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빛내는 또 다른 주역을 찾습니다. 연기하는 배우라는 점에서 '주'와 '조'는 따로 없습니다. 혹시 연기는 잘하는데 그동안 이름을 잘 몰랐다고요? 가만 보니 이 사람 확 뜰 것 같다고요?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온 이들을 <오마이스타>가 직접 '픽업'합니다. [편집자말] |
▲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에서 이장수 역을 맡은 장세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신의 퀴즈4> 영화 <바람> <위험한 상견례2> <덕혜옹주> 등에 출연했다. ⓒ MBC
주연으로 전면에 선 배우들 모두 주말극이 처음이었다. 걱정이 많았고, 일종의 모험이었으나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속 이들은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의 보상일까. 종영을 앞두고 평균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경쟁작과 함께 제법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손호준과 임지영이 각각 장고-미풍 커플로 분하며 각종 사건에 얽히는 동안 꾸준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장세현의 이장수와 황보라의 조희라 커플이다. 이들은 일명 고구마 전개라며 드라마의 주요 사건이 막힐 때도, 급박한 전환점을 맞을 때도 꾸준히 사랑했고, 시원한 모습을 유지했다. 시청자들이 그만큼 감정 이입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이 두 사람 중 장세현을 21일 서울 충무로 인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
연습량이 곧 분량
▲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속 한 장면. 극 중 장수(장세현 분)의 모습이 보인다. ⓒ MBC
종영까지 2화가 남은 가운데 <불어라 미풍아>는 지난 20일 마지막 촬영을 끝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 것 같았는데 막상 마치니 공허하더라"며 장세현이 이른 종영 소감부터 전했다.
"드라마 내용 자체가 이산가족상봉이잖아요. 지난 7개월간 매주 두 번씩은 다들 만났는데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선생님들, 또 파트너로 함께 했던 보라 누나에게도 참 감사해요.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면 저희끼리 따로 모여 연습하곤 했거든요. 분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연습량을 늘려서 이것저것 시도하려 했어요."
극 중 이장수는 달래 할머니(김영옥 분)와 유대 관계가 깊고, 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막내아들로서 엄마 황금실(금보라 분)과 장남 이장고(손호준 분)에겐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을 터. 장세현은 "실제 집에선 장남이지만 애교가 많은 편이라 스스로 장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며 "시청자분들이 이입하기 가장 쉬운 캐릭터라고 봤고, 그렇게 준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이 많은 면은 저랑 비슷한데 또 어떤 면에선 완전 다르기도 해요. 사랑에 빠져 몰래 혼인신고하기가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런 면을 연기할 땐 나름대로 대리만족을 느꼈다랄까(웃음). 집에서 부모님이 제가 출연한 걸 종종 보셨는데 '장수가 그냥 네 모습인데?' 이런 반응이었어요. 굉장히 모범적 인물이면서 또 백수기도 한데, 적극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에요. 제겐 색다른 경험이었죠."
주말극이 처음인 만큼 세세하게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짝꿍인 황보라와 이런저런 호흡을 미리 맞춰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커플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극 중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장세현은 "혼인신고 사실 때문에 놀이터에서 장고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그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역시 기존 설정에 아이디어를 보태 코믹하게 재탄생한 경우였다.
다재다능함
▲ <불어라 미풍아>에 합류하면서 그는 선배 배우들을 '선생님'이 아닌 '엄마', '할머니' 등으로 불렀다. "그만큼 역할에 몰입하기 좋았다"면서 "선배님들이 현장에 임하는 자세 하나하나가 배움이었다"고 말했다. ⓒ MBC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장세현은 영화 <바람>과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데뷔해 벌써 8년 차 경력이 쌓였다. 올해로 서른하나, 데뷔 이후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고루 경험했다. 대학에서 전공은 산업디자인으로 이 또한 이색 이력이다.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입대 전 학교를 나왔고, 말 그대로 한 계단씩 올라오고 있는 전형적인 노력파다. 한 달에 평균 4, 5번의 오디션을 다니며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겪었고, 그로 인해 나름 굳은살 역시 튼실하게 배어있다.
"디자인도 연기도 모두 제 꿈이었어요. 학교는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오디션 볼 때도 이걸 장점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캐릭터 분석표를 드릴 때 제가 상상한 캐릭터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드린 경우도 있었죠. <화랑> 땐 주령구(주사위의 일종)라고 대본에 나온 소품을 직접 만들어 가기도 했고요(웃음).
어렸을 때부터 반에서 그림 하면 제가 손꼽히는 편이었어요. 특별활동 부서도 만화부에 들 정도로 좋아했죠. 예술고등학교에 떨어진 이후 제대로 준비하고 싶어서 부모님과 상의했고, 흔쾌히 지원해주셨어요. 사실 집안 환경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는데 믿고 맡겨주신 거죠. 그러다 대학교에서 갑자기 연기한다고 하니 어떻겠어요? 그런데도 '후회하지 않을 거냐'라고 물어보시곤 그 이후로 쭉 믿어주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 이야기에 되게 놀라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오디션은 일단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겐 소중하죠. 그런 점에서 회사에 참 감사합니다. 저만 잘하면 돼요! (웃음) 너무 떨어져서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붙으면 같이 즐거워해 주고 떨어지면 슬퍼해 줄 분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큰 힘이에요."
그림이란 게 흰 도화지에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표현하는 행동이라면 연기 역시 장세현에겐 빈 도화지에 몸으로 생각과 감정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떤 도구가 아닌 온몸을 쓸 수 있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다"며 그가 전환의 계기를 설명했다.
시작은 할 수 있어도 버티기 어려운 게 이쪽 업계의 생리다. 재능 있고 젊은 자원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작품 자체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에 뒤늦게 입대하면서도 그는 군악대, 군 행사 진행 등을 거치며 끼를 숨기지 않았고,
느리지만 길게
이런 이유로 장세현은 급히 부상한 스타보단 "과정을 거쳐 하나씩 배워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역할을 떠나 일단 연기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하다"며 "조급증은 이미 버렸고, 주어진 기회를 좀 더 많이 살리는 게 내 숙제"라고 답했다.
"빠르게 주목받고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그 반대의 경우도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 분들이 어깨에 진 짐이 그만큼 무겁겠죠? 전 비행기보단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웃음) 친한 친구와 꿈에 관해 얘기할 때 서로 이루면 꼭 방송국에서 만나자고 했거든요. 그 친구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고, 마침 지난해에 KBS에 합격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저도 마침 KBS 드라마를 했고요. 아, 우리가 좀 느리긴 해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밝은 어투로 말했지만, 장세현의 이 말엔 그가 지금까지 해온 고민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오디션을 보든 섭외가 오든 장세현은 "열린 자세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