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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여왕'이 들려주는 험란한 인생 이야기

[B메이저-AZ 록 여행기] 어리사 프랭클린의 앨범 <레이디 솔>

24.03.18 11:02최종업데이트24.03.1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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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위상을 수식하는 영어 용어로 'arguably'가 있다. 최상급 바로 앞에 붙이면 '거의 틀림없는, 주장하건대'라는 뜻이다. 견줄만한 이가 있을 때 쓴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나 비욘세(Beyoncé)에게 'arguably greatest female pop singer'라고 쓴다. '거의 최고의 여성 팝 가수'다.
 
그보다 위상이 높은 이에게는 'undisputed'를 붙인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이다. 어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The undisputed Queen of Soul(이론의 여지가 없는 솔 여왕)'이다. 어리사에게는 이런 수식어도 필요 없다. '솔 음악의 여왕'이 그녀의 다른 이름이다.
 
4옥타브 고음을 가볍게 내고 리듬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압도적 기량, 재즈·블루스·가스펠부터 솔·리듬앤드블루스(R&B)·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소화력, 전문 세션맨들이 한 수 접는 피아노 실력, 인기 차트에 오르는 곡을 써내는 작곡 능력까지 갖췄다.
 
어리사 음악을 맛나게 듣기 위해 음악 지식이 약간 필요하다. 가스펠 송(gospel song)은 20세기 초 미국 흑인 교회에서 시작된 노래로, 영가와 재즈를 혼합했다. R&B는 194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음악이며, 블루스와 가스펠에 재즈의 스윙 감각이 합쳐졌다. 솔 뮤직은 1950년대 말 가스펠과 R&B, 재즈, 록이 더해져 강렬하고 간절한 감정을 싣고 있다. 어리사는 가스펠로 시작해 R&B, 솔은 물론 블루스와 팝에도 능했다.
 
불행했던 개인사

개인사는 불행했다. 어리사는 1942년 3월 25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클라렌스 라본 프랭클린(Clarence LaVaughn Franklin)은 침례교 목사였다. 그의 불륜으로 부모는 별거했다. 어머니 바바라(Barbara)는 어리사가 9살 때 숨졌다.
 
음악적으로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어머니는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였다. 아버지는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목청이 좋았다. 회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뛰어났다. 어리사는 아버지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가스펠에 심취했다. 집에는 최고 가스펠, 재즈 뮤지션들이 들락거렸다.
 
그녀는 피아노를 독학했다. 집 층계에 앉아 엿들은 피아노 연주자는 냇 킹 콜(Nat King Cole), 아트 테이텀(Art Tatum),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등이다. 설명이 필요 없는 대가들이다.
 
딸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교회와 순회 목회에 데려가 노래를 부르게 했다. 어리사가 18살이 되었을 때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1961년 데뷔 앨범 <어리사 : 위드 더 레이 브라이언트 콤보(With The Ray Bryant Combo)> 등 9장을 냈다.
 
어리사가 솔 여왕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1966년 11월 애틀랜틱 음반사로 이적하면서다. 비틀스(the Beatles)에게 조지 마틴(George Martin),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퀸시 존스(Quincy Jones)가 있었다면 어리사에게는 애틀랜틱 프로듀서 제리 웩슬러(Jerry Wexler)가 있다. 웩슬러는 어리사 음악 깊숙이 내재한 가스펠을 뽑아냈다.
 
1967년 1월 24일 두 사람이 첫 작품으로 '아이 네버 러브드 어 맨 더 웨이 아이 러브 유(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를 녹음하기 위해 앨라배마 머슬 숄스에 있는 페임 스튜디오를 찾았다. 내로라하는 세션맨들이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노래는 시작도 안 했는데 24살짜리 풋내기 가수 어리사가 피아노로 몇 코드를 치자 방안에 긴장감이 번졌다. 어리사는 한순간에 분위기를 장악했다. 피아노 세션 연주자인 스프너 올덤(Spooner Oldham)은 "어리사 연주를 들은 다음에 '피아노는 저 여자가 치게 하고, 나는 오르간을 치겠다'라고 프로듀서에게 간청했다"라고 회고했다.
 
