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
17일, 최근 종영한 tvN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아이돌 밴드 크루드플레이의 드러머 지인호 역할을 맡았던 배우 장기용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든 생각은 "와 크다"였다.
2014년 SBS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그는, 사실 6년 차 베테랑 모델이다. 김서룡, 이상현, 최범석, 박승건, 장광효 등 정상급 모델들만 설 수 있다는 유명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무대에 두루 올랐고, 2014년 '제9회 아시아모델상' 패션모델상, 2015년 '제30회 코리아 베스트 드레서 스완어워드' 남자모델상을 받기도 했다. 모델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돌연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뭔가 해보고 싶어서.
소년, 배우를 꿈꾸다
▲ ‘교정기 낀 모델’, ‘교정기 훈남’. 모델 시절 장기용의 별명이다. ⓒ 이정민
"가만히 있는 것보다 활동적인 게 좋았어요. 자연스럽게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꿈꾼 것 같아요."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장기용'이라는 이름도, 그의 얼굴도 낯설지만,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교정기 낀 모델', '교정기 훈남'을 들어봤을 것이다. 모델 시절 장기용의 별명. 교정기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개구진 표정은 모델 장기용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넘치는 개성과 끼, 어릴 때부터 넘쳤느냐 물으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형이 끼가 많았어요. 비보이도 하고, 학교 축제 때 MC도 보고 그랬죠. 가족 모임에서도 노래와 춤은 형의 역할이었어요. 전 그런 형을 보며 박수치고 신기해하는 내성적인 아이였죠. 그런 제가 갑자기 연예인을 하겠다고 하니... 하하하 부모님은 지금도 제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라세요."
'큰 키' 때문에 자연스럽게 모델을 꿈꿨지만, 모델은 그저 키 크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가방 하나 둘러메고 직접 모델 에이전시마다 돌아다니면서 오디션을 봤지만, 대부분 '얘는 어디서 온 촌놈이야?' 하는 반응이었다고. 그러다 겨우 현재 소속사인 케이플러스(현 YG케이플러스)와 계약하게 됐지만 그 후로 8개월간 일이 없었단다. 한 달에 한두 번, 선배들 행사장에 따라가는 일이 전부. 하지만 기회는 찾아왔다.
"두 명이 찍는 화보였는데 한 명이 펑크가 난 거예요.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죠. 콘셉트가 자유롭게 발랄한 느낌으로 찍는 거였는데, 어릴 때 끼 넘치던 형을 보면서 홀로 갈고 닦았던 끼를 한껏 발휘했죠. 에디터 분들, 포토그래퍼 선생님 모두 너무 귀엽다 신선하다 좋아해 주셨어요. 자신감도 커졌죠."
'무대 체질' 깨닫다
▲ 장기용은 여행을 좋아한다. 훌쩍 광주로, 광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통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을 정도다. ⓒ 이정민
그렇게 한 번 터진 끼는 그를 모델로, 방송인으로, 배우로 이끌었다. 처음 JTBC <힙합의 민족2>에 출연할 때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현직 래퍼 앞에서, 어떻게 랩을 하지?' 싶었지만, 이내 무대에 올라 프로 래퍼 못잖은 실력을 쏟아냈다. 그 방송을 다시 보면 스스로도 '내가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 그는 자신이 '무대 타입'이라는 걸 알았단다.
"저는 오디션이면 긴장을 심하게 해요. 어색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뭘 잘 못 하겠더라고요. 배우는 어떤 상황이든 연기가 바로 나와야 하는데... 오디션 분위기에 압도돼서 무섭고 불편하고, 주눅 들고 그랬어요. 근데 '여기가 내 무대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다 내려놓아지는 것 같아요. 제 안의 또 다른 제가 나오더라고요. 아직은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까지 도달하는 게 좀 어렵지만... 점점 익숙해지겠죠?"
그의 소속사 YG에는 대선배 차승원부터 강동원, 이종석, 이수혁, 남주혁 등 모델 출신 배우들이 많다. 그에게는 "후배들의 길을 잘 닦아주신 감사한 선배님들"이다. 그중 그의 롤모델이자 동경의 대상은 차승원이다.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지난 15일, 'YG 유니세프 워킹 페스티벌'에서 만난 차승원과 함께 식사한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이사님이 '승원이랑 밥 먹을 건데 올래?' 하시더라고요. 망설임도 없이 달려갔죠. 제 이름 불러주시고, 안부 물어봐 주시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배우로서 커리어도 훌륭하시고, 패션모델이라는 직업도 너무 사랑하셔서 지금도 패션위크 무대에도 오르시잖아요. 자기관리도 너무 철저하시고요. 제가 선배님 나이가 됐을 때, 차승원 선배님처럼, 후배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 출연한 대선배 최민수의 카리스마도 배우로서 갖고 싶은 매력. 직접 만나기 전에는 <품행제로> 속 무서운 카리스마만 떠올라 걱정도 많이 했단다 하지만 유쾌한 유머로 현장 분위기를 밝고 부드럽게 만드는 그의 모습에 대선배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선배님 오신 날은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웃고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후배들 긴장 풀라고 일부러 장난도 더 치시고... 연기할 때도 꼭 대사대로만 하시기보다 애드리브나 다른 동선을 추구하시는데, 연기가 아니라 일상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정말 그 인물이 돼서 행동하는 느낌이랄까요?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것들이 있었어요. 이번엔 함께하는 장면이 딱 두 신 뿐이라 아쉬웠어요. 다음에 작품에서 또 뵀으면 좋겠어요."
데뷔 3년차 신인, 40대 상상하며 꿈 키운다
▲ tvN 월화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에서 지인호 역의 배우 장기용이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연기자 데뷔 3년 차. 그는 선배들의 길을 밟아가며 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다. <보이스> 김재욱 같은 섹시한 살인마나, <신세계> 같은 누아르... 해보고 싶은 장르도, 역할도 많다. 지금은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 "천천히 올라가는 중"이라고. 잘 올라가고 있다 생각하는지 물었다.
"음... 그래도 데뷔 후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있잖아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헤쳐 나가고는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신인이라 배우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차곡차곡 경험과 내공을 쌓다 보면, 30대나 40대쯤 된 '배우 장기용'은 조금 나아져 있겠죠? 가끔 상상해요. 캐릭터 변신을 위해 수염을 기르거나 삭발을 하는 제 모습이요. '이번 캐릭터에는 이런 콘셉트 어떨까?' 고민하는 제 모습이요. 그때 전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요. 연기를 그만둔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이렇게 기분 좋은 상상 하면서 미래를 그리면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