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
▲ 영화 <박열>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헌신한 미즈노역의 배우 김인우. ⓒ 이희훈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며 온 몸을 던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에 약 230만의 관객이 반응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을 다룬 영화 <박열>은 단순히 반일을 외치지 않고 부당한 권력, 불온한 억압에 초점을 맞추며 한국 영화에 인색했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주인공과 정확히 반대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영화 속에서 내무대신까지 승진하는 미즈노 렌타로다. 관동대학살의 주축이자, 일본 내 가득 찬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박열이라는 조선인에게 집중시켜 반전을 꾀하는 실존인물이다. 영화에서 미즈노는 관동대지진 중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 일본인들을 죽이려 했고, 그 주축 인물이 박열을 위시한 불령선인 단원이라 주장한다. 이 역을 소화한 배우 김인우를 11일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났다.
정치적 희생양 찾기
'조선인에겐 영웅, 우리에겐 적이 되는 적당한 놈'. 미즈노는 박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으로 의미가 큰 대사다. 한 사람에게 덮어씌우는 거고, 여기서부터 모든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니"라고 김인우(48)는 그 의미를 설명했다. 인터넷에 사진과 행적 등 비교적 정보가 상세히 나오는 이 실존인물을 재일교포 3세인 그가 온몸으로 품었다.
▲ 일본강점기 내무대신을 역임한 미즈노 렌타로의 모습. 김인우는 이 사진 등을 보며 인물의 성격과 습성을 잡아나갔다고 전했다. ⓒ 위키커먼스
▲ 미즈노 렌타로(중앙)는 철저히 조국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 덕에 고위직인 내무대신까지 맡게 되는 역사 속 실존인물이다.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 <동주>(김인우는 송몽규와 윤동주를 심문하던 고등형사 역을 맡았다-기자 주) 때 만나고 싶었는데 <박열>까지 한 뒤 만나 오히려 다행이다. 두 인물 모두 한국영화에선 찾기 힘든 입체적 조연이다. 두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궁금하다.
"간단히 말하면 미즈노는 나라를 위해 그런 일을 한 건데 잔머리가 있다.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수를 쓰는 거지. <동주> 속 형사는 송몽규와 윤동주를 취조하면서 점점 변하잖나. 그 인물 역시 국가를 위해 일한 건데 동시에 국가에게 희생당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몽규와 동주 모두 죄인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취조를 한다. 내 스스로는 만주에 자기 동생 역시 끌려가 있는 인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래서 취조하면서 두 청년 모습에 자기 동생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하거나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거지."
- 두 작품 다 국내 상업영화에선 드문 저예산 영화다. 출연 배우로 이 작품들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다른 출연작인 <군함도> 관련해선 제작보고회 현장에서 일본인 기자가 한일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두 영화의 메시지는 같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평화라는 걸 그리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에 많은 일반인들이 희생당한다. <박열>엔 그 장면이 직접 그려지고 <동주>엔 없다는 차이일 뿐이지. 가네코 후미코(최희서) 역시 제국주의를 원망하며 맞서잖나. 국가가 지도하고 시킨 일에 대해 우린 알아야 하고, 일본은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묻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좋은 사이가 되려면 일본이 먼저 만행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한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자세로 나서야 하고. 그게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아마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실제로 영화를 보며 역사를 배우는 일본인도 있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니 거짓말하면 문제가 커지지 않나. 일본 내 우익이라고 하나? 그들은 아마 안 믿을 것이지만 일반인들은 영화로 배우는 점이 많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한국영화가 지금까지 일본에서 인기가 있겠는가. 이런 영화로 잘 전달해나가야 한다."
- 이준익 감독이 이 캐릭터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게 있는지. 또 배우들과 따로 시간을 내 대사를 맞춰봤는지도 궁금하다.
"감독님은 주문을 잘 안 한다. 이거 잘 말해야 하는데(웃음). <동주>에선 잔잔하게 목소리를 깔아 내뱉는 느낌으로 했다면, <박열>은 마치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최희서와 이제훈이 확 몰아치면 난 슥 빠지고, 그들이 약해지면 내가 몰아치는 거였다. 내가 오버해서 다가가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함께 일본인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한 달 반 정도 따로 홍대 쪽 연습실을 빌려서 계속 만났다. 이들 이름을 꼭 써 달라! 간수 후지시타 역의 요코우치 히로키, 다테마스 검사 역의 김준한, 내 옆에 꼭 붙어있던 경시총감 박성택. 이렇게 네 명이서 맞춰봤다. 이렇게 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일단 다들 무명배우라 시간도 많았고(웃음), 중요한 역이니 일본어가 어색하면 관객 분들이 지루할 거라 생각했다. 미즈노는 기술적인 면이 요구되는 캐릭터였다. 그래서 소품도 디테일하게 생각해야 했다. 조감독에게 이것저것 요구했지."
