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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본 사람이라면, 이거 보고 다 울었다

[공모] <진짜 사나이>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 <우정의 무대>

16.08.15 10:41최종업데이트16.08.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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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입대한 것은 1988년 겨울 무렵이었다. 논산에서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의정부 306 보충대를 거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최전방 A 사단으로 분류됐다. 운이 좋게도 근무여건이 호텔이라 불리는 사단사령부 직할대로 배치됐다.

그러나, 군대의 '호텔'이란 닦고 광내고 문질러 호텔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청소해야 한다는 뜻이었음을 알아 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결코 이 '호텔'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이곳에서 생활한 3년간의 군 생활 중 정말 무서운 것은 미사일도 전쟁도 귀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무자비한 구타였다.

구타에 이유는 없었다. 인상 쓴다고 맞고, 밥 늦게 먹는다고 맞고, 군기가 빠졌다고 맞고, 대답을 크게 했다고 맞고, 선임 때문에 맞고, 졸병 때문에 맞고…. 매일 맞고, 또 맞고, 온통 구타의 기억뿐이었다. 내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맞고 또 맞고 또 맞고... 구타로 점철된 군대생활

구타의 시작은 '얼차려'였다. 군대에서 교본에 따라 합법적으로 가해지던 이 얼차려가 실제로는 구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때리기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과정이었다. 얼차려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응징으로 가하는 구타의 방법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이었다. 물론 구타의 구실을 부여하기 위한 얼차려의 방식은 더욱 잔인해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수치심과 자존심마저 밟아 버렸다.   특히 가장 악랄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얼차려는 치약 뚜껑에 원산폭격(손을 뒤로하고 머리를 박는 벌)을 하는 일이었다. 볼펜, 반합뚜껑, 야삽자루, 구둣솔 등 여러 가지에 머리를 박아봤지만 치약 뚜껑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었다. 두 손을 뒤로한 채, 두 다리를 관물대 상단에 올리면 온몸의 체중이 머리에 실린다. 군용 럭키 치약 뚜껑에 머리를 박는 건데, 혹시라도 뚜껑이 삐끗하면 이마에 살이 패여 피투성이가 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잘 버틴다 해도 5분, 견디는 자나 그렇지 못하는 자나 치욕스러운 고통은 같았다.

MBC가 제작·방영한 군인 대상 프로그램이다. 지금의 <진짜 사나이>와 비슷하지만, 감동은 훨씬 컸다. ⓒ MBC


잠자리에 들 때마다 군용모포는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썩어 문드러졌다. 갈라지고 찢어진 이 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엄마가 하염없이 그리웠다. 몰래 눈물 훔치는 내 모습이 초라해지니, '군대 가면 철 든다'는 말은 아마 나를 두고 한 말이었나 보다. 군대 가면 부모님, 특히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던가.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도 울지도 않고 오히려 무덤덤하게 안부를 물어보는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단어만 떠올려도 그저 눈물이 나고 코끝이 찡했다.

나의 아픔에 함께 눈물 흘려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우리 엄마. 연애 때도 안 써본 손편지를 엄마에게 쓰게 될 줄이야. 군대라는 곳, 참 외로운 곳이었다. 그래서 엄마만 떠올려도 정말 행복했다. 그런 힘든 군 생활을 눈물로 참아내며 버틴 것은 오로지 엄마의 힘이었다. 그리고, 미치도록 그리운 엄마 생각을 대리만족시켜준 또 하나의 인내의 원천이 있었으니…. 당시 한국군 군사력 유지의 필수 아미노산이었던 <우정의 무대>였다.

엄마가 그리울 때, 대리만족을 준 <우정의 무대>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어요. 울고도 싶어요. 사랑하는 내 어머니,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 사진 꺼내놓고, 당신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내 사람아, 보고픈 내 사람아. 잊지는 말아요, 잊지는 말아요. 사랑하는 내 사람아, 하늘이 울어야만 사나이도 운다던데. 그까짓 마음 변한 여자 때문에, 청춘이 만리 같은 새파란 사나이가 울기는 왜 울어, 왜 운단 말이냐. 이 못난 친구야, 외롭고 괴로울 때 동기밖에 없다는데, 산 넘고 물 건너 머나먼 타향에서, 기어이 제대하여 고향에 갈 사나이가 울기는 왜 울어 왜 운단 말이냐. 이 못난 친구야." -  작은별가족(강인엽), '그리운 어머니' 개사

