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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화순>의 칸델라는 너무 밝다

[안 뻔한 티켓북] '화순 탄광 사건' 다룬 팩션 스탠딩 뮤지컬

16.01.22 16:46최종업데이트16.01.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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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1946년 화순 탄광 사건을 그린 스탠딩뮤지컬 <화순>이 22일과 23일 단 이틀간, 광주광역시 교육연수원 한빛관 대강당에서 관객과 마주한다. 작품은 1945년, 전남 화순의 탄광에 노동자가 고립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고립된 이들을 일제에 부역하는 관리자가 버리고 도망친 바로 그날은 공교롭게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날이었다. 전남 화순 탄광의 노동자들은 힘을 모아 갇힌 동료들을 구한 뒤, 해방의 기쁨을 나눈다.

이들은 위원회를 만들고 자립 공동체를 꾸린다. 하지만 곧이어 진주한 미군은 화순 탄광을 접수하며 노동자의 자율적 조직을 인정하지 않았다. 미군에 의해 자치권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일제 때와 비슷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946년 8월 15일, 해방 1주년을 맞아 광주 기념식을 향해 가던 화순 노동자들을 미군이 탱크를 동원해 가로막는다. 저지선을 돌파하고 광주까지 간신히 닿았지만, 이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미군에 의해 수백 명의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다. 격분한 노동자들은 화순에서 파업을 결의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미군과 경찰에 의해 다시 한 번 무참히 진압 당하고야 만다.

위와 같은 작품 내 서사는 역사적 사실에 극적인 요소를 삽입한 '팩션'이다.

어두운 현실 속 등불 같은 뮤지컬

▲ 탄광의 빛 <칸데라> 지난 2015년 11월 5일, 서울 대학로 문화공간 엘림홀에서 스탠딩뮤지컬 <화순>의 막이 올랐다. 짧게 서울에서 관객을 만난 이 공연은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서울 '리멤버' 공연을 거쳐 광주로 내려간다. 개인 대신 집단을 내세운 서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했다. ⓒ 곽우신


이 극은 상당히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이다.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출연하는 배우만 50명이다. 그 많은 배우 중에 딱히 '주인공'이라고 꼽을 만한 사람이 없다. 이름이 언급되는 이도 얼마 없으며, 인물의 개인적인 대사도 드물다. 대신 이름 없는 당시 평범한 이들의 기억을 집단화하여 재구성한다.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온 미군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고발하면서, 이 작품은 1946년과 2016년을 등치한다. 국가는 사회 혼란과 좌익 선동을 운운하며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한다. 위기에 빠진 국민이 등장했을 때, 국가는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고 몇몇 이들의 자구책만 효력을 발휘한다. 정당한 요구를 하던 피해자들은 불법 세력으로 규정되어 탄압받고, 가해자들은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는 현실.

"칸데라, 우리의 등불. 너는 별빛보다 약하지만, 이 캄캄한 밤을 환하게 밝혀주리라. 칸데라 우리의 등불. 너는 소리없이 타오르지만 깨워주리라. 우리 모두를 일으키리라. 우리 가난한 이들의 무기여. 우리 싸우는 자들의 깃발이여." - 스탠딩뮤지컬 <화순> 2막 No.23 '칸데라' 중에서

칸데라는 '칸델라'에서 나온 말로, 빛의 밝기를 재는 단위이자 탄광에서 사용하는 등불의 이름이다. <화순>에서 화순 탄광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신문을 만들고 이 신문의 이름을 <칸데라>라고 짓는다. 뮤지컬 <화순>은 마치 이 노래에 등장하는 <칸데라>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등불은 별빛보다 약하지만, 지금 이 밤을 버틸만큼의 밝기를 준다. 교실에서 배우는 역사가 망가질 때, 문화의 영역에서나마 망각과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 작품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진영 논리의 한계 진영 내의 '동지'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사기를 고취하는 작업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더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가운데 혹은 넘어서 오른쪽의 사람들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 곽우신


<화순>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민중가요 풍의 곡조에 여러 배우의 합창이 어우러진 넘버는, 마치 무대가 민주화시위 현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대사 내에 녹아있는 여러 '운동'의 개념과 용어, 스스로 "자랑스러운 노동자"로 칭하는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하는 서사. 이 작품은 민중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지극히 진보적인 관점의 극이다.

