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좋아한다. 이 나라의 역사를, 역사 속 인물을, 그와 뒤엉켜 발전한 문화를, 음식을, 한국과 닮아 있고 또 달라 보이는 그들의 면면을 살피길 즐겨한다. 당대 열강의 침탈로부터 베트남은 오래 고난을 겪었다. 처음엔 중국이었고, 다음은 몽골이었으며, 프랑스와 일본, 마지막엔 미국이었다. 당대 강국의 야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하여 베트남이 흘린 피와 땀이 산천을 가득 메웠으리라.
 
한편으로 베트남은, 그들 가운데 절대다수를 이루는 킨족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안과 남안을 차지하고 소 제국화한 강대국으로 볼 수 있겠다. 이는 한때 북쪽 월나라의 후예들이 중부의 참파와 남부의 크메르를 밀어내고 오늘의 확장된 영토를 얻어낸 때문이다. 또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국가구성에도 킨족 이외의 민족은 마땅한 권한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북방과 중부, 남방으로 크게 나뉘어 발달한 역사성은 여전히 중부와 남부가 북방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인식을 물리치지 못하도록 한다.
 
여러모로 독특한 얼굴을 지닌 베트남이다. 알면 알수록 달리보이는 이 유서 깊은 나라의 면모를 나는 매번 여행 때마다 새로이 알게 되고는 한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오늘에 강렬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한국은 자유로울 수 없다. 다름 아닌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한국과 미국에선 그저 베트남 전쟁이라 부르는 바로 그 전쟁이다. 한국이 제 나라 전쟁이 아닌 전쟁에 전투부대를 대대적으로 파병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이익을 위해 파병을 자청했다는 점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를 통해 가져온 이익, 주한미군의 잔류며 경부고속도로와 KAIST의 설립은 한국의 번영에 귀한 자산이 되었다. 남의 피를 통해 이룩한 번영 또한 번영임을, 그에 가장 비판적인 이조차 부인할 수 없을 테다. 나는 그저 번영에 들어간 핏방울조차 알지 못하는 탐욕스런 돼지는 되지 않기 위하여 더욱 그를 들여다보고는 한다.
 
베를린 이어 JIFF에서도 수상한 베트남 영화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JIFF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작품 가운데 <쿨리는 울지 않는다>를 선택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이란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 그저 몇 차례 여행과 공부로만 되는 것이 아니란 걸 갈수록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와 같은 매체는 그 나라의 여러 면모를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외부의 시선으로는 좀처럼 닿지 않는 진실 말이다.
 
흑백화면으로 펼쳐지는 영화는 한 중년 여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오랫동안 별거 중인 남편과 아예 갈라서 독일에서 베트남으로 돌아온 그녀다. 동행하는 건 멸종위기종인 영장류 피그미늘보로리스 한 마리, 쿨리란 이름이 붙은 야생동물 뿐이다. 쿨리와 함께 돌아온 하노이 집에는 보육교사인 조카가 약혼자인 남자친구와 함께 있다.
 
부모 없이 혼자뿐인 조카는 결혼을 고민한다. 고민될 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의 아이를 밴 상태다. 벌이도 얼마 되지 않는 젊은 남녀가 함께 웨딩드레스를 보고 쇼핑몰을 돌며 결혼을 준비하는 모습이 주인공인 응우옌의 눈에는 탐탁찮아 보인다. 영화는 그녀가 제 옛 추억이 담긴 베트남의 장소들, 라이브 클럽과 댐 등을 돌아보는 모습을 조카 연인의 모습과 교차하여 잡아낸다.
 
첫 장편인 이 영화로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장편데뷔상을 받은 팜 응옥 란이다. 유학파 건축학도로 모국인 베트남의 여러 면모를 마치 건축이 그러하듯 영화적 문법으로 쌓아올렸다고 평가받았다. 흑백으로 연출된 화면부터 많지 않은 대사와 긴 호흡의 편집, 베트남 그대로를 담아낸 소리까지가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 떨어져 영화 속 인물들을 관조하도록 돕는다.
 
한 팔 없는 여배우의 특별할 것 없는 연기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JIFF

 
지루하고 난해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영화를 본 모든 관객에게 각인되는 순간도 여럿이다. 그중 하나는 조카의 등장이다.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 모두가 충격을 느꼈을 테다. 그녀는 한 팔이 없는 장애인이다. 그 장애를 아무렇지 않게, 또 영화 내내 전혀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닌 듯 일상적으로 담아낸 태도가 신선하다.
 
팜 응옥 란은 상영 뒤 가진 GV 자리에서 그녀의 캐스팅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베트남은 지난 전쟁의 여파로 사람들의 장애가 매우 많은 나라"라며 "여행을 하다 보면 못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정부 차원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내쫓고 그들이 또 도시에서 제대로 직업을 갖지 못하기도 해서 보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영화에 베트남의 진짜 모습을 담고 싶어서 음악이 나오는 장면에서 시각 장애인을 출연시켰고, 주연인 팔 없는 모델 분도 신문에서 보고 연락해서 캐스팅을 하게 됐다"면서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잠재력이 느껴졌다"고 부연했다.
 
더욱 인상적인 건 영화가 캐스팅 이후 촬영에 이르기까지 각본을 고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비장애인 배우와) 똑같이 대우하고 싶어서 극본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갔다"면서도 "아이들이 영화에 많이 나오는데 촬영이나 대기하는 과정에서 여배우에겐 제약이 가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 게 사실"이라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특별히 장애가 필요한 설정이 아님에도 장애인이 많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여 장애인을 캐스팅한 점, 또 그를 부각하는 각본으로 고치지 않은 점은 이 감독의 남다름을 짚어보게 한다.
 
베트남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다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쿨리는 울지 않는다 스틸컷 ⓒ JIFF

 
베트남의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한 조치는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장소를 담아내려 노력했고, 그 장소마다 다양한 음악을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감독은 스스로 "베트남에선 거리나 집이나 가게에서나 장르며 만들어진 시간이 다양한 음악이 들려오곤 하는데 영화에 그걸 반영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통상 음악감독이 작품을 위해 별도의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잦은 베트남에서 따로 있는 음악을 쓰려고 한 흔적이 역력한 데는 감독의 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편 촬영을 흑백으로 진행한 건 세간의 평과 달리 우연적인 계기였다. 촬영을 얼마 남기지 않고 주연배우가 사고를 당했고, 그를 가리기 위해 흑백화면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적잖은 평자며 관객들이 흑백화면으로부터 이 영화의 매력을 발견하였으니, 이는 우연이 빚은 효과라 하겠다. 혹자는 명확하지 않은 메시지와 읽히지 않는 의도에 도리어 고점을 주는 예술영화 평단의 아이러니라고도 하겠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론 후자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가기도 한다.
 
베를린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쿨리는 울지 않는다>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또한 이 영화에 국제경쟁 부문 작품상을 안기며 이번 영화제 최고의 작품이라 공인했다. 갈수록 난해해져 가는 예술영화에 대한 평가가 일반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알 수 없으나 현대의 영화팬들에게 취향을 넘어 다채로운 작품을 접하게 하려는 영화제의 노력만큼은 돌아보아 마땅하다 여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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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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