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케이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02.
남들처럼 단순한 동기로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의사 아마니는 이 곳 케이브에 도착해 현장의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고 경험하는 동안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말한다. 이 직업은 어느새 분노를 표출하는 직업이 되고 말았고,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처치 도구도 주어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힘든 삶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는 하지만 정직한 삶이기에 이 길을 따라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변화시키길 바라는 그녀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부분이 그녀의 그런 마음을 무너뜨린다.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폭격기의 굉음과 울부짖으며 병원으로 뛰어들어오는 환자, 그리고 가족들. 특히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지켜보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고통스럽다. 뿐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운운하며 여자는 집에서 가정일이나 해야한다는 몰상식한 지역 남성들의 잣대까지. 시시각각 조여오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그녀를 무너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실제 폭격이 이루어지고 지하 병원으로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날에는 그들이 믿는 신 알라가 정말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03.
다큐멘터리가 진행될수록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케이브의 의료진들은 점차 더욱 큰 무력감을 느끼게 되지만, 일부러라도 조금 더 웃으며 아직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장미빛 희망을 하나씩 꺼내는 모습도 모인다. 평화가 찾아오면 리프팅 시술을 통해 쳐진 얼굴을 시술 받는다든가 혹은 교정을 통해 치열을 바르게 만든다든가.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는 조금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수술을 집도하는 중에는 클래식 음악이 꺼지지 않는 모습도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런 장면들은 모두가 '여유'가 아닌 '절박함'처럼 다가온다.
유일하게 행복한 장면으로 기억되는 의사 아마니의 30번째 생일 파티, 옥수수를 튀긴 팝콘을 놓고 겨우 이루어지는 이 장면에서조차 서로를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내전이 일어나고 케이브가 운영되기 시작한지도 벌써 5년. 아마니의 올해 나이가 30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가 이 지옥과도 같은 현실에 처음 발을 들이던 게 26살이라는 소리가 되지 않나. 현실을 감당하기에 결코 충분한 나이가 아니었을 것임을 그 이면을 통해 우리는 알 수가 있다. '널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다'는 아마니 아버지의 말은 이 모든 상황을 함축해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