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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잔인하게 죽었다... 자폐아가 범인을 찾아나섰다

[안 뻔한 티켓북]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16.02.01 19:59최종업데이트16.02.0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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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 웰링턴의 죽음 연극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공연 스틸 사진. 연극은 웰링턴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경찰은 처음에 크리스토퍼를 의심하지만, 크리스토퍼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크리스토퍼가 웰링턴을 살해한 범인을 찾기로 결심하면서 극이 진행된다.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태어난 지 15년 3개월하고도 2일이 된 크리스토퍼 존 프랜시스 부운의 눈에 아주 특이한 그리고 끔찍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웰링턴이 죽어 있었다. 정원용 삼지창에 찔려 있었다. 웰링턴은 옆집의 시어즈 부인이 키우는 개 이름이다.

크리스토퍼는 아주 똑똑한 아이다. 그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 그 나라들의 수도들을 외우고 있다. 7507까지의 모든 소수도 기억한다. 똑똑한 크리스토퍼는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의 구두 밑창에 커다란 오렌지색 나뭇잎이 붙어있는 것을 관찰할 정도로 예리하다.

크리스토퍼는 특별한 아이다. 그는 누군가 허락 없이 자신을 만지는 걸 견딜 수가 없다.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이 그의 몸을 만지자, 크리스토퍼는 경찰을 그만 때리고 만다. 그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크리스토퍼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에드도, 특수학교 선생님 시오반도 크리스토퍼를 말린다. 하지만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을 죽인 범인을 밝혀내기로 결심한다. <셜록 홈스> 시리즈를 좋아하는 크리스토퍼는 몹시 어려운 A레벨 수학시험에서 최고점수를 받을 계획이 있을 정도로 똑똑하니까. 개를 좋아하고, 애완 쥐 토비와 함께 우주로 날아가겠다는 꿈이 있는 자폐아 크리스토퍼. 그는 과연 웰링턴을 죽인 범인을 찾을 수 있을까.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막을 올린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아래 <한밤개>)이, 국내 라이선스 첫 공연을 오는 6일로 종료한다.

세상에는 없는 슈퍼맨과 원더우먼

▲ 심형탁의 에드 지난 1월 23일,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관객과의 대화에서 에드 역을 맡은 배우 심형탁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배우 심형탁의 첫 연극 도전은 나쁘지 않았다. 순수하게 아들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절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잘 소화했다. ⓒ 곽우신


대중문화에서 부모는 대개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는 슈퍼맨·원더우먼 같은 이들로 묘사된다. 하지만 <한밤개>에서는 다르다. <한밤개>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부모의 면모를 조명한다.

크리스토퍼의 엄마인 주디는 크리스마스 쇼핑 당시 크리스토퍼의 발작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보다 남편인 에드와 있을 때 더 안정감을 보이는 크리스토퍼를 보며 자괴감을 느낀다. 그래서 이웃집 유부남 로저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물론 크리스토퍼를 잊은 건 아니었다. 답장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고, 크리스토퍼가 혼자 런던까지 왔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게 그녀니까. 하지만 혼자서 아들을 감당할 정도로 강하지는 않다.

▲ 편지 그리고 반전 연극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공연 스틸 사진. 크리스토퍼가 발견하는 편지, 그리고 1막의 반전은 상당히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에드도 마찬가지이다. 주디가 "인내심 강한" 사람이라고 말한 에드는 크리스토퍼를 '대장'이라 부르며 아들의 꿈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다. 아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거짓말도 하고, 크리스토퍼 앞에서 경찰에게 끌려갈 때도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는 아버지. 하지만 그 강한 인내심의 에드도 주디가 떠나면서 무너졌다. 건드리면 터질 것처럼 흥분해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크리스토퍼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손이 올라가기도 한다.

에드와 주디의 크리스토퍼를 향한 사랑이 다른 부모들보다 부족했던 걸까. 크리스토퍼가 문제를 일으키는 건 에드와 주디가 제대로 크리스토퍼를 교육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건 그냥 에드가 슈퍼맨이 아니고, 주디가 원더우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교육의 문제를 부모의 책임으로 지나치게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엄마나 아빠이기 전에, 그들도 사람이다.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를 지닌 부모의 고통은 당연히 감내해야 할 성질을 훨씬 뛰어넘는다.