여기서 작품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화순>은 소위 '우리 편'으로 불리는 '왼쪽 진영' 혹은 '진보 성향'인 사람에게는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광주 공연을 준비하는 주최가 민주노총 광주본부라는 데서 이 공연을 주로 보고 즐길 관객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과연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이 한 명의 관객으로 앉아 있을 때, 이 작품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꼭 '남의 편'이 아니어도 말이다. <화순>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고 발버둥치지만, 그 과정에서 대중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 된 듯 보인다. 미국 그리고 주한미군은 그저 나쁜 세력으로 악마화되고 피해자의 처절한 처지만 부각한다. 그 와중에 주인공 개개인의 특별한 사연이나 이야기는 약해지고, 민중이라는 하나의 덩어리에 속하는 일부로서의 존재감만 드러난다. 그리고 한국과 국군, 미국과 미군을 향한 적개심을 키운 채, 평면적인 갈등만 남겨두고 극은 끝나 버린다.

"허나 이 비는 그치리라, 내일은 꼭 오리라. 이 밤 이 고통 이 슬픔 모두 지나가리라. 간절한 기도 애타는 소원 이루어지리라. 맑은 하늘은 새 아침은 밝아오리라. 내일은 꼭 오리라." - 스탠딩뮤지컬 <화순> 2막 No.31. '내일은 꼭 오리라 Reprise' 중에서

좋은 의미가 있는 작품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끔 잘 만들 수는 없을까? 우리는 <레미제라블>처럼 진중한 메시지와 재미를 고루 갖추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세련된 작품을 가질 수 없는 걸까? 새총 대신 총을 들겠다는 소년의 마지막 대사 후 울려퍼지는 '내일은 꼭 오리라'가 아쉬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 스탠딩뮤지컬 <화순>의 포스터 스탠딩뮤지컬 <화순>이 서울 리멤버 공연을 끝내고 22일과 23일 이틀간 광주 무대에 오른다. 의미도 있고, 나름의 울림도 있으나 대중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 극단 경험과상상


역사적 사실로서의 '화순 탄광 사건' 개요


1946년 8월 15일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8․15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로 출발하였으나 대열이 광주 부근에 이르자 미군은 6대의 전투기 엄호 아래 시위대열을 습격하여 5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 31일 광부 3000여 명이 다시 광주로 행진했으나 미군과 큰 충돌 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이후 미군정의 배급이 중단되자 11월 4일 이에 분개한 화순광업소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이를 진압하고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미군이 출동하였다.

당시 동원된 미군은 사병 12명, 방첩대 4명, 경찰 10명 등이었으며, 책임자는 피크(Peake) 대령이었다. 이들은 수많은 시위대에 둘러싸이게 되자 갑자기 총을 쏘면서 시위대에게 돌진하였다.

이로 인해 이재순 등 시위대들이 사상당하게 되었다. 당시 화순지역을 관할했던 미군부대는 미 24군단 6사단 2연대 61중대였다. 이 상황을 목격한 미 CIC요원은 '11월 4일 새벽 4시 미군은 몇 일전 시위 주모자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하여 6명의 주모자를 체포하고 광주방면으로 향하던 중 화순광업소에서 1000~2000명에 이르는 군중들이 집결하여 도로와 다리를 봉쇄하자 이에 차량을 바꿔 타고 화순군 동면 천덕리 길가의 주민 50여 명을 향해 총을 쏘고 차량을 돌진, 군중 3명이 사망하고 33명이 부상당했다'고 보고하였다.

미군은 11월 6일에도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압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다시 50여 명을 체포했다.

- 한국전쟁유족회 '[전라도지역] 화순지역사건 종합' 중에서



화순 스탠딩뮤지컬 경험과상상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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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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