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미국 미시시피주 메리디안의 어느 평화로운 가정집에서 평범해 보이는 소녀 마리는 남자친구와 함께 겨울여행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마리는 남자친구와 수줍은 첫 키스를 나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입술이 닿는 순간 남자친구는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면서 쓰러졌고 이에 충격을 받은 마리는 가출을 단행했다. 돌연변이 히어로 영화 <엑스맨>의 오프닝 장면이었다.

<엑스맨> 오리지널 트릴로지의 1편과 2편, 그리고 비기닝 시리즈의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엑스맨>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으로 매그니토와 로그의 등장을 보여줬다. 브라더 오브 이블의 리더이자 최종보스로 시리즈 내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매그니토가 오프닝에 나온 것은 당연했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비중이 줄어드는 로그가 오프닝을 장식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사실 울버린 역의 휴 잭맨을 비롯해 스톰 역의 할리 베리, 진 그레이 역의 팜케 얀센 등은 <엑스맨> 시리즈 출연 전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배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로그를 연기했던 이 배우는 <엑스맨> 출연 당시 만 17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아카데미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스타로 <엑스맨>의 오프닝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영화 데뷔작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연기신동' 안나 파킨이 그 주인공이다.
 
 <아름다운 비행>은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 가족 모험 드라마다.

<아름다운 비행>은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는 가족 모험 드라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데뷔작으로 아카데미 트로피 얻은 배우

지난 1982년 프랑스계 캐나다인 아버지와 뉴질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킨은 지난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패왕별희>와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했던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를 통해 데뷔했다. <피아노> 출연 전까지 연기경험이라곤 학교연극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였던 파킨은 5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에이다(홀리 헌터 분)의 사생아 딸 플로라 역에 캐스팅돼 열연을 펼치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1974년 <페아퍼 문>의 테이텀 오닐(만10세)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아카데미 트로피를 차지한 파킨은 일약 할리우드의 '연기신동'으로 떠올랐다. 1996년 <제인 에어>에서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파킨은 같은 해 캐럴 밸러드 감독의 가족 모험 드라마 <아름다운 비행>에서 졸지에 기러기 16마리의 엄마가 된 사춘기 소녀 에이미 역을 맡아 제프 다니엘스와 부녀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파킨은 2000년 <엑스맨> 오리지널 3부작에서 핵심 캐릭터 중 한 명인 로그를 연기했다. 1편에서는 울버린과 함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로그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점점 비중이 줄어 들었고 급기야 2014년에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카메오로만 잠시 등장했다(실제로 <엑스맨:최후의 전쟁>부터는 로그가 맡았던 마스코트 소녀 캐릭터를 엘리엇 페이지가 연기한 키티 프라이드가 대신했다).

하지만 파킨은 오히려 <엑스맨> 오리지널 3부작을 끝낸 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시즌에 걸쳐 방송된 드라마 <트루 블러드>에서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주인공 수키 스텍하우스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다. 파킨은 <트루 블러드>를 통해 2009년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2010년에는 빌 컴튼을 연기한 스티븐 모이어와 결혼해 2012년 쌍둥이를 출산했다.

2016년 남부흑인노예제도를 고발한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뿌리>에서 북부 스파이 낸시 홀트를 연기한 파킨은 2019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맡은 프랭크의 딸 페기를 연기했다. 비록 엄청난 스타배우로 성장하진 못했지만 파킨은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데뷔해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 꾸준한 연기활동을 이어가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무공해 영화' 
 
 엄마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에이미는 16마리의 기러기들을 키우면서 상처를 극복해낸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에이미는 16마리의 기러기들을 키우면서 상처를 극복해낸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뉴질랜드에서 여행 도중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캐나다에서 발명가이자 조각가로 활동하는 아빠 토마스(제프 다니엘스 분)와 살게 된 에이미(안나 파킨 분)는 엄마를 잃은 슬픔과 아빠와의 어색한 사이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그러던 중 에이미는 집 근처 늪 주변에서 미처 부화하지 못한 야생 기러기알을 발견했고 에이미에 의해 집으로 옮겨진 기러기알들은 에이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알을 깨고 나왔다.

16마리의 기러기들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발견한 에이미를 엄마로 인식했고 에이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에이미 역시 기러기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면서 엄마를 잃은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문제는 철새인 기러기가 인간인 에이미 손에 키워지면서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전혀 날지 못했던 것. 이에 토마스는 에이미에게 경비행기 운전을 가르쳐 기러기들을 철새서식지까지 이동시키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처음엔 집에서 기러기들을 키우겠다고 우기던 에이미도 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경비행기를 배워 철새들의 비행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에이미와 토마스, 그리고 가족들은 기러기들을 철새서식지로 이동시키기 위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들만의 비행이었던 기러기들의 여행은 가는 곳마다 화제가 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에이미는 어깨를 다친 토마스 대신 마지막 30마일을 날아 기러기들을 철새 서식지까지 무사히 데려간다.

<아름다운 비행>은 전체관람가라는 등급에 어울리게 상영시간 동안 에이미와 기러기, 토마스와 에이미의 모험과 그를 통해 느껴지는 가족애를 보여주는 영화다. 특히 에이미가 훈련 도중 서툰 운전 때문에 경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본 토마스는 이성을 잃고 에이미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에이미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토마스는 눈물을 보이고 이를 통해 서먹하던 부녀지간이 가까워졌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줬다.

흔히 <아름다운 비행>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름다운 비행> 역시 영화에 모티브를 준 일화가 있었다. 캐나다의 빌 리슈먼이라는 화가 겸 발명가가 1993년 자신이 제작한 초경량 항공기를 타고 기러기들을 캐나다에서 미국 버지니아주까지 이주시킨 이야기였다. 물론 아내를 사고로 잃고 딸과 함께 비행하는 내용 등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다.

토마스가 <덤 앤 더머>의 그 '바보'라고?
 
 제프 다니엘스(오른쪽)는 <아름다운 비행>의 토마스를 연기하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살을 찌우는 노력을 단행했다.

제프 다니엘스(오른쪽)는 <아름다운 비행>의 토마스를 연기하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살을 찌우는 노력을 단행했다. ⓒ 콜럼비아 트라이스타

 
내년이면 칠순이 되는 배우 제프 다니엘스는 국내 관객들에게 <덤 앤 더머>에서 짐 캐리에게 밀리지 않는 코믹연기나 <스피드>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동료형사로 익숙하다. 미국드라마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뉴스룸>에서 지성과 인품을 겸비한 명앵커 윌 맥어보이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스는 <아름다운 비행>에서 전작들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연기를 보여줬다.

다니엘스는 <아름다운 비행>에서 이혼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아내와 함께 살던 딸을 데려와 키우는 아버지 토마스를 연기했다. 다니엘스는 농장을 소유한 조각가 겸 발명가 역을 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고 수염을 기르며 변신을 단행했다. 이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름다운 비행>의 토마스가 <덤 앤 더머>, <스피드>의 해리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위기의 주부들>과 <캐슬> 등에 출연하며 영화보단 드라마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한 데이나 딜레이니는 <아름다운 비행>에서 토마스의 여자친구 수잔을 연기했다. '아빠의 여자친구'라는 특별한 위치답게 에이미 역시 처음에는 수잔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수잔은 '너만 좋다면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말로 에이미에게 솔직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수잔은 자동차를 이용해 기러기 이동여행을 함께 하며 에이미와 더욱 가까워졌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아름다운비행 캐럴밸러드가감독 안나파킨 제프다니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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