 혼자 사는 집에서 소설을 쓰는 그녀, 한밤중 복도식 아파트 문짝을 세차게 두드리는 누군가를 맞이한다. 수상한 방문객으로부터 점차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재빠르게 공포를 전해준다.
 
'WINNING 9PM'은 '페이커 Faker'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진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가 깜짝 등장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기실 이 시리즈가 거둔 어마어마한 화제성에 페이커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삼성이 얼마나 이 작품에 공을 들였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페이커가 주인공 민시가 일하는 야간 편의점에 손님으로 찾는 장면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편의점을 털어가는 비행청소년들과 그들을 응징하는 알바생 민시의 이야기가 마치 버츄얼 게임처럼 흘러간다. SF와 액션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이 영화기 끝나면 시리즈 마지막 작품 '내가 원한 아침'이 시작된다.
 
간접광고 넘어 아예 광고영화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S24 Hours MOVIE SERIES 스틸컷 ⓒ 무주산골영화제

 
고요한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로 맞이한 아침. 스님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는 민시의 사연이 이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그녀가 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상실 때문. 수명이 다해 떠나간 반려견을 잊지 못하여 민시는 주체할 수 없이 울어버린다. 그녀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놀라우면서도 당황스럽게도 갤럭시 S24의 기능으로 연결되니, 곰곰이 돌아보면 네 작품 모두가 작품 가운데 이 신제품의 기능을 슬며시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갤럭시 S24로 촬영했을 뿐 아니라, 아예 작품 가운데 이 기기의 기능을 활용하고 홍보하는 것이 이 시대 광고와 영화의 결합이 어떤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짐작케 한다. 단박에 주목받는 젊은 감독으로 떠오른 한준희가 작품을 매끄럽게 찍어내려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고, 불굴의 의지로 영화계에 제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고민시가 자칫 어수선할 수 있는 시리즈에서 중심을 붙들고 고군분투한다.
 
짧은 시간에 멜로와 공포, 액션과 판타지를 오가는 이야기는 하나씩 뜯어보면 서사와 구성에서 전형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조금 긴 광고쯤에서 그치는 아쉬움을 노정한다. 일찍이 리들리 스콧이 수많은 광고를 통해 보였던, 또 애플의 유사 프로젝트가 때때로 보여주고 있는 기발함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듯하여 실망도 든다.
 
광고와 영화의 경계를 생각하게 하다
 
그럼에도 개별 영화는 적어도 기술적 측면에선 삼성의 갤럭시S24가 마치 TV드라마나 영화처럼 세련된 영상과 음성을 담아낼 수 있음을 내보인다. 특히 탑재된 AI영상 기능을 활용해 촬영되었다는 장면들도 어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새 시대가 눈 앞에 도래했음을 실감케 한다.
 
올해 무주산골영화제를 찾아 < S24 Hours MOVIE SERIES >가 묶인 섹션을 보았다는 소성경씨는 "광고긴 하지만 유쾌하고 참신한 소재를 다루며 색다른 느낌이라 몰입감이 좋았다"며 "전체적으로 고민시의 사랑스러운 모습에다 액션 신으로 매력이 더 돋보여 인상적"이라고 감상을 전했다.
 
전북 일대 문화애호가들이 모여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북영화문화방' 소속이기도 한 소씨는 "특히 인상 깊은 한 장면은 공포영화 느낌으로 흘러가다가 카메라로 (어두운 복도식 아파트 복도를) 찍어보곤 어둠 속 고양이를 발견하고 안도하는 장면이었다"며 "핸드폰 광고를 이렇게 하다니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포스터 ⓒ 무주산골영화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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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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