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생애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낸 구본철.
박장식
TV에서 격투기 프로그램을 보고 '군대 가기 전에 격투기를 배워보고 싶다'며 도장을 찾았다. 그런데 격투기 대신 주짓수를 하는 도장이었다. 주짓수를 처음 배우고, 군대도 다녀오니 어느새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있었다.
이번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주짓수 첫 금메달리스트, 구본철(리라짐)의 이야기는 영화와도 같다. 다른 무도 종목 선수들이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 늦어도 고교생 때 종목을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이 선수는 스무 살에 주짓수와 우연한 '사고'처럼, 하지만 운명처럼 처음 만났다.
아시안게임 메달마저도 '운명' 같았다. 스스로를 프로 선수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2년 전 한 의류 브랜드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우연히 2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자신을 '프로 선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구본철은 생애 첫 국제대회 우승을 아시안게임이라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하게 되었다.
"MMA 배우려고 갔는데 주짓수 도장이더라고요"
구본철 선수에게 주짓수에 처음 입문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구본철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을 때 TV에서 한동안 <주먹이 운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군대 가기 전에 한 번쯤은 격투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격투기를 생각했던 그의 '무도'가 주짓수로 바뀐 계기도 비범했다. 집 앞의 체육관을 무작정 찾아갔는데, MMA를 배우는 곳이 아닌 주짓수 도장이었다고. 의도치 않게 함께 하게 된 주짓수는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구본철은 스무 살의 나이에 주짓수에 빠져들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다시금 주짓수를 이어갔다는 구본철 선수. 단기간에 주짓수 실력이 크게 늘었다. 구본철은 "조원희 관장님께서 훈련을 이끌어주신 덕분에 단기간에 성장했다. 남들에 비해 더욱 긴 시간 동안 훈련을 하고, 나 스스로도 욕심을 낸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웃음지었다.
자신을 '동호인 선수'라고 생각했던 구본철에게 자신을 주짓수 전문 선수로 받아들이는 계기도 찾아왔다. 의류 브랜드인 스파이더에서 2021년 주짓수 대회를 개최한 것. 구본철은 "운이 좋아 나가게 되었다가 2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냈다. 그때부터 '주짓수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스무 살에 종목에 처음 입문한 '늦깎이 선수'는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항상 너무 두렵고 떨리더라. 경기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옆에서 응원해 주신 분들이 계시고, 부모님도 기도해주신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생애 첫 금메달... 주짓수, 많이 알려졌으면"
구본철의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국제대회에서 처음 해낸 우승이다. 앞서 나선 국제대회에서는 항상 2등에서 그치곤 했단다. 그는 "결승전에 가기 전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이전에도 결승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은메달을 딴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기도하고, 마음을 다 잡고 하니 더욱 잘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이날 구본철이 금메달을 따는 장면이 지상파 생중계를 통해 전해지지 못했다는 점. 구본철은 "비인기 종목이라 중계도 잘 되지 않았고, 설령 중계를 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고 해도 중계를 보지 못하는 종목이다. 내 금메달을 통해서 주짓수가 아시안게임은 물론, 다른 경기도 생중계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하나 바라는 점도 있다. 아직 진천선수촌에는 주짓수 선수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 없다. 김대홍 대표팀 코치는 "이번에 아시안게임 대비를 위해 입촌할 때도 다른 체육관을 빌려서 우리가 겨우 썼다. 체육관에 매트도 없어 우리가 직접 가져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구본철은 "주짓수가 발전하면 분명히 아시안게임을 대표하는 효자 종목이 될 것이다. 주짓수를 생활체육으로 즐기는 분들도 많지만 분명히 대한민국에 주짓수에 국제적인 영향력이 있다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주짓수는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보는 것도 재밌는 종목이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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