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빵 먹고 싶은데 100원 없으면..." 재미난 가게의 재미난 실험

순천 재미난협동조합 이야기... 재미난 가게의 재미난 실험으로 재미나는 사람들

등록 2023.11.13 16:06수정 2023.11.13 16:07
3
원고료로 응원
a

맡겨놓은 현금 현금이 필요한 이들에게 주라며 맡겨놓은 돈. 위아래로 격려와 감사의 글이 빼곡하다. ⓒ 임경환

 
순천시 저전동에 가면 '재미난 가게'라는 카페가 있다. 10평 남짓의 작은 가게지만 사는 게 재미없고 지루한 이들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가자미눈으로 보면 내로라하게 모양새 나는 카페도 아니고 이름난 맛집도 아니지만 기발한 상상을 현실에서 실현해 내는 사람들과 그들의 온기가 넘치는 곳이라서다.

재미난가게에는 맡겨놓은 현금과 맡겨놓은 음료와 맡겨놓은 책이 있다. 주로 어른들이 맡겨놓고 그것이 필요한 지역의 청소년들이 가져가거나 먹고 간다. 대상을 정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이 비현실적인 행위는 아무 때나 빈번하게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맡겨놓은 현금
 
"재미난가게에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위해 맡겨놓은 현금이 있다. 중간고사를 잘 못 봐서 기운 빠져 있는 여고생들에게 누군가가 맡겨놓은 현금을 풀었다. 학생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놀랐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나중에 자기도 청소년들에게 기부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한다."

"순천시의 학교 밖 청소년들이 새롭게 검정고시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울산시교육청의 한 장학사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쓰라며 보내 준 돈으로 카페의 회원들이 새벽부터 빵을 만들었다. 그리고 순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활동가가 이 빵을 가져다 청소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산 금정구의 '거꾸로 놀이터'에서 재미난가게 탐방을 왔다. 함께 온 청소년들에게 맡겨놓은 현금을 주었더니 한 청소년이 우리도 기부하자고 제안을 했고 다른 친구들이 호응하면서 각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현금을 꺼내어 모았다. 돈은 돌고 돌아 제자리이지만 그사이에 엄청난 마음들의 교환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다며 재미난가게에 1만 원을 맡겨두었다."

"진주에서 오신 분이 순천 청소년들을 위해 현금을 맡겨놓고 가셨다. 이유를 묻지 말고 필요하다면 주라고 하셨다." (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맡겨놓은 100원
 
a

맡겨놓은 100원 초등학생 어린이가 100원 빵을 사먹는 데 쓰라고 맡겨놓은 돈 ⓒ 임경환

 
"100원이 없어서 빵을 못 사 먹는 누나가 있으면 주라고 어느 초등학생이 붙여 놨던 100원이 오늘 드디어 쓰였다. 100원을 받은 여고생이 쪽지에 한마디를 남겼다.
'네 덕분에 굶주린 학생 살맛 난다.'"(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100원 빵 나눔과 찾아가는 나눔 빵


재미난가게에서는 '100원 빵 나눔'도 하고 있다. 지역의 주민들이 재료비를 후원하면 카페 회원들이 직접 빵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100원에 판매하고 있다. 100원 빵은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고픈 청소년들이 애용하는 메뉴 중 하나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재미난 제과점에서 빵을 구워 인근의 학교로 찾아가 빵 나눔을 하기도 한다. 이 역시 졸업생이나 지역의 후원자들이 낸 후원금으로 재료를 구매해 재미난 제과점에서 빵을 만들어 나누고 있다. 
 
"오늘 순천 매산중학교 학생들이 채식 요리 체험하러 재미난가게에 왔다 100원 빵 나눔에 참여하고는 한 친구는 마구마구 춤을 추고, 한 친구는 가만히 1만 원을 꺼내 맡겨진 카페에 내고 싶다며 준다. 이유를 묻자 그냥 내고 싶다고 한다. 세상에 악의적이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100원 빵을 하는 분들을 보고 저도 뭔가 내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힘든 사람을 위해 힘이 되고 싶네요.'라고 쪽지에 쓴다. 세상에나! 학생들도 마음을 내기 시작하네요."

