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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돈 앞에서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나

[한뼘리뷰] 영화 <휴먼 캐피탈>, 자본주의 먹이사슬 속 어딘가... 인간을 말하다

17.01.04 16:06최종업데이트17.02.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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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캐피탈>의 한장면 ⓒ 디씨드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개인의 존엄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주로 쓰이는 이 명제는 자본 논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의 노동이 시장 경제에서 중요한 생산 요소이자 소비 주체라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돈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은 이미 '물질계'를 넘어섰다. 지금 자본은 온라인 영역에서 디지털화 된 천문학적 숫자 정보로 존재한다. 손가락 하나로 몇 트럭 분의 지폐를 지구 반대편으로 옮길 수도 있고, 누군가가 평생 모아도 만지기 어려운 금액을 다른 누군가는 하루 아침에 두 배로 불리거나 없애버릴 수도 있다. 시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굴릴 수 있는 개개인의 인간은 그 자체로 탁월한 인적자본(Human Capital)이다.

영화 <휴먼 캐피탈>은 이러한 인적자본에 내재한 먹이사슬의 추악한 민낯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작품이다. 헤지펀드를 운영하며 상위 1%의 부를 누리는 상류층과 부족함 없는 생활에도 더 큰 부를 추구하는 중산층, 그리고 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저소득층까지. 영화는 경제적 계층을 아우르는 세 가족의 이야기를 네 챕터로 엮어 같은 시간을 보내는 인물들의 서사를 각기 다른 시점으로 관찰한다.

<휴먼 캐피탈>의 한장면 ⓒ 디씨드


자전거 탄 남자가 사고를 당하는 첫 장면으로 물꼬를 트는 병렬적 구성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중산층 가장 디노(파브리지오 벤티보글리오 분)가 상류층 사업가 지오반니(파브리지오 기푸니 분)와 연을 맺고 그가 운용하는 펀드에 투자하면서 겪는 일들, 지오반니의 아내 칼라(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분)가 극장을 매입하는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디노의 딸 세레나(마틸드 기올리 분)가 지오반니의 아들 마시(구글리엘모 피넬리 분)와 사귀던 중 맞딱뜨리는 시련. 각각 1·2·3장 세 갈래로 뻗어나간 이야기가 4장 '휴먼 캐피탈'로 한데 모이기까지 영화는 수수께끼의 답을 향한 긴장감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지오반니를 중심에 둔 채 이어지는 디노와 칼라의 서사는 돈 앞에 불행해지는 인간상을 인상적으로 대변한다. 40%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집 담보 대출금을 지오반니의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디노는 그 앞에서 기꺼이 비굴해지고, 칼라는 엄청난 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겪으며 위선어린 태도로 타인을 대하기 일쑤다. 돈이 많아도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본에 매몰되고 마는 이들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 결로 인간의 '자본화'를 아릿하게 조명한다.

<휴먼 캐피탈>의 한장면 ⓒ 디씨드


지오반니가 '가격이 떨어져야 수익률이 오르는' 펀드를 운용한다는 설정은 "당신은 이 나라가 망하는 데 배팅해서 돈을 번다"는 칼라의 대사와 맞물려 의미심장하다. 헛헛한 마음에 '문화시민'을 자처하는 칼라가 철거 위기의 극장을 인수한 뒤 선임한 음악감독과 맺는 짧은 관계에서는 비겁한 권력자와 세속적 예술가의 단면이 동시에 엿보인다. 여기에 지오반니 가족의 약점을 잡은 디노가 자신보다 더한 약자를 착취해 욕망을 채우는 전개는 약육강식의 논리를 체화한 개인의 악마성을 드러낸다. 이 와중에 세레나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루카를 만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은 영화 속 유일한 희망의 불꽃으로 작게나마 빛난다.

복합적이고도 깊숙한 서사와 더불어, 영화 전반에 걸쳐 군더더기 없이 이루어진 연출 또한 <휴먼 캐피탈>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헤드폰을 벗는 시점에 맞춰 끊기는 배경 음악, 곳곳에서 사용되는 점프 컷 등 과감한 편집은 영화 속에서 특히 돋보이는 지점이다. 이 영화로 2014년 제13회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를 비롯해 자연스레 작품 속에 녹아드는 배우들의 연기는 화룡점정이라 할 만하다. 오는 5일 개봉.

휴먼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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