노래는 빌보드 핫 100에서 9위에 올랐다. 여왕의 행진이 시작됐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 노래를 리메이크한 '리스펙트(Respect)'는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다. 흑인 권리 신장을 요구한 공민권운동이 한창일 때 존중을 부르짖는 가사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처지와 맞아떨어지면서 사랑받았다.
 
<어리사 프랭클린:레이디 솔(Aretha Franklin: Lady Soul)> 앨범이 나온 때가 1968년 1월이다. 최전성기 시절 목소리와 기량이 담겨 있다. 첫 곡 '체인 오브 풀스(Chain Of Fools)'는 빌보드 핫100에서 2위까지 오른다. 경쾌한 반주로 시작해, 어리사의 사랑스러운 보컬이 뿜어져 나온다. 단순한 리듬 속에서도 목소리 톤만으로 분위기를 조절했다.
 

<어리사 프랭클린:레이디 솔(Aretha Franklin: Lady Soul)> 앞면.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나온 어리사의 세번째 앨범이다. ⓒ Atlantic

 
'머니 원트 체인지 유(Money Won't Change You)'는 솔 노래다. 어리사의 보컬은 사랑스러움과 새침함 사이를 오간다. 중반 이후 애드리브에서 타악주자같은 탁월한 리듬감을 들려준다.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가 작곡한 '피플 겟 레디(People Get Ready)'는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 에바 캐시디(Eva Cassidy), 실(Seal), 애런 네빌(Aaron Neville) 등이 커버했다. 어리사는 이 곡도 자신의 곡으로 만들었다. 느리게 울렁거리는 오르간 연주 위에 가창력을 폭발시킨다.
 
A면 마지막 곡은 '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어 내추럴 우먼(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이다. '리스펙트'와 함께 어리사의 대표곡이다. 코러스 중 한 명인 시시 휴스턴(Cissy Houston)은 나중에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을 낳았다.
 
B면 첫 곡은 '스위트 스위트 베이비 신스 유브 빈 곤(Sweet Sweet Baby Since You've Been Gone)'도 흥겨운 솔이다. 2, 3개 옥타브 음역을 쉽게 넘나들어서, 곡예 하는 듯하다. 이 노래도 핫100에서 5위까지 오른다. '굿 투 미 애스 아이 앰 투 유(Good To Me As I Am To You)'은 블루스다. 인생을 다 살아본 가수처럼 능숙하게 목소리를 연주한다. 스물세 살의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이 기타 반주를 했다.
 

▲ <어리사 프랭클린:레이디 솔(Aretha Franklin: Lady Soul)> 뒷면 <어리사 프랭클린:레이디 솔(Aretha Franklin: Lady Soul)> 뒷면.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나온 어리사의 세번째 앨범이다. ⓒ 최우규

 
프랭클린은 솔 뮤직에 안주하지 않았다. 1970년대 R&B, 1980년대와 1990년대 팝에서 히트곡을 냈다. 60년 동안 공연과 앨범으로 여왕의 지위를 누린 그녀는 2018년 췌장의 신경내분비계 종양으로 숨졌다.

어리사는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든 첫 여성 뮤지션이다. 112곡이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순위에 들었고, 17곡은 톱 10에 올랐다. 그래미상 18개를 받았다. 음악 잡지 롤링스톤은 2023년 위대한 가수 200명 1위에 어리사를 올려놓았다.
 
전성기 시절 어리사 바로 뒤 순서로 무대에 오르고 싶어하는 여성 가수는 없었단다. 조카처럼 아낀 휘트니 휴스턴마저. 압도적 가수, 디바(diva, 최고 여가수)의 디바, 바로 어리사 프랭클린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최우규 시민기자의 소셜미디어 등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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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로 23년 일했다.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다. 음반과 책을 모으다가 시간, 돈, 공간 등 역부족을 깨닫는 중이다. 2023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룬 책 <대통령의 마음>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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