"영광교육지원청 김유동 교육지원과장님이 순천여고 학생들에게 나눠줄 100원 빵 재료비를 후원해 주셨다. 아침 등굣길에 '김유동 머핀'을 100원에 나눠 주었다. 이 빵을 받은 학생은 감사 메모를 남겼다."(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a

100원빵 나눔 재미난카페에서 100원 빵을 학생들과 나누고 있다. ⓒ 임경환


맡겨놓은 책
 
"순천의 '심다 책방' 사장님이 재미난가게에, 책방에서 책을 고를 수 있는 쿠폰을 맡겨두었다. 순천여고의 두 학생이 전화로 진짜 쿠폰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책방을 찾아 심사숙고 끝에 책 한 권씩을 골랐다고 한다. 대가 없는 선물에 학생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맡겨놓은 음료

재미난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원하면 청소년들을 응원하는 쪽지와 함께 음료값을 미리 계산하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언제나 특별한 대가 없이 이곳에서 음료를 마시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맡겨놓은'은 이제 분식과 닭갈비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재미난가게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맡겨놓은 음료, 책, 현금은 이제 맡겨놓은 분식, 맡겨놓은 닭갈비로 확장되고 있다.

<맡겨놓은 닭갈비> "제가 나간 이후에 처음 오는 2명의 청소년에게 닭갈비를 선물해 주세요"
<맡겨놓은 분식> 배고픈 청소년들에게 떡볶이 1인분씩을 선물해 주세요~
 

재미난가게의 '이로운 이용권'
 
a

맡겨놓은 책 맡겨놓은 책을 선물 받고 즐거워하는 청소년들 ⓒ 임경환

 
'이로운 이용권'이란 재미난가게가 발행하는 카페 자율이용권이다. 1장에 1만 원에 판매되는데 이 이용권으로 카페의 음식은 물론 카페에서 이뤄지는 온갖 일들에 참여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이 이용권이 있으면 다른 사람과 만나서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일과 후에 카페를 단독으로 빌릴 수도 있고 콘서트 입장도 가능해요. 지금은 순천 시민 일부만 연결된 아주 소박한 네트워크지만 유익한 상점이나 심다 책방, 짱순이빵 등등 다른 네트워크들도 결합한다면 아주 풍성한 이용권이 될 것 같아요.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나 물건은 무궁무진한데 종이 여백이 부족해서 다 담지 못했어요. 아껴 두었다가 다음 시즌에 추가하려고요. 함께 하실 분들은 연락주세요. 이 티켓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순천에 오시면 선물로 드립니다."(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지역의 많은 자영업자가 참여한다면 이로운 이용권의 활용도도 높아지고 지역화폐처럼 지역경제에 도움도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로운 이용권은 구매자나 구매자가 지정한 사람에게 직접 배달을 해준다.
 
a

이로운 이용권 재미난가게에서 발행하는 이로운 이용권 ⓒ 임경환

  
이로운 이용권배달 후기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제휴처도 많고 편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데 많은 사람이 애용한다. 이로운 이용권으로는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고 실물로 받아야 쓸 수 있기에 여러모로 경쟁력이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배달해 준다는 것과 이 이용권을 사용하면 우리 지역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경쟁력으로 삼으려고 한다.

박00씨가 최근에 힘들어하는 자기 언니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며 이용권 3장을 구매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배달을 갔다. 소개팅 나가는 기분이었다. 이 이용권배달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용권을 구매한 사람은 이용권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질 것 같아서 기쁘다. 이용권을 선물 받은 분이 이용권 5장을 다시 구매하셨다. 순천이 낯선 곳이었는데 살고 싶은 마을이 생겼다고 한다."(임경환 재미난협동조합 이사장)
 
a

맡겨놓은 음료 누군가 필요한 이에게 주라면서 음료 값을 미리 내고 간 손님들 ⓒ 임경환

  
상상하기에 서툰 우리는 어쩌다 한 번 상상을 할 때도 한계를 짓곤 한다. 이미 세상을 많이 알아버렸고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구분 짓는 데 익숙해져 있는 탓이리라. 상상마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을 탓해봐야 내 속만 쓰리다. 즐거운 상상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열심히 하는 건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재미는 별로다. 짬날 때마다 재미있는 일을 상상해 보고 하나씩 실현해 보는 재미는 지난한 우리의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될지도 모른다.

재미난 상상과 실험은 돈과 시스템이 갖춰져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보는 데 기꺼이 손들고 참여해 줄 사람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순천의 사람들에게 처음 재미난 가게를 제안한 임경환 님은 재미난가게뿐 아니라 하룻밤 잘 곳이 필요한 이들이 내 집처럼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유공간 너머'라는 공유주택과, 급하게 소액의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는 공동체 은행, 학교 밖 청소년들이 주인인 재미난 제과점 등 많은 사회적 실험을 친구들과 함께 유쾌하게 하고 있다. 재미난협동조합의 재미난 실험이 널리 퍼져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면 좋겠다.
 
a

재미난가게 ⓒ 임경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광장 11월호에도 실려있습니다.
#재미난가게 #재미난협동조합 #임경환 #월간광장 #순천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