크리스토퍼의 질문

▲ 늘보토퍼 지난 1월 23일,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관객과의 대화에서 전성우 배우가 볼을 부풀리고 있다. 김태형 연출은 전성우 배우를 향해 "별명은 늘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영악한 배우"라고 평가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돋보이는 연기를 한다. ⓒ 곽우신


다시 시선을 에드와 주디에게서 크리스토퍼로 돌려 보자. <한밤개>의 줄기는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크리스토퍼의 이야기이다. 성장한 크리스토퍼는 뭐든지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혼자서 뭐든지 해낸 건 아니었다. 그 개인의 노력과 함께 부모와 교사, 학교와 지역 사회, 중앙의 기구까지 나섰기에 가능했다. 크리스토퍼가 A레벨 수학 시험을 보기 위해서 에드는 사비를 털어야 했고, 학교에서는 따로 시험실을 마련하는 배려를 했으며, 피터스 목사는 시험 감독을 위해 시간을 냈다. 크리스토퍼가 엄마를 만나러 런던으로 가는 길에는, 크리스토퍼의 정신 속에서 시오반과 에드가 그를 도와준다. 지도를 사는 것도, 특수학교에서 물건 사는 법을 배웠기에 가능했다.

크리스토퍼가 겪은 모험의 과정은, 그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그가 얻은 성과는, 우리가 서로 조금씩 돕기만 한다면 그가 누구이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

연극 속 크리스토퍼는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나지막하게 묻는다.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를 지켜보는 어른들은 조용히 미소 짓거나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는 해도 목소리를 내서 답하지 않는다. 크리스토퍼는 무대 위 어른들을 향한 질문을, 객석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던진다.

"그건 내가 뭐든 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가 뭐든지 할 수 있기 위해

▲ 별, 은하 그리고 꿈 연극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공연 스틸 사진. 크리스토퍼는 종종 주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은하와 우주, 별과 꿈에 관한 크리스토퍼의 이야기는,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명장면들이다. ⓒ 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그 질문을 받은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이건 비단 크리스토퍼 개인의 질문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아이, 그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가 뭐든지 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그가 과학자가 되어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인가. 모두가 평등하게 꿈꿀 수 있는 학교와 지역 사회, 국가 제도를 건설했다고, 우리는 당당하게 답할 수 있을까.

서울 성일중학교 내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직업능력개발센터를 짓는 일로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해당 학부모 사이의 갈등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지닌 부모들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중학교 학부모들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무릎에 무릎으로 맞대응할 뿐이다. <국민일보>의 지난 2015년 12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정작 서울시내에 발달장애 학생들과 초등학생이 같은 층을 사용하는 학교에서도, 아직까지 별다른 안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관련 기사 : [기획] 중학교 내 발달장애인 직업센터, 위험하다고 반대하는데… 초교에도 설치 수업 활기, 사고는 '0'). 서울시내 25개 구 중에서, 아직 8개 구는 특수학교가 단 한 개교도 서지 못했다. 크리스토퍼의 질문에 성일중학교 학부모들은 뭐라고 답할 것인가.

▲ <한밤개> 관객과의 대화 지난 1월 23일,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출연진들이 함께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동현 배우, 정승호 무대디자이너, 전성우·심형탁·김지현·김로사·한세라 배우.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합도 훌륭하다. ⓒ 곽우신


이 시대의 수많은 에드와 주디 그리고 크리스토퍼에게, 우리가 시오반 선생님, 피터스 목사, 알렉산더 부인이 되어줄 수 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아니, 되어줘야 한다. 우리가 도와만 준다면, 크리스토퍼는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 뭐든지에 뭐가 포함되냐고? 결국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을 죽인 범인을 궁지에 몰아붙인 끝에 자백을 얻어냈다. 이후 용맹한 모험 끝에 런던에 가서 엄마도 찾아냈다. A레벨 수학시험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제를 만난 크리스토퍼는 당당하게 최고점수인 A스타도 따냈다. 뭐든지 해낸 크리스토퍼는 자기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고, 우리 앞에서 다시 연극으로 보여줬다.

"크리스토퍼, 너 자랑스러워해야 돼. 왜인 줄 알아? 너 여태까지 쓴 거, 정말 잘 썼어."

▲ 연극 <한밤개> 자체 MD 한 트위터 유저(SOOC)가 자체 제작하여 공개한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MD 사진. 별, 런던, 토비, 샌디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이미지가 잘 드러난다. 본래 지난 1월 31일을 끝으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공연의 폐막이 오는 6일까지 연장됐다. 성공적이었던 초연을 마무리하는 연극 <한밤개>는, 보는 이를 따뜻하게 만드는 극이다. 당신이 어떤 작품을 봐야할지 고민이 될 때, 연출의 이름이 '김태형'이라면 믿고 티켓을 끊어라. ⓒ @soooooooo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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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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