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니 홀>(1977)의 포스터. 우디 앨런에게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기며 그를 주류 감독으로 격상시킨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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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감독작만 따져도 47편이나 되는 우디 앨런의 작품 세계를 대략 네 시기 정도로 나눠 간략하게 살펴 보고, 시기별 추천작들을 소개합니다.
[하나] 웃기는 남자, 최고 감독이 되다(1969~1979)데뷔 초기 우디 앨런의 영화는 '웃기면 장땡'이라는 코미디의 대원칙에 충실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가짜 다큐멘터리, SF, 성 지침서, 러시아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패러디하고 풍자하면서 관객을 웃겼습니다. 흔히 우디 앨런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들과는 이야기 전략 자체가 달라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영화들이기도 하죠.
그러나 <애니 홀>(1977)과 <맨하탄>(1979)은 확실히 보편적인 의미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로맨스물의 플롯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실험적인 표현 형식이나 과감한 인물 설정을 통해 감독 특유의 개성을 잘 드러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앨런의 영화 작업 환경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줬습니다.
그런데도 앨런의 미학적 모색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각각 잉마르 베리만과 페데리코 펠리니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는 <인테리어>(1978)와 <스타더스트 메모리>(1980),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강하게 의식한 <한여름 밤의 섹스 코미디>(1982) 같은 영화들이 그랬습니다.
[둘] 자기만의 스타일을 꽃 피운 전성기(1983~1993)이 시기에 앨런은 초기의 관심사와 형식에 대한 실험 정신을 이어받아 자기만의 색깔을 완성했습니다. 이 시기 이후의 영화들은, 이 때 나온 요소들을 활용하여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아 패로와의 협업은 이 시기 영화들을 특징짓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전까지 지적이고 유머 감각 넘치는 다이앤 키튼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것과는 달리, 로맨틱한 몽상가 스타일에 가까운 미아 패로를 등장시키면서 우디 앨런 영화 특유의 색깔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을 다루는 앨런 특유의 주제 의식이 효과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앨런의 80년대 영화들은 모두 챙겨볼 만한 작품들이지만, 1930년대 뉴저지의 주부가 영화 속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가 또 하나의 주인공이기도 한 <한나와 그 자매들>(1986), 건조하고 깔끔한 범죄물이자 블랙 코미디인 <범죄와 비행>(1989), 이렇게 셋은 꼭 봐 두어야 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