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댄싱퀸>은 노르웨이 영화다. 노르웨이, 익숙하지만 얼마 알지 못하는 나라다. 한참 시간을 두고 내가 노르웨이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중에서도 북쪽 나라란 것, 수도가 오슬로란 도시란 것, 하루키의 가장 유명한 소설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이었다는 것, 축구선수 가운데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엘링 홀란드의 나라라는 것, 하지만 월드컵엔 좀처럼 나오지 못한다는 것, 항공직송된 노르웨이산 연어가 한국에서도 인기라는 것,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욘 포세가 노르웨이의 작가라는 것, 아마도 이게 전부인 것 같다.
 
영화평론가로서 다시 노르웨이 영화에 대해 따져보기로 한다. 내가 본 노르웨이 영화는 <오늘부터 댄싱퀸> 이전까진 총 세 편 정도가 있었던 듯하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제법 본 이가 있을 텐데,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되겠다. 세상 최악의 여자를 그려낸 이 영화가 한국에선 제목을 조금 바꾼 덕분인지 제법 낭만적인 작품처럼 알려지며 의외의 흥행으로 이어졌다.
 
오늘부터 댄싱퀸 포스터

▲ 오늘부터 댄싱퀸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뜨는 노르웨이 영화, 이 작품으로 만난다
 
다른 두 작품은 <해시태그 시그네>와 <더 버닝 씨>가 되겠다. 앞의 영화는 '관종의 끝'이라 하면 좋을까, SNS 상에 제 고통을 전시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자기파괴에 물들어가는 신종 관종의 삶을 의미심장하게 그렸다. 뒤의 작품은 노르웨이를 떠받치는 석유산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깔린 해양재난 블록버스터다. 석유시추공이 부서지고 온 바다가 불타는 그야말로 해양재난을 섬뜩하게 다룬다.
 
오랜 기간 노르웨이 영화산업은 북유럽, 그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불리는,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 가운데 가장 끝자리에 있었다. 영화예술에 있어 스칸디나이바의 맹주라 해도 좋을 스웨덴엔 거장이란 말이 어울리는 잉마르 베르히만을 위시해 <엘비라 마디간>의 보 비더버그, <개 같은 내 인생>의 라세 할스트롬 같은 뛰어난 감독들이 줄줄이 나왔다. 스웨덴 출신 루벤 외스틀룬드가 2017년과 2022년, 두 차례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때 낯설기보단 친숙한 인상이 든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핀란드에서도 <죄와 벌>로 데뷔한 명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있었지만 주목할 만한 노르웨이 출신 감독은 라스 폰 트리에가 있기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다. 혹자는 영화산업이란 그 나라의 경제사정에 비례하는 탓에 노르웨이가 선진국 수준의 소득을 갖추기까지 뛰어난 연출자가 나오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누구는 노르웨이의 문화적 자산이 다른 나라에 비해 일천했던 탓이라고 이야기했다.
 
진실이 그중 어디에 닿아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노르웨이가 스칸디나비아를 넘어 북유럽 전체에서 가장 활력 있는 문화강국이 되었단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앞에 언급한 세 편의 영화가 전혀 다른 색채, 전혀 다른 장르로써 세계와 통했단 점이 이를 방증한다. <오늘부터 댄싱퀸>은 내가 만난 네 번째 노르웨이 영화, 비교적 열심히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영화를 접하려 하는 내게 그러하니, 적잖은 관객에게도 여전히 낯선 노르웨이와의 만남이 되어줄 테다.
 
12살 모범생 소녀, 춤바람 나다!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주인공은 12살 미나(리브 엘비라 키퍼순 라르손)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 년생 쯤이 되겠는데, 통통한 몸매에 두꺼운 사각 안경, 적당히 자른 헤어스타일, 엄마가 챙겨준 대로 아무렇게나 입은 듯한 옷매무새까지가 어떤 아이인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미나는 우등생이다. 12살이 되기까지 부모 속 한 번 썩인 적 없는 밝게 자란 외동딸이다.
 
그런 미나의 세계가 한순간에 흔들리는 순간이 온다. 학교에 끝내주는 남자애가 전학 온 것이다. 오슬로에서 미나가 사는 작은 도시로 온 그는 일약 주목을 한몸에 받는다. 그저 오슬로 출신인 것만도 아니다. 12살 나이에 무려 16만 팔로워를 가진 힙합 댄서라나. E.D.윈(빌야르 크누센 브야달 분)이라는 세련된 이름까지 가진 그에게 미나는 단박에 빠져버린다.
 
