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던 '터프가이' 최민식과 MBC 공채탤런트 출신의 신예 박선영이 주연을 맡은 신승수 감독의 <가슴 달린 남자>가 1993년 9월에 개봉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성별 때문에 차별을 받던 여성이 남자로 신분을 위장해 회사에 재취업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그린 블랙코미디 영화다. <가슴 달린 남자>는 당시 서울에서만 12만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사실 남장여자가 등장하는 작품은 드라마도 많다. 공유와 윤은혜를 일약 대세스타로 도약시킨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고 박신혜가 남장을 하고 아이돌밴드의 멤버가 됐던 <미남이시네요>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얼마 전 종영한 <눈물의 여왕>으로 tvN 역대 최고시청률 기록(24.9%)을 세운 김지원이 2012년에 출연했던 <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는 고 설리가 남장을 하고 남학교로 전학 온 소녀 구재희를 연기했다.

사실 남장여자 캐릭터는 현대극보다 사극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과거에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그만큼 여성들이 겪는 제약도 많았기 때문이다. 2008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에서도 그림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던 조선시대의 한 여성이 남자로 살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배우 김규리의 단독 주연작이자 최고 흥행작인 전윤수 감독의 <미인도>였다.
 
 <미인도>는 스타배우의 출연도 없었고 극장가의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미인도>는 스타배우의 출연도 없었고 극장가의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 CJ ENM

 
화가까지 겸하는 '팔방미인' 연기자

1997년 패션잡지의 모델로 데뷔한 김규리는 1999년 드라마 <학교1>에서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학생 박나리를 연기했고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휘말리는 민아 역을 맡았다(물론 널리 알려진 것처럼 데뷔 후 약 10년 동안은 김규리가 아닌 개명 전 이름인 '김민선'으로 활동했다).

2002년 이요원과 조은지, 이영진 등 또래 여성배우들과 영화 <아프리카>에 출연한 김규리는 같은 해 드라마 <유리구두>와 <현정아 사랑해>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정아 사랑해>를 통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김규리는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한강수타령>,<러브홀릭>,영화 <하류인생> 등을 통해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2008년에는 광우병 파동 당시 '청산가리'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김규리는 '소셜테이너'로 주목 받기 시작한 2008년 11월 영화 <미인도>를 통해 데뷔 후 가장 큰 도전에 나섰다. <미인도>에서 자살한 오빠를 대신해 도화서의 화원으로 자란 신윤복을 연기한 김규리는 파격적인 노출은 물론이고 한층 발전된 연기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인도>는 실질적인 김규리의 단독주연 영화인 데다가 극장가의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음에도 전국 23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2009년11월 이름을 바꾼 김규리는 2011년 영화 <사랑이 무서워>와 <풍산개>에 출연했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같은 해 출연한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시즌2와 시즌3에서는 MC를 맡았다. 2015년에는 '국민배우' 안성기와 함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이자 그 해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을 수상한 <화장>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2022년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아이를 키우는 아웃사이더맘 서진하를 연기한 김규리는 지난 3월에 개봉한 영화 < 1980 >에서 1980년 광주에서 중국음식점을 개업하는 철수엄마 역을 맡은 바 있다.

노출연기 직접 촬영한 김규리의 열연
 
 신윤복 캐릭터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김규리(오른쪽)는 <미인도>에서 대역 없이 직접 전라 노출연기를 감행했다.

신윤복 캐릭터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던 김규리(오른쪽)는 <미인도>에서 대역 없이 직접 전라 노출연기를 감행했다. ⓒ CJ ENM

 
사실 극장가나 방송가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소재나 인물이 등장하는 여러 작품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같은 소재의 여러 작품이 동시에 등장하면 한곳에 집중돼야 할 대중들의 관심과 시선이 여러 곳으로 분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가을에는 '남장을 한 신윤복'이라는 똑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과 영화 <미인도>가 두 달의 간격을 두고 방영 및 개봉했다.

물론 2008년 당시만 해도 류승룡이 지금처럼 유명하던 시절이 아니었지만 박신양과 문근영으로 이어지는 <바람의 화원>의 라인업은 <미인도>의 김규리, 김영호, 김남길을 압도하기 충분했다(당시 김남길은 <선덕여왕>의 바담을 연기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미인도>는 김규리의 과감한 연기변신과 뛰어난 영상미로 높은 점수를 받으며 전국 232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미인도>에서 가장 크게 화제가 된 부분은 역시 김규리의 과감한 노출연기였다. 당초 <미인도>의 노출장면은 대역배우를 쓰기로 사전협의가 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윤복이라는 캐릭터에 강한 애착을 보인 김규리가 "타인의 옷을 빌려 입기 싫었다"는 이유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전라노출 촬영을 강행했다고 한다.

물론 <미인도>는 N 포털사이트 네티즌 평점 6.38점이 말해주듯 완성도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았던 노출장면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비판이 있었고 김홍도 캐릭터 역시 김영호의 연기와 별개로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묘사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비담'이 되기 전, 신인 시절의 김남길
 
 김남길은 2008년 <강철중:공공의 적1-1>과 <미인도>를 통해 660만 관객을 동원했다.

김남길은 2008년 <강철중:공공의 적1-1>과 <미인도>를 통해 660만 관객을 동원했다. ⓒ CJ ENM

 
<미인도>에서는 <야인시대>의 '중년 이정재'로 유명한 배우 김영호가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를 연기했다. '김홍도가 신윤복의 그림스승'이라는 <미인도>의 설정처럼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도 자주 엮이면서 강무와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신윤복은 여인으로서 처음 마음을 주었던 강무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을 가졌고 김홍도는 그런 신윤복을 남몰래 연모하며 관객들에게 많은 연민과 동정을 받았다.

지금은 단독주연으로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홀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스타배우로 성장한 김남길은 아직 배우로서 완전히 꽃을 피우지 못했던 2008년 <미인도>에서 윤복과 사랑을 나누는 사내 강무를 연기했다. 윤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을 만큼 윤복을 사랑했고 실제로 윤복을 위해 관군에 맞서 싸우기도 했던 강무는 부상을 당한 채로 김홍도와 몸싸움을 벌이다 윤복의 품에서 끝내 숨을 거둔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중국활동을 시작했던 추자현은 <미인도>에서 조선 최고의 기생 설화 역을 맡으며 오랜만에 국내활동을 했다. 설화는 제자인 윤복에게 마음이 있어 자신에게는 시선을 주지 않는 김홍도를 바라보며 고뇌한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미인도 전윤수감독 김규리 김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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