이 노래는 당시 MBC의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무대 시그널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었다. 원래의 제목은 '원통 블루스'인데, 군대에서 구전되며 가사가 여러 번 바뀌었다. 부모와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구슬프게 흘러나오던 군가인듯 군가아닌 군가 같은 슬픈 노래. 힘든 군 생활을 눈물로 참아내며 버틴 것은 일요일 오후 TV에서 흘러나오는 바로 이 노래의 힘이 아니었겠는가?

<우정의 무대>는 1989년 4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각 부대 단위로 군인들을 위문하고 프로그램에 병사들을 직접 참가시켜 진행했다. 부대 소개와 위문공연, 그리고 병사들의 장기자랑을 벌이는 코너가 끝나면 마지막 코너는 가장 유명한 '그리운 어머니' 코너였다. 병사의 어머니나 애인이 깜짝 면회를 오는 코너였는데, 특히 어머니가 면회 갔을 때면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 놓고…"가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노래만 들었는데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다.

요즘 국방홍보 차원에서 공중파 방송과 손잡고 기획한 <진짜 사나이>와의 감동과는 차원부터가 달랐다. <진짜 사나이>가 철저히 각본에 의해 사전에 짜인 허튼 얘기라면, <우정의 무대>는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과 진정성이 있었다.

<진짜 사나이>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성

<우정의 무대>는 군 생활의 고달픔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달래던, 당시의 정서가 잘 녹아든 프로그램이었다. ⓒ MBC


"오늘 오신 어머니가 진짜 어머니라 확신하는 병사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뒤에 계신 어머니가 제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어떤 점에서 뒤에 계신 어머니가 본인의 어머니라고 확신하나요?"
"사실, 뒤에 계신 어머니는 제 어머니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나오게 됐나요?"
"입대 1주일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께 못다 한 말이 있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럼 한 번 못다 한 말을 전해보세요!"
"어머니, 이 아들 씩씩하게 군 생활 잘하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걱정 말고 지켜봐 주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충성!"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하다는 특유의 자신감 섞인 설명, 하지만 무대 앞으로 나온 사병은 가짜 아들임이 밝혀진다. 본인 어머니가 아님을 알고도 특별한 사연을 가진 아들이 큰절을 올리기 위해 올라온 것이었다. 어머니께 못다 한 말을 전하고 인사를 마치자, 간부들을 비롯한 사병들은 모두 기립하여 함께 거수경례로 답했던 그 감동. 그것이 <우정의 무대>가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진짜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뽀빠이' 이상용 <세바퀴>에 출연했던 당시의 이상용 모습 갈무리. 만약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정의 무대> 역시 장수 프로그램으로 계속 사랑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 MBC


군인들의 애환을 대변해준 뽀빠이 이상용 하면 지금도 생각나는 <우정의 무대>는 1996년 진행자가 김병조씨로 바뀌었다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다. 이상용씨가 공금횡령 누명 사건으로 억울하게 쫓겨나지만 않았다면 <전국노래자랑>처럼 장수하고도 남았으리라.

제대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군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건 아니건, 어머니 계신 곳이 이승이든 저승이든 엄마가 보고플 때는 <우정의 무대>가 그립고 눈시울부터 뜨거워진다. 내 힘든 군대생활의 외로움을 달랬고 군인들의 마음을 대변했던 <우정의 무대>는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력 증강의 '절대 무상'이었다.

'진짜 사나이' 이상용씨가 베풀어준 추억들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이고 우리가 후세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외로운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진짜 사나이들, 파이팅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군대는 어쩔 수 없는 군대다. 오늘 같은 폭염에는 유난히 군대 간 아들, 또 애인 생각이 더 절실할 것 같다. 이번 주말에 면회 한 번 가서 조촐한 <우정의 무대> 재회의 감동을 선물하자.

그리고, 이상용 아저씨…. <우정의 무대> 다시 한 번 하면 안 될까요? 어제보다 오늘, 그대의 눈웃음이 더욱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OOO' 공모글입니다.
우정의무대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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