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간절하다는 이가 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그들은 목 놓아 관심이 간절하다 말한다. 그저 남인 것도 아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해 이들은 우리의 관심을, 애정을, 심지어는 채찍질이라도 구한다고 말한다.
 
개와 고양이가 아닌, 인간이 선택적으로 귀여워하는 동물이 아닌, 가축과 같이 길들여 함께 살아온 동물이 아닌, 우리가 그 터전을 빼앗고 멸종의 위기로 몰아놓고도 그를 알려들지 않는 야생동물을 위하여, 이들은 관심이 간절하다고 말한다.
 
땡볕 아래 서면 땀이 절로 뻘뻘 흐르는 초여름 날씨, 야생동물 한 마리라도 더 구하고자 농수로와 논밭을 헤매는 이들이 에어컨 아래 앉은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구한다. 그렇다면 왜 듣지 않겠는가.
 
생츄어리 포스터

▲ 생츄어리 포스터 ⓒ 시네마달

 
알지 못했던, 그러나 알아야만 하는
 
<생츄어리>는 당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어느 진실을 일깨우는 영화다.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노라고 자신하는 오만한 인간 앞에 네가 사실은 매트릭스 안에 살아가고 있노라고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다큐멘터리다. 다큐의 본령이 인간을 일깨워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 본령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이다.
 
생츄어리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보호구역을 뜻하는 말이다. 오갈 곳 없는 동물을 위한 보호시설, 다치고 병들어 최소한의 존엄을 꾸려갈 수 없는 동물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시설이다. 한국엔 야생동물을 위한 생츄어리가, 그러나, 단 한 곳도 없다.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거점동물원인 청주동물원, 곰 생츄어리 사업을 벌이고 있는 프로젝트 문 베어, 야생에서 생존할 수 없게 된 동물을 구조하여 치료한 뒤 생태계로 되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생츄어리>가 담고 있는 주요 주체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야생성을 잃은 동물을 보호하고 지켜내려 하지만, 수많은 전선에서 그를 이루는 데 실패한다.
 
생츄어리 스틸컷

▲ 생츄어리 스틸컷 ⓒ 시네마달

 
야생동물 생츄어리? 그게 왜 필요한데?
 
왕민철의 '동물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 <생츄어리>는 동물을 보호하려는 이들이 맞이하는 죽음들과 제도적으로 이를 낫게 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생츄어리는 바로 그 노력이 도달할 수 있는 1차 목표점이라 해도 좋겠다.
 
생츄어리가 대체 왜 필요한가. 영화는 이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인간에 의해 다치고 죽임을 당하며 삶의 터전을 빼앗긴 동물들의 모습을 다방면에서 잡아낸다. 누군가는 고의로 농약을 묻힌 먹이를 풀어 새들을 떼로 죽인다. 그 죽음들이 연쇄적으로 다른 개체를 중독 시키고 감히 감당키 어려운 비극을 낳는다.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장치들, 이를테면 농수로와 온갖 농업설비가 또 동물들을 상하게 한다.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가 죽음이 일상이 된 센터의 현실을 말한다. 김 관리사는 "(구조한 동물 가운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40퍼센트가 채 안 된다"며 "나머지는 결국 죽는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연간) 2500마리가 들어오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죽어나가는 곳(이 센터)"라며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이, 기술이 필요하고 지원을 받고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질적 발전을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관심과 채찍이 있어야만 더 많은 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생츄어리 스틸컷

▲ 생츄어리 스틸컷 ⓒ 시네마달

 
한 해 1500마리 안락사, 그들이 놓인 현실
 
센터가 기껏 구조한 동물 수천 마리를 안락사 시키는 이유는 명백하다. 돈과 공간, 인력과 시간이 모두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김 관리사는 "'생츄어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대사가 영화를 관통한다고 생각한다"며 "(동물의 고통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로써 안락사가 필요하기에) 생츄어리가 안락사를 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 되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센터가 주어진 자원으로 구조와 재활을 감당하는 데 급급한 상황에서, 동물복지에 전념할 수 있는 별도 시설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생성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을 왜 인간이 자원을 들여 보호해야 하는가. 다큐 <생츄어리>가 충실히 묻지는 못한, 그러나 묻고자 했을 질문이 바로 이것일 수 있겠다. 영화는 그 시작과 끝에 농수로에 빠져 죽는 동물들과 그들을 구조하려는 센터 직원들의 모습을 배치하고, 중간에서도 동물원과 곰 사육장 등 인간의 필요에 의해 쓰이다 죽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와 같은 사례가 명확한 질문으로 묶이지는 않고 있으나 이를 배치한 의도를 곰곰이 짚어보자면 그 의도가 흐릿하게나마 드러난다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인간에 의해 삶의 가능성을 잃은 동물들, 그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연구와 교육, 보전의 측면에서 사육된다. 곰 사육장 등에선 경제적 필요며 수요에 의해 길러진다. 파괴되는 야생동물의 터전 또한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것이다. 농수로며 쥐덫, 농약 등과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온갖 방식으로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생츄어리는 그 책임을 적어도 최소한이나마 져야 한다는 노력이다. 인간이 말살한 동물의 자연스런 삶의 가능성을 보상하고자 그 존엄과 복지에 기여해야한다는 움직임이다. 살아 있는 곰의 쓸개에 관을 꼽고 그 즙을 뽑아먹는 잔학한 행위에 우리가 농장이란 이름을 붙여왔다면, 적어도 그에 대한 생츄어리 정도는 만들어주어야 인간다운 일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어디 곰 뿐이랴.
 
생츄어리 스틸컷

▲ 생츄어리 스틸컷 ⓒ 시네마달

 
동물에 대한 애정, 책임으로 이어져야
 
충주동물원 수의사였다가 곰 생츄어리를 만들려는 활동가로 변신한 최태규는 "생츄어리는 야생동물이 자연으로 나가지 못할 때 그들을 돌보는 복지 그 자체가 목적인 시설"이라며 "동물의 쓰임이 없어지고 다했을 때 그 동물 돌보는 공간"이라고 그 가치를 역설했다. 생츄어리가 있다면 안락사를 당하는 동물 중 어떤 개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고통을 겪는 많은 수의 동물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그것이 최소한의 책임이 아니냐고 <생츄어리>는 묻고자 한다.
 
야생동물은 애완동물이며 가축과 그 처지며 인식, 상황이 다르다. 수많은 동물군 가운데서 야생동물이 처한 상황이 가장 암담하다 해도 좋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도리어 그 반대라 해도 좋다. 과연 이것이 합당한 일인가.
 
김 관리사의 말은 <생츄어리>가 2024년 한국에 갖는 가치를 관통한다. 그는 "한국사람들이 동물을 정말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동물의 귀여운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실제모습은 다르다"고 말한다. 김 관리사는 이어 "(야생동물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고민을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동료들은 땡볕을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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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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