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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박근혜 게이트' 풍자 <무도>, 지금의 MBC라 더 서글프다

[하성태의 사이드뷰] 몰락하는 MBC... <무한도전>과 김태호 PD만 남았다

16.10.30 19:04최종업데이트16.11.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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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예능 자막 한 줄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현안에 대한 풍자라면, 시의적절한 촌철살인이라면 시청자들의 호응과 열광은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자막은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29일 방송된 '그래비티 특집' 몇 장면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그 나름의 일침이자 풍자가 담겨 있었다. 결정적 장면들은 이러하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무한도전>의 우주특집. 멤버들은 러시아에서 직접 무중력 훈련을 체험하기 전, 국내에서 풍선을 통해 화성이나 달과 비슷한 중력을 경험하고자 했다. 김태호 PD가 박근혜 대통령을 빗댄 가상의 풍자 대상은 바로 박명수. 풍선을 달고 공중으로 뜨기 전, "온 나라가 다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란 소감을 전하는 박명수에게 김태호 PD는 이렇게 답했다.

"요즘 뉴스 못 본 듯..."

그 장면이 방송되던 오후 7시경, 서울 청계광장에선 촛불을 든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던 중이었다. 그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고 TV나 SNS를 통해 시위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국민에게, <무한도전>의 이 자막은 분명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웃음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무한도전> 속 '불통왕'으로 설정된 박명수를 활용한 풍자는 또 있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만든 자막?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풍선을 달고 하늘로 떠오른 박명수에게 김태호 PD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행어'를 하사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지난 28일, 기자들 앞에 나선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우주의 기운'은 직접 쓴 건가?"란 질문에 "디테일한 건 말할 수 없다"고 대답한 장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최신 트렌드(?)는 또 있다. 박명수를 매단 풍선 더미를 두고는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란 자막이 훅 들어왔다. 행여 낯설게 느낄 수 있는 이 오방색은 어디서 등장했던가. 최순실씨의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오방낭(희망복주머니) 파일'을 연상하면 딱이다. 최순실씨가 주도했다고 알려진,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축하행사에 등장한 오방낭의 색깔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이날 박명수는 '오방색' 풍선을 달고,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하늘로 향하는 '불통 왕'을 풍자하고 있다고 보면 맞다. 앞선 거꾸로 매달려 음식 먹기 체험에서, 김태호 PD는 박명수에게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란 결정적 자막까지 달아줬다. 박 대통령 풍자의 완성이다.

아마도 러시아 훈련 장면 전까지 이날 <무한도전>을 순차적으로 시청한 시청자라면, 이러한 일련의 연속적인 풍자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어느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해, "예능도 다큐로 바꾸는 무한도전의 자막"이란 일부 네티즌들이 헌정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무한도전>의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 풍자는 올해 들어 또 있었다. 아참,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무한도전>은 MBC 문화방송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책상을 쾅쾅"부터 세월호 노란리본까지... 예능을 다큐로 만드는 자막

지난 3월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지난 10월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테러방지법 통과가 정국의 이슈였던 지난 2월 24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10여 차례 치며 테러방지법 통과 지연에 분노어린 호통을 쳤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상을 쾅쾅"과 같은 표현들이 무수히 패러디됐다. 김태호 PD는 그걸 또 놓치지 않았다. 지난 3월 방송된 '시청률 특공대 특집'에서 "울분을 토하며 책상을 쾅쾅"이란 자막을 선보인 것이다. "그러다 잡혀간다"는 웃지 못할 반응까지 나왔다.

지난 8일 방송된 500회 특집 '무도리GO'편에서는 세월호 노란리본도 등장했다. 과거 '꼬리잡기 편'에 등장했던 여의도공원 내 공중전화에 제작진이 직접 붙여 놓은 세월호 리본을 클로즈업 화면으로 잡은 것이다.

'지금의 MBC' <무한도전>이라 서글프다

29일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작년 1월 방송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 도둑으로 등장한 박명수에게 '박 앵무새'라는 자막을 선사,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박근혜 대통령 풍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 MBC


MBC는 여전히 위기다.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정국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면서, 최근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4%대로 주저앉았다. 반면 MBC 간판이었던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은 대대적인 특종 행진을 벌이며 8%대 시청률에 진입했다. 딱 두 배다. 그만큼 MBC의 채널 브랜드나 신뢰도는 하락했다고 보면 맞다.

MBC <PD수첩> 출신 최승호 PD는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이끌면서 국정원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을 만들었고, 최근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떠나간 MBC. MBC의 간판 중, 이제 남은 것은 김태호 PD와 <무한도전>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한도전> 때문에 MBC를 본다', 'MBC 전체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만 본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반면 'MBC 때문에 <무한도전>도 안 본다'는 시청자들도 부지기수다.

500회를 넘긴 <무한도전>은 여러 위기를 극복하며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MBC의 몰락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말이다. 지금의 MBC에서, '불통왕'과 '박 앵무새'에 대한 풍자를 빼놓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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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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