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감독의 초기 작품 <쉘로우 그레이브><트레인스포팅><인질>의 주연은 모두 이완 맥그리거였다.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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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와 함께 뜨다그의 초창기 작품들 중 <쉘로우 그레이브>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영화는 바로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이다. 세상에 동화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빠르고 격렬한 편집과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브리티시 팝 중심의 사운드 트랙으로 많은 비평가들에게 큰 화제를 일으켰던 작품. 사실 이 영화는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를 위한 영화였다고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 물론 이완 맥그리거는 대니 보일 감독의 초창기 두 작품인 <쉘로우 그레이브>와 <트레인스포팅>을 이야기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작인 <쉘로우 그레이브>보다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맥그리거가 보여준 존재감은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트레인스포팅>의 속편인 < T2 : 트레인스포팅 2 >를 제작하며 감독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이완 맥그리거였을까.
다시 돌아와서, 대니 보일 감독이 처음이었던 것처럼 그 당시의 이완 맥그리거 역시 이제 갓 데뷔한 배우일 뿐이었다. 그보다 먼저 <인생 이야기>(Being Human)라는 작품으로 데뷔하기는 했지만,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으며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그의 연기력 역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을 정도로 그저 그렇고 그런 배우. 다소 어려움을 겪던 중 BBC 미니시리즈에서의 짧은 인연을 바탕으로 대니 보일 감독이 자신의 데뷔작에 함께 하자는 러브콜을 보냈고 이완 맥그리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던 두 편의 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트레인스포팅>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대니 보일 감독이 명성을 얻어감에 따라 충분한 제작비가 보장된 많은 작품이 그에게 제안되었던 적도 있었다. 특히 <에어리언 4(Alien: Resurrection)>의 연출은 '장 피에르 주네'(Jean Pierre Jennet) 감독이 아니라 최초 제안이 대니 보일 감독에게 들어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을 정도. 다만, 그가 이 제안을 거절했던 것은 이완 맥그리거와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했던 <인질(A life less ordinary)>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가 처음으로 겪은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에어리언 4>가 1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그의 작품인 <인질>은 겨우 470만 불에 그쳤고, 이는 30배가 넘는 차이였다. 처음으로 제안받은 할리우드 자본을 마다하고 고집스럽게 제작한 세 번째 작품이 이렇게 외면당하면서 잠깐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지만, 이 세 작품을 통해 대니 보일 감독과 이완 맥그리거 두 사람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도 잠시, 두 사람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게 되는데 이때가 바로 대니 보일 감독이 자신의 네 번째 작품 <비치(The Beach)>를 제작할 무렵이다. 사실 이완 맥그리거가 대니 보일 감독의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까다로운 요구도 수용할 줄 알고, 주어진 시나리오에 완벽히 적응해 나가는 그만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을 함께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의 성향에 대해 이미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이완 맥그리거는 당연히 감독의 다음 작품 또한 자신이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 내심 확신하고 있었다. 감독 역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뉘앙스의 발언들을 내뱉고 있었던 상황.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니 보일 감독은 그 기대를 저버리며 <비치>의 남자 주인공 역할에 당시에 한참 떠오르고 있었던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를 선택하고 만다. 이 소식에 화가 난 이완 맥그리거는 공식 석상에서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하며 서운함을 드러내고 대니 보일 감독과 거리를 뒀다. 지난 2009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시상식을 기점으로 서로 사과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개선해 온 두 사람은 신작 < T2: 트레인스포팅 2 >에 다시 감독과 주연으로 재회하게 된다.
이완 맥그리거를 떠나보냈던 탓이었을까, 1996년 <트레인스포팅> 이후로 그의 작품들은 그리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서야 다시 한 번 반등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의 작품이 바로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다. 전 세계적으로 3억6000만 불을 벌어들이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석권과 더불어 골든글로브 최우수감독상이라는 명예까지 함께 선사하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골든 글로브, 미 제작자협회 상, 영국 아카데미 상, 미 오스카를 한 작품으로 모두 석권한 전 세계 8명밖에 되지 않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이 작품 이전에는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으로 선정된 바 있었다.
<트레인스포팅> 이후 하락세... 12년 만에 멋지게 반전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