- 소품을 직접 제안한 건가?
"그렇다. 대본엔 앉아서 말하는 신이 많았다. 관객이 지루해할 것 같았다. 배우들이 만나서 연습할 때마다 아이디어를 모았다. 종종 서서 걷는다든가, 돌아가는 의자에 앉는다든가, 거울과 미즈노의 족집게, 재떨이와 펜 등 모두 우리가 연습하면서 하나씩 나온 아이디어다. 큰 건 연출부에서 준비하는데 디테일은 배우들이 직접 모의 연기하면서 채울 수 있거든."
역사 영화에 대한 갈망
18세 때부터 본격 연기수업을 받기 시작한 이후 차곡차곡 쌓아온 30년의 연기경력. 그의 삶은 일본과 한국으로 나뉜다. 지난 2009년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계기로 그의 연기 인생 2막이 올랐다. 서툰 한국어 발음과 이미지로 대부분 기능적인 일본인 캐릭터를 맡아 온 그는 공식석상에서 "한국인 배우"임을 매번 강조한다. 일본 활동 당시 연기 학원 강사로 생계를 이어나가다가 동네 이웃들의 모함으로 일거리가 끊기는 등 차별과 억압을 몸소 겪었던 그의 또 다른 이야기를 물었다.
- 일본 활동 때 숱한 차별을 겪은 걸로 알고 있다. 그로 인해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힘들기도 했다고. 그런데 영화에선 차별의 가해자가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처음 하는 얘긴데) 한국에 오게 된 결정적 이유가 역사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제 강점기를 영화화 한 게 내가 한국에 오기 전까진 많지 않았다. 하나의 목표였다. 조부모와 어머니에게 역사를 배웠고, 조총련 계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다. '(비극의) 역사를 무시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언젠가 영화라는 예술 안에서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근데 막상 <동주>나 <박열> 대본을 읽는데 마음이 심상치 않더라. 내가 듣고 배운 것보다 훨씬 심한 얘기가 나오잖나. 마음을 못 잡을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근데 난 반대의 위치에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보여야 했다. 그 역할로 들어가기 위해 그 사람으로 동화되는 과정에서 개인감정을 지우려했다.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게 뭔가. 이 질문을 내게 계속 던졌다."
- 역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인가. 두 작품으로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고 들었다.
"강한 편이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오히려 일본 역사를 모르는 편이다. 난 재일교포고 어릴 때부터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동주>와 <박열>이 내겐 역사를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배우는 또 그걸 진짜처럼 느껴야 하잖나. 사진과 책으로만 보던 걸 연기할 때 그들의 피가 (내게) 스며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강하다. 사료엔 일부만 나와 있는데 영화 대본은 전체적으로 풀어주니까. 특히 관동대학살은 한 명에게 죄를 몰았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걸 끝까지 밀고 갔다는 게 참…. 지금 정치권과 똑같지 않나? (자기네) 이슈가 나오면 또 다른 이슈로 묻어버리려는 속성."
▲ 일본에서의 차별의 기억 등. 그는 역사극을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고 한국으로 향했다. ⓒ 이희훈
"한국영화가 내겐 빛이었다"
- <집으로>와 <파이란> 등의 한국영화를 보고 사랑을 느꼈다고 말한 적 있다. 한국에 오기 직전 일본에서 생활이 아주 바닥이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상태와 그 느낌이 궁금하더라.
"(웃음) 그땐 내게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꽃이 물을 안 맞으면 시들잖나. 그 영화를 보고 물과 햇빛을 받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 건강, 아니면 돈 이 중 하나라도 그때 내게 있었다면 좋았을 건데 다 없었다. 힘든 생활에 너무 과음해 의사가 술을 더 마시면 죽는다고 할 정도였다. 아, 바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할 때 <집으로>가 내겐 물이자 빛,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온 몸에 소름 돋는 느낌 혹시 아시나?"
