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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라-겜린, 자부심으로 연기한 '아리랑'

[평창 피겨] 한국인 자긍심-피겨의 꿈-조국애, 모든 것을 녹여낸 '감동의 아리랑'

18.02.20 14:54최종업데이트18.02.2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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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도 다르고 태어난 곳도 다르지만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은 이들이 있다.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이들은 온 마음을 다 바쳐 감동의 연기를 은반 뒤에 수 놓았다. '피겨 아이스댄스 국가대표' 민유라(23)-알렉산더 겜린(25)이 주인공이다.

민유라-겜린은 20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프리댄스 경기에서 86.52점(기술점수 44.61점, 구성점수 41.91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댄스에서 61.22점을 받은 이들은 총점 147.74점으로 이번 대회를 마쳤다.

자신의 개인 기록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것이었지만 이들에게 순위와 점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가대표로 뛸 수 있게 해준 조국에 대한 감사, 한국인으로서 느낀 자부심, 피겨선수로서 꿈. 세 가지가 함축된 프로그램을 꼭 선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이들의 목표와 다짐이 현실로 이뤄진 순간 많은 한국인들은 감동에 눈시울을 붉혔다.

쉽지 않았던 선택, 포기는 없었다

피겨 민유라-알렉스 겜린 선수가 17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싱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피겨스케이팅은 서구의 전유물이다. 1924년 동계올림픽이 최초로 개최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피겨는 항상 유럽과 북미지역 선수들이 중심이 돼 왔다. 그만큼 아시아는 소외돼 있었고, 그중에서도 한국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피겨여왕' 김연아(28)가 등장하면서 한국에도 피겨스케이팅이 있다는 것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어와 아이스댄스는 여전히 불모지였다.

2015년 태극마크를 달고 난 후 국제무대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 시작한 민유라-겜린은 한국의 유일한 아이스댄스 대표다. 이들은 국가대표로 설 수 있게 해준 한국에 감사를 표하고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올 시즌 프리댄스 음악으로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을 선택했다.

혹자는 이 선택이 '뭐 그리 어려운 선택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은 아직 변방에 불과하다. 아이스댄스는 소수점 차이로 메달과 순위가 갈리고 1점 차이는 싱글 종목에 비유하자면 5점가량 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 배경음악은 대중적으로 친숙한 음악을 선택해 심판들에게 어필해야만 한다. 하지만 홀로 아리랑은 국제 대회에서 다소 생소한 음악이었다. 김연아가 2011년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에서는 동떨어져 있었다. 잘못된 선곡은 자칫 그동안 쌓아왔던 구성점수를 깎을 위험도 크다. 

피겨 민유라-알렉스 겜린 선수가 17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싱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그럼에도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이 곡을 택했다. 평창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개최국의 어드벤티지 없이 올림픽 티켓을 자력으로 획득해야 해 네벨혼 트로피를 앞두고는 극도의 심리적인 압박감과 부담감을 안아야만 했다. 또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프로그램 가사 중 '독도'가 들어간 부분이 정치적이라고 지적해 해당 부분을 삭제해야 했다.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모두 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고 착실하게 준비해 나갔다.

꿈의 무대에서 선보인 홀로 아리랑은 한국인이라면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아름답고 깊은 울림과 자긍심을 주는 연기였다. 모든 것을 딛고 일어나 해낸 이들은 비록 기술에서 조금의 실수는 있었지만 이루고자 했던 목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모두 전하며 모든 것을 마쳤다.

태어난 곳도 외모도 다르지만 '한국인'

민유라와 겜린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다. 민유라는 재미교포이고, 겜린은 지난해 귀화전까지 미국인이었다. 민유라는 인터뷰 때마다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어머니가 늘 너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하셨다"며 한국인임을 강조했다. 겜린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항상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피겨 민유라-알렉스 겜린 선수가 17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싱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이들은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해야 하기에 매년 수억에 해당하는 비용을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 한국에서는 링크장 사정이 열악하고 미국 생활이 익숙했기에 국내에서 훈련할 수 없었다. 특히 겜린은 여동생과 함께 훈련을 했지만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여동생이 스케이트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겜린의 부모는 그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자 노후 자금까지 내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민유라는 평창이 유치된 후 한국 대표로 평창에 출전하고자, 2011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대한빙상경기연맹(ISU)이 열었던 피겨 아이스댄스 공개 오디션에도 참가한 바 있다.

그러한 악조건을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피겨에 대한 꿈,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가족의 헌신 세 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태어난 곳도 외모도 다르지만 이들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리고 한국을 알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했고,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녹여내 은반 위에 수 놓았다. 금메달이나 어떠한 물질로도 이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었기에, 메달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피겨 민유라-알렉스 겜린 선수가 17일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싱에서 연기를 펼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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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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