첫 등교부터 한 팔에 든 커다란 스피커로 음악을 빵빵하게 틀고 입장하는 E.D.윈이다. 그 한 장면만으로도 그가 이곳 아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낯선 장소에 첫 발을 디디면서도 제 색깔을 한껏 드러내는 자세, 보통의 전학생이라면 갖기 어려운 일이다. 말하자면 E.D.윈은 더 나은 문명에서 온 더 나은 존재다. 그에게 이 학교의 학생들이란 제가 개화해야 할 뒤떨어진 이들이고.
 
온 세상을 뒤흔든 12살의 첫사랑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학교에 오자마자 댄스크루를 모집하는 E.D.윈이다. 이 학교에서 좀 논다 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E.D.윈을 동경하는 평범한 아이들까지 죄다 그의 댄스크루에 흥미를 느낀다. 춤이라곤 한 번도 춰본 적 없는 범생이 미나도 그중 하나다. 요즘 퍼지는 멋없는 표현, '플러팅'이란 말이 꼭 어울리는 E.D.윈의 행동에 미나는 헬륨풍선처럼 한껏 솟구쳐 오른다. 첫사랑이다. 어떻게 오디션에 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는 댄스크루의 일원이 되고 다시 큰 대회를 준비하는 미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야말로 온갖 우여곡절이 그녀에게 닥쳐온다. E.D.윈에게 푹 빠진 마음은 다른 것을 돌아보지 못하게 한다. 미나만 바라보는, 역시 요즘 말로 '위장남사친' 마르쿠스(스툴라 하르비츠 분)의 마음을 수차례 농락하며 그를 제 연습상대로 발탁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버려버리는 일도 감행할 만큼 12살의 첫사랑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모든 마음이 응답받는 건 아니다. 미나를 향한 마르쿠스의 마음이 그렇듯, E.D.윈에 대한 미나의 마음 또한 무시되고 짓밟히기까지 한다. 대회에 출전한 듀오로 미나와 엮이게 된 E.D.윈이 '수준이 맞지 않는다'며 따져 묻는 때가, 또 춤을 추는 도중 미나를 들었다가 무겁다고 따져 물을 때가 그렇다. 나중엔 아예 '조금 덜 먹을 수는 없겠느냐'고 제 딴엔 한껏 조심한 권유를 해보기도 하는데, 미나는 아예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가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 된다. 아! 불타는 청춘이여, 아! 무례한 젊음이여!
 
<오늘부터 댄싱퀸>을 새로운 영화라 할 수는 없겠다. 12살 소녀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로부터 겪는 좌절과 성취의 성장드라마를 그릴 뿐이다. 다른 무엇을 너무도 사랑하느라 스스로를 아끼지 못하는 실패를 미나는 격렬히 겪어낸다. 그로부터 조금씩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알아간다.
 
같지만 다른 성장기, 이 영화를 주목하는 이유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오늘부터 댄싱퀸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

 
영화가 이를 달성하는 방식도 새로울 건 없다. 역시나 사람, 그리고 관계다. 끝까지 미나를 지지하는 할머니와 친구 마르쿠스의 존재가 미나에겐 큰 힘이 된다. 그들의 지지와 애정을 바탕으로 미나는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녀 또한 다른 이에게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극적 전환을 이루는 장치에서도 새로울 것이 없다. 엄격한 시선으로 보자면 식상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질 부분도 적잖다. 비슷한 성장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가, 또 한국과 여러 나라의 영화들의 이름을 나는 앉은 자리에서 십수편도 넘게 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노르웨이 영화산업은 이제 막 활기를 띄고 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스칸디나비아 맹주라 불렸던 스웨덴 영화계를 규모 면에선 앞지른 지 오래다. 멜로와 사회비판적 드라마, 재난 블록버스터에 이어 청소년 성장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노르웨이 영화들은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비록 오래된 전형을 답습하고 있을지라도 그 안에 노르웨이만의 분위기가, 가치가 조금씩 녹아들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영화 속 미나 뿐 아니라 노르웨이 영화 또한 일종의 성장기를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화를 애정하는 노르웨이 영화인들의 열기가, 그 마음들이 엿보이는 구석을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을 딛고 남다른 내일을 이루는 작품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부터 댄싱퀸>은 그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 있는, 노르웨이 영화의 현재를 담고 있다. 어떤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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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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