- 그런 상황이면 운명을 탓하며 비관하기 십상일 텐데, 어떻게 극복했고, 연기자 생활을 이어갔나.
"종교에 잠깐 들어갔었다. 한국에 오기 전 내 걱정을 계속 해주시더라. 그곳에서 준 책에 어떤 말이 써 있었는데 그 말에 내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너가 하고 싶은 게 뭔데?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잡아라' 이런 내용이었다. 그때까진 날 위한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남을 위한 연기도 가능하단 걸 알게 됐다. <집으로>를 보고 내가 희망을 얻었듯 말이다. 사람은 도움을 주고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안 거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구나' 연기 개념이 달라진 거지.
이런 말까지 해도 되나? 한국에 처음 와서 차별을 겪었다. 택시를 탔는데 서툰 한국말에 기사님이 반갑다고 일본인이냐고 말을 거시는데 재일교포라고 하니 안색이 싹 바뀌면서 내리라고 하더라. 내 주변 동생들도 그런 일을 겪더라. 슬펐다. 일본에서 난 외국인인데 한국에서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 거니까 내 나라가 없는 거 같고 화도 났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동시에 사명감도 생겼다. 여러 동생들이 날 믿고 따라 오는데 일본인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무대인사 다닐 때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말한다. 어제 기사 댓글에 '재일교포 3세면 일본인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있더라. 마음이 안 좋았다. '조부모가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에서 태어났을 뿐, 내 피는 한국인이다. 당신이 만약 외국에서 태어나 거기서 산다고 한국인이 아닌가?' 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 귀화를 고민한 적은 없나. 일본 활동 때 일본 이름을 쓰기도 했고, '배우좌'라는 60년 전통의 극단에서 배웠잖나.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사실 귀화하면 내게 도움 될 게 많았다. 조총련이 북한 계열이니 해외에 나갈 때 미국령은 못가거든. 근데 내가 일본인으로 귀화하면 조부모가 그간 쌓아온 모든 고생을 배신하는 거다. 일본 활동 때 (잠시) 다무라 히로토라고 한 적이 있는데 소속사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런 거다. 아, 그리고 나 배우좌 출신 아니다. 어느 기자 분이 잘못 쓰신 건데 계속 언급되더라. 내게 연기를 알려주신 스승님이 배우좌 출신이지 난 여러 극단을 전전했다. 꼭 수정해 달라."
그리고 운명
- 연기가 그만큼 운명이라고 생각한 건가. 결심 계기가 노무라 요시타로의 <의혹>을 보고 난 뒤였다고.
"아니, 어떻게 그 내용까지 아는가? (웃음) 고등학생 때였다. 경찰에 잡힌 적이 있는데 학교 안에서 누군가의 모함 때문이었다. 한 사건이 있었고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내가 잡힌 거지. 난 부모님도 안 계셨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아이였거든. 그래서 <박열>의 감정을 잘 안다. 그 무렵 <의혹>을 처음 봤다. 분명 연기인 걸 아는데 진짜 같더라. 배우란 뭔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연기가 어떤 건지 알고 싶었다."
-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연기를 택할 건가.
"(주저 없이) 다시 돌아가도 배우 할 거다! 근데 진짜 힘들었다(웃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세 가지 중 하나에 드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 말리고 싶다. 실제로 친구가 배우하고 싶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는데 너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근데 왜 난 연기를 지금까지 하냐고? 내겐 지금 남은 게 이것밖에 없다."
- 계속 일본인 캐릭터를 하다가 유일한 한국인 캐릭터를 맡은 게 신연식 감독의 단편 <과대망상자들>에서다. 한국인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몇 차례 드러낸 적 있다. 여전한가.
"그 마음이 크다. 단역이든 뭐든 한국인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쌓아온 경력은 신경 안 쓰고 대사를 단 한 마디만 하더라도 하고 싶다. 내겐 도전이다. 지금의 내 (어눌한) 말투와 모습을 보면 감독님들은 아마 맡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맡으면 해내는 게 배우다! 해보고 싶다."
<박열> 이후 <군함도> 그리고 <공작>에서 김인우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위한 연기, 그리고 아직 깨보지 못한 과제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연기 엔진이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든 일의 원인은 내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남겼다. 이 역시 그의 단단한 내공의 이유일 것이다.
▲ 곧 개봉할 <군함도>에서 그는 꽤 비중 있는 역으로 등장한다. 조선인 학살의 주범으로 말이다. ⓒ 이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