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는 양자역학의 시대를 산다. 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뉴턴역학이 종결시킨 지 고작 300여년 만에 인류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AI 등 온갖 첨단기술이 양자역학이 구축한 토대 위에 서 있는 오늘, 어떤 인간도 양자역학이 가진 수많은 마술적 비밀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그야말로 미스테리로 가득한 양자의 세계다. 그중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광전효과에 대한 것이다. 물질이 빛과 만나 전자를 내놓는 이 효과는 기존 전자기학의 발견, 즉 빛이 파동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광양자설, 즉 빛이 파동일 뿐 아니라 입자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가설로써 광전효과를 설명해낸다. 이로부터 누군가는 입자와 파동이 확률로써 정해진다고 하였고, 또 누군가는 저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을 근거로 관측 여부에 따라 그 존재가 뒤바뀐다고 말한다.
 
관찰하는 이가 피관찰자의 존재양식을 바꾼다는 것, 중요한 건 이것이다. 그저 관찰하는 것만으로 어떻게 외부의 존재를 바꿔낼 수 있는지 과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양자역학이 지닌 수많은 미스터리 가운데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관찰과 대상의 상관성은, 그러나 엄연한 힘을 지니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
 
인식하는 순간 달라지는 것이 있다
 
작별 스틸컷

▲ 작별 스틸컷 ⓒ JIFF

 
양자역학의 세계와는 좀처럼 관련성이 없는 것도 같지만 대작가 조지 오웰 또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유명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통하여 하나의 외부 존재를 완전히 뒤바꾸는 경험을 독자들 가운데 빚어낸다. 이 르포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영국 광부들을 찾아 두어 달가량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현실에 대해 적나라하게 적었다. 르포는 광부 및 그 노조에 대하여 그저 겉만 핥는 기사를 쏟아내던 당대 언론현실을 뛰어넘어 진짜 광부들의 세계를 당대 영국사회 가운데 펼쳐냈다.
 
우리 모두가 비교적 고상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목구멍에는 석탄 먼지가 가득하고 눈까지 시꺼멓게 된 채 강철 같은 팔과 배의 근육으로 삽질을 해대며 지하에서 악착스럽게 일하는 이 가련한 사람들 덕택이다. - 책 중에서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이야기를 써냄으로써 석탄산업 위에 번영을 누리던 당대 영국사회의 구성원들이 비로소 제 발밑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다. 땅 깊은 곳에서 석탄을 캐던 이들의 노동이 가치를 얻고, 사회적 역할을 공인받는다. 무시해도 되는 저기 낙후된 지방의 가난한 이들에서, 사회의 중추를 담당하는 노동자로 고려되기에 이른다. 관찰하는 순간 존재가 달라지는 건 그저 양자세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선택한 한국 단편영화
 
작별 스틸컷

▲ 작별 스틸컷 ⓒ JIFF

 
<작별>은 제25회 한국단편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25편의 경쟁작, 다시 공모에 응한 1332편의 단편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혔다는 뜻이다. 1995년생 젊은 감독인 공선정의 26분짜리 극영화로, 일부로부터 관객을 움직이는 작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중학교에서 진로상담 봉사활동을 하는 영주의 이야기다. 잔뜩 지치고 경직된 표정의 그녀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가까이 지내던 이의 죽음이 남긴 상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흑백의 덤덤한 카메라는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무거운 발걸음을 잡아내며 묵묵히 그녀의 하루를 뒤따른다.
 
그저 지친 듯 보이던 영화가 일변하는 건 어느 죽음의 사유가 드러나면서다. 나이가 어린, 한참이나 어린 학생이 너무나도 빨리 갔음을 별안간 알린다. 이태원 참사, 사회적 참사로 불리며 국민적 애도를 받은 이 불운한 사건에 대하여 영화는 나름의 애도를 전한다. 참사가 앗아간 아까운 생명을 알도록 하고, 그것이 가질 수 있었던 미래를, 또 그로부터 상처 입은 타인의 표정을 내보인다. 그것이 하나하나 죽음을 애도하는 독자적 방식이 된다.
 
현재를 살아가는 애도하는 마음들
 
작별 스틸컷

▲ 작별 스틸컷 ⓒ JIFF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감독 공선정은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작년에 있었다"며 "기말과제로 만든 거였는데 영화 찍으면서 시나리오가 필요한데 앉아서 글을 쓰려니 저 얘기밖에 없었다"고 작품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삶이라는 게 사건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이어진다"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것 역시도 애도하는 마음일 수 있겠다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부연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00일이 훌쩍 넘었다. 158명이 숨졌고,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1명까지 포함해 159명의 희생자를 남겼다. 그러나 이는 직접적 사망자만 추린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태원 참사와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다. 사고 뒤 희생자 명단을 발표해 집단 추모를 가능케 했던 이들이 경찰 수사를 거쳐 유죄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참사 이후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생명안전기본법 관련 논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엇도 해결되지 않았다. 무엇과도 작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한국사회는 언제나 그렇듯 참사를 뒤로하고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마치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리라는 것처럼. 책임지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참사는 그대로 남겨진 자들의 고통이 된다. 159명의 희생자를 넘어 그 유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고통으로 남겨진다. 오로지 그들의 고통으로.
 
비극이 그저 비극으로 남지 않도록
 
현재를 살며 떠난 이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은 그대로 나름의 애도가 된다. <작별>은 헤어짐의 무게를, 애도의 가치를, 그리하여 잘 작별하는 일의 중함을 말하려 든다. 이미 떠난 이가 영화를 통해 불려와 관객 앞에 서서 웃는다. 떠나보낸 이가 짊어진 무게 또한 관객 앞에 펼쳐져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로부터 이와 같은 상실과 고통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던 이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흔을 의식하게 된다. 그들이 <작별>이 그린 세계를 응시하는 순간, 이 세계는 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해나간다.
 
말하자면 조지 오웰이 그러했듯, 또 현재 양자역학의 미스터리가 그러하듯, 대상은 관찰자를 통하여 전혀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저 잊혀져가는 비극을 넘어서 고통을 달래고 희망을 쓰는 이야기로 화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이 시대 창작자가 해야 할 것은 오웰과 같이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바깥에 전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들에게 빛을 비추고, 그리하여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꺼내는 일 말이다. 비극이 비극으로 남지 않도록, 그 존재의 형태를 바꿔낼 수 있도록.
 
<작별>은 여러모로 의미 깊은 단편이다. 공모에 응한 1332편의 단편, 또 경쟁한 25편의 작품 가운데 제일이라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지만, 참사와 잘 작별해야 하는 의미를 되짚는 중한 임무를 기꺼이 감수하려 한 의도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부족한 건 실력이지 마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꺼이 제 부족을 채워나갈 수 있는 일이다.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좀처럼 탁월하다고 하기 어려운 작품에 대상을 안긴 건 그 마음에 대한 기대 때문이리라.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작별 공선정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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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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