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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의 '볼트'와 '괴물 신예'의 스피드 경쟁

[평창동계올림픽 라이벌열전 ④] '제왕' 두쿠르스와 '현 세계 1위' 윤성빈

18.02.08 11:26최종업데이트18.02.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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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 여자싱글 종목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피겨여제' 김연아의 연기를 보며 자랐다(물론 이탈리아의 카롤리나 코스트너처럼 김연아보다 언니인 선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중 최다빈 같은 한국 선수는 물론이고 다수의 해외 선수들도 김연아가 롤모델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지금은 많은 후배들이 따르는 대선배가 됐지만 김연아 역시 어린 시절에는 이 선수의 스케이팅을 보며 피겨여왕의 꿈을 키웠다. 바로 세계 선수권대회 5회 우승, 그랑프리 대회 14회 우승에 빛나는 미셸 콴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 대단한 콴 역시 올림픽에서는 은메달 하나와 동메달 하나에 만족해야 했다. 은퇴 무대로 삼으려 했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개회식까지 참석하고도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최대 시속 130km를 넘나드는 스피드를 자랑하는 스켈레톤 종목에서도 피겨의 미셸 콴을 연상시키는 선수가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에 빛나는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가 그 주인공이다. 독보적인 커리어를 갖췄음에도 올림픽에서는 은메달 2개만 목에 걸었던 두쿠르스는 평창에서 자신의 첫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두쿠르스가 올림픽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현 세계랭킹 1위에 올라 있는 '괴물 신예' 윤성빈을 넘어야 한다.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 두쿠르스, 올림픽 금메달만 남았다

모든 것을 이룬 두쿠르스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평생의 '한'이자 마지막 목표다. ⓒ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연맹 홈페이지 화면 캡처


유럽에 위치한 인구 194만의 작은 나라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두쿠르스는 2004-2005 시즌 세계 무대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만21세의 나이에 첫 출전한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도 7위를 기록하며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당시엔 캐나다 선수들이 1,2,4위를 휩쓸며 남자 스켈레톤 종목에서 초강세를 보였다).

2007-2008 시즌 월드컵 첫 우승을 차지한 두쿠르스는 2009-2010 시즌 8번의 월드컵 대회 중 4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스켈레톤의 세계 1인자로 우뚝 섰다. 하지만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주목 받으며 출전했던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는 캐나다의 베테랑 존 몽고메리에게 0.07초 차이로 뒤지며 은메달에 만족했다(참고로 밴쿠버 올림픽에서 마르틴스의 친형인 토마스 두쿠르스는 4위를 기록했다).

비록 두 번째 올림픽 도전에서도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지만 두쿠르스는 더욱 무르익은 기량으로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다. 두쿠르스는 2011-2012 시즌부터 2015-2016 시즌까지 출전한 41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무려 34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으며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라는 닉네임을 얻었다. 하지만 2014 소치 올림픽에서는 홈 이점을 살린 러시아의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에게 밀려 또 한 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이 와중에 형 토마스는 또 4위로 입상에 실패했다).

그렇게 '올림픽 징크스를 가진 스켈레톤 제왕'으로 군림하던 두쿠르스는 2015-2016 시즌 월드컵 7차 대회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무명의 신예 윤성빈에게 덜미를 잡혔다. 두쿠르스는 2016-2017 시즌에도 월드컵 4승과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황제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올림픽 시즌인 2017-2018 시즌 윤성빈과의 맞대결에서 2승5패로 밀리며 오랜 기간 지켜 온 세계 1위 자리를 윤성빈에게 내주고 말았다.

두쿠르스에게 4번째 도전인 평창 올림픽은 매우 중요하다. 만33세의 노장이 된 두쿠르스에게 평창 올림픽은 최고의 기량으로 금메달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소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윤성빈의 홈그라운드. 올림픽 금메달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진 '스켈레톤의 제왕'이 평창에서 마지막 남은 한을 풀 수 있을까.

이번 시즌 월드컵 금5은2, 이제 윤성빈의 시대가 왔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2개를 쓸어 담은 윤성빈은 가장 유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다. ⓒ 국제 봅슬레이 스켈레톤 연맹 홈페이지 화면캡처


평범한 체대 입시생이었던 윤성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스켈레톤을 시작했다. 스켈레톤 입문 1년 만에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인 윤성빈은 2014 소치 올림픽에 출전해 16위를 기록했다. 이후 윤성빈은 평창올림픽을 앞둔 한국이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을 전략 종목으로 삼으면서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해 귀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윤성빈은 2016년 2월 월드컵 7차 대회에서 최강 두쿠르스를 2위로 밀어내고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언제나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처럼 보였던 두쿠르스가 드디어 윤성빈의 손에 닿기 시작한 것이다. 윤성빈은 2016-2017 시즌에도 월드컵 1차대회 우승을 포함해 8번의 대회에서 6번이나 시상대에 오르며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했다.

2017-2018 시즌은 그야말로 윤성빈의 전성기를 활짝 연 시기였다. 윤성빈은 올림픽 준비로 출전을 포기한 8차 대회를 제외한 7번의 월드컵 대회에서 금메달 5개와 은메달 2개를 쓸어 담으며 두쿠르스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다. 굳이 홈에서 열리는 대회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아도 윤성빈은 남자 스켈레톤 종목의 가장 강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다.

윤성빈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대담한 성격이다. 올림픽이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큰 이벤트이다 보니 대회를 앞두고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다가 경기를 그르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윤성빈은 월드컵 7차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에도 "올림픽도 월드컵이랑 비슷하지 않을까요?"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올림픽을 맞는 기분을 표현했다.

한 시대를 호령하던 독주시대를 지나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두쿠르스에 비해 윤성빈은 뚜렷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다. 이미 출전하는 대회마다 트랙 레코드를 갈아 치우고 있는 윤성빈은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도 자신의 레이스를 펼치면 큰 이변 없이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평창이 두쿠르스에게 4번째 상처를 남긴 도시로 기억되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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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마르틴스 두쿠르스 윤성빈 라이벌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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