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는 '킹콩'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괴수 캐릭터가 있다. 1933년 흑백영화로 첫 선을 보였던 <킹콩>은 1976년 인간적이고 로맨틱한 부분을 강조한 리메이크작이 개봉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연출했던 피터 잭슨 감독이 무려 2억7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해 또 다시 <킹콩>을 만들었다. 피터 잭슨의 <킹콩>은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과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을 수상했다.

<킹콩>보다 오래되진 않았지만 일본에도 '고지라'라는 킹콩 못지 않게 포악하고 무서운 괴수가 있다. 1954년 첫 선을 보인 <고지라>는 일본에서만 총 30편의 실사영화 시리즈가 제작됐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작년 고지라 시리즈 70주년 기념으로 개봉했던 <고질라 마이너스 원>은 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일본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지난 1962년과 1967년 킹콩의 판권을 사와 고지라와 킹콩이 함께 등장하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다. 이에 할리우드에서도 지난 2014년 일본으로부터 고질라를 비롯한 일본 괴수들의 판권을 사와 괴수영화의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할리우드는 현재 '몬스터버스'라 불리는 괴수영화 유니버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2014년에 개봉했던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만든 <고질라>의 흥행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할리우드에서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고질라>는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할리우드에서 두 번째로 리메이크된 <고질라>는 제작비의 3배가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했다.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할리우드의 괴수영화 유니버스

고지라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토호사는 지난 2004년 고지라의 50주년 기념작 <고지라-파이널 워즈>를 선보이면서 '앞으로 10년 간 고지라 영화는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영화사 레전더리 픽처스는 2009년부터 토호사와 꾸준히 협상을 벌인 끝에 고지라의 판권을 얻었고 워너 브라더스와 합작해 고지라 60주년 기념작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몬스터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고질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훗날 <로그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연출하는 신예 가렛 에드워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으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았던 <고질라>는 1억6000만 달러의 적지 않은 제작비가 투입돼 5억2900만 달러의 성적을 올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비록 영화의 내용이나 재미에서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레전더리 픽쳐스와 워너 브러더스에서 '몬스터버스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만족스러운 흥행성적이었다.

2015년 새로운 괴수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출범을 공식적으로 알린 레전더리 픽쳐스와 워너 브러더스는 2017년 몬스터버스의 두 번째 영화 <콩: 스컬 아일랜드>를 선보였다. 킹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기존의 1933년, 1976년, 2005년에 개봉했던 <킹콩>이 아닌 2014년에 개봉한 <고질라>와 세계관을 공유한 영화였다. <콩: 스컬 아일랜드> 역시 1억8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5억68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2019년에는 몬스터버스의 3번째 이야기이자 고지라 시리즈의 65주년 기념작이 된 <고질라>의 속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가 개봉했다. 세리자와 이시로 박사 역의 와타나베 켄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배우들이 교체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킹 기도라, 로단, 모스라 등 고지라 시리즈의 다른 괴수들이 총출동했다. 다만 흥행성적은 3억8700만 달러로 5억 달러를 넘겼던 앞의 두 편에는 미치지 못했다. 

2021년에는 드디어 몬스터버스의 두 핵심캐릭터 고질라와 킹콩이 한 작품에서 만난 <고질라 VS. 콩>이 개봉했다. <고질라 VS. 콩>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도 4억52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시리즈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리고 고질라와 콩이 힘을 합친 <고질라X콩: 뉴 엠파이어>는 지난 3월에 개봉해 역대 몬스터버스 영화 중 가장 적은 제작비(1억3500만 달러)로 5억67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마지막 대결을 위한 지루한 전개
 
 <고질라>가 성공을 거두면서 '몬스터버스'로 불리는 할리우드의 괴수영화 유니버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고질라>가 성공을 거두면서 '몬스터버스'로 불리는 할리우드의 괴수영화 유니버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사실 <고질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2014년이 처음이 아니었다. <인디펜던스 데이>로 유명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가 지난 1998년에 개봉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과는 전혀 다른 고지라의 캐릭터와 억지로 끼워 넣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클리셰들로 고지라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고질라>가 3억7900만 달러의 괜찮은 흥행성적에도 팬들로부터 그저 '외전' 취급을 받는 이유다.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가 받았던 비판을 의식한 탓일까.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2014년작 <고질라>를 만들면서 '원작에 대한 헌정'이라 해도 크게 무리가 아닐 정도로 원작의 정서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속에서 고질라는 자연의 의지를 대변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인간은 주인공 포드(애런 테일러 존슨 분)를 제외하면 괴수들 앞에서 상당히 무기력한 존재로 나온다. 물론 포드 역시 고질라의 조력자 포지션에 머물렀다.

2014년작 <고질라>에서는 고질라와 미확인 거대 육상 생명체라는 뜻을 가진 무토가 선악의 구도에 서서 대결을 벌인다. 고질라는 엄청난 크기와 강력한 힘으로 무토를 압도하지만 암수 두 마리인 무토는 힘을 합쳐 고질라를 몰아 붙인다. 하지만 수컷 무토는 고질라의 강력한 꼬리스윙에 맞아 건물 파편에 관통돼 사망하고 암컷 무토는 포드를 무섭게 노려 보다가 갑자기 나타난 고질라의 방사열선을 맞고 숨이 끊어진다.

다만 인간이 괴수를 무찌르는 영화나 괴수들끼리 싸우는 오락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고질라>는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질라>는 고질라와 무토가 벌이는 마지막 대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앞의 내용이 다소 지루하게 전개되는 것을 기꺼이 감수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지라> 시리즈의 마니아가 적은 국내에서는 전국 관객 70만으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영화 <고질라>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미군의 초라한 활약이다. 물론 <고질라>에서도 미군은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고질라와 무토에 맞선다. 하지만 지구의 내핵까지 들어가 방사능을 섭취한 고질라와 전자기 펄스를 통해 핵무기조차 무력화시키는 무토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결국 무토를 물리친 고질라는 '괴수왕, 우리 도시의 구세주인가?'라는 뉴스속보와 함께 바다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부부로 만난 <어벤져스> 막시모프 남매
 
 <고질라>의 브로디 부부는 1년 후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남매를 연기했다.
<고질라>의 브로디 부부는 1년 후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퀵 실버와 스칼렛 위치 남매를 연기했다.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고질라>에는 <상하이 나이츠>에서 찰리 채플린, <일루셔니스트>에서 에드워드 노튼 아역을 맡았던 애런 테일러 존슨이 미 해군 대위 포드를 연기했다. 포드는 과거에 집착하는 아버지와 갈등이 있었지만 무토를 목격하면서 아버지가 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15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퀵 실버를 연기했던 존슨은 현재 다니엘 크레이그에 이어 < 007 >시리즈의 새로운 제임스 본드 역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고질라>에서 포드의 아내 엘을 연기했던 엘리자베스 올슨은 <어벤져스> 시리즈의 스칼렛 위치로 유명한 배우다. 다시 말해 <고질라>에서 부부로 출연했던 존슨과 올슨은 1년 후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쌍둥이 남매가 된다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엘은 영화 후반 고질라와 무토의 싸움에 휘말려 지하에 깔렸지만 전투가 끝난 후 무사히 구조돼 남편, 아들과 감격적으로 재회한다.

할리우드와 일본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일본인 배우 와타나베 켄은 <고질라>에서 15년 동안 고질라와 무토의 행동범위를 추적하던 세리자와 이시로 박사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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