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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cm의 실루엣, 김연아 날개를 펴다

[우리는 피겨 국가대표다⑥] 피겨 여왕 김연아, 오늘의 열정이 빛난다

11.10.17 14:36최종업데이트11.10.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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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김연아(22) 선수가 지난 15, 16일 미국 하버드대 브라이트하키센터에서 열린 자선 아이스쇼 '제41회 이브닝위드챔피언스' 무대에 섰다. 이 자선 아이스쇼에서 피겨여왕 김연아는 고혹적인 갈라 프로그램 '피버'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그녀가 선보인 뛰어난 연기력은 8월 31일 LA 전지훈련 출국 후, 베일에 가려졌던 그녀의 현재 기량의 윤곽을 잡게 했다. 이 기사는 그런 기량의 밑바탕이 된, 7, 8월 태릉 국가대표 여름 훈련 현장을 담아낸 취재기이다. <기자 말>

태릉 실내 빙상장에서 164cm의 실루엣이 반짝 거렸다. 피겨여왕 김연아였다. ⓒ 곽진성


2011년 8월 6일 아침. 태릉 실내 빙상장의 어둠을 가로지르는 164cm의 실루엣이 반짝거렸다. 불 꺼진 태릉의 아침을 여는 실루엣의 주인공은 22살의 피겨 국가대표, 은반을 향하는 선수의 모습에서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선수는 하얀 빙판에서 종달새처럼 자유로운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얼음을 유영하는 듯한 스케이팅은 보기에 더없이 아름다웠다. 지상 위의 작은 실루엣은, 그렇게 은반에서 찬란한 예술이 되어갔다. 얼음 위 예술을 그리는 피겨여왕 김연아, 그녀의 실루엣이 빛나고 있었다.

김연아였다

오전 11시. <나만 부를 수 있는 노래> 선율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은반에서, 피겨여왕 김연아의 스핀이 얼음을 데웠다.

"내 두 눈은 너를 바라볼 때 가장 빛이 나고"라는 노랫말과 어우러져 순백의 공간을 채색하는 부드러운 스케이팅, 김연아의 연기는 진심이 담긴 듯 강렬했다. 어지러운 스핀(회전) 속, 흩날리지 않는 아련함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연습에 몰입하는 김연아, 세계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를 밑바탕은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 곽진성


어느덧 22살이 된 피겨여왕 김연아. 그녀에겐 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다. 여러 올림픽 챔피언들이 그랬듯, 몇 년 간의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고, 홀가분하게 다른 꿈을 향해 날아갈 수도 있었다.

미래에 대한 고민, 휴식에 대한 갈망. '올림픽 챔피언' 꿈을 이룬, 피겨여왕 김연아에게도 이런 고민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아니 어쩌면, 그런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일지 몰랐다. 올림픽 이후 가진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진로에 대해 고심하는 모습이 엿보이곤 했다. 그래서일까. 김연아의 미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흔들림 없이 훈련에 임했다. 그녀는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 가는 소중한 현재라는 사실을.

미래를 고민하는 김연아는 오늘을 낭비하지 않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확신과 그로인한 부담으로 힘들어 하는 대신, 스스로 몸으로 부딪쳐 보고 내일을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피겨 국가대표팀의 여름 훈련은, 그런 김연아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환상의 트리플 점프

김연아 ⓒ 곽진성


중학교 1학년 때 첫 국가대표가 된 이후, 김연아는 8년이란 시간 동안 '국가대표' 마크를 달고 있다. 그 긴 시간을 견디게 해준 것은 한결같은 '열정'이었다.

8년 전,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무엇보다 싫었던 국가대표 막내 김연아, 그 막내는 하루하루의 열정을 쌓아 마침내 올림픽 챔피언의 꿈을 이뤘다. 그리고 어느덧 국가대표의 맏언니가 되어, 피겨 국가대표팀의 훈련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다.

피겨여왕 김연아, 8년이란 시간동안 그녀는 한결같이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였다 ⓒ 곽진성

2011년 8월의 여름.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훈련을 하는 김연아의 열정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는 여름의 태릉에서. 꾸준하게 지상훈련과 스케이팅 연습을 진행했다. 매일 매일의 단련은, 어제보다.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그려나가게 하고 있었다.
태릉에서의 여름 훈련 도중, 나이 지긋한 한 빙상 관계자가 그런 김연아를 붙잡고 "아이고, 대단하다!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 하고 장난스레 물었던 적이 있다. 당연하다는 듯, "에? 한국 사람이에요(웃음)!"라고 또박또박 답하는 모습, 그 속에 담긴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국가대표 막내에서, 맏언니가 됐던 일련의 과정. 누군가처럼 되기를 꿈꾸던 어린 피겨 스케이터에서, 누군가의 존경을 받은 최고의 스케이터로 성장한 놀라운 여정. 어쩌면 김연아 자신에게 이런 변화들은 꿈결처럼 느껴지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말한다.

"아직도 어린 스케이터 같은데, 국가대표 제일 선배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요. (웃음) 같이 훈련하는 어린 선수들을 보면 대견해요."

김연아가 대견해하는 어린 국가대표 스케이터들은, 태릉에서 그녀의 한 동작, 한 동작을 보고 배웠다. 김연아의 스케이팅을 직접 본 국가대표 막내 김해진 선수가 말했다. "연아 언니 스케이팅은 혁명이에요." 이호정 선수도 덧붙였다. "진짜~ 레볼루션이에요," 조경아 선수도 웃었다. "맞아요, 맞아요. 진짜!",

훈련장에서 최고의 스케이팅을 선보이며, 땀 흘리는 김연아의 모습은 어린 스케이터들의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 되고 있었다.

김연아의 힘찬 스케이팅 ⓒ 곽진성


김연아 선수가 스핀 연기 ⓒ 곽진성


. ⓒ 곽진성

김연아 선수의 스핀 연기 ⓒ 곽진성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의 오늘이, 꿈 많은 후배들의 내일이 되고 있었다. 국가대표 막내 세 사람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중에, 나중에 누군가 월드 1등이 나더오라도 연아 언니는 처음이니까. 계속 짱이에요!"

막내들이, '혁명'이라고 일컫는 김연아의 힘찬, 그리고 과감한, 트리플 점프가 눈부신 태릉은반 위에서 펼쳐졌다. 점프란 두려움에 맞서 힘껏 달려 나가는 그녀, 김연아는 오늘이라는 은반에서 또 다시 비상하고 있었다.

이어진, 환상적인 3회전 살코 점프(오른발 바깥쪽으로 뛰어오른 뒤 공중에서 회전을 하고 다른쪽 발로 착지) 성공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본 적 없는, 어느 스케이터도 쉽게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비거리와 높이였다. 점프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김연아의 집중력은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도한 트리플 점프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다시 도약해 완벽한 자세로 착지해내는 철저함. 실수로 인한 흐트러짐을 바로잡아내는 정신력이 놀라웠다. 몇 차례 점프를 하며 몸이 얼음에 익숙해지자, 김연아의 스케이팅은 더욱 안정되어갔다. 이날, 그녀는 이어진 수차례 트리플 점프를 연속으로 성공시켰다.

은반 위 여왕, '피버(Fever)'의 날개를 펴다

은반 위의 김연아, 날개를 펴다 ⓒ 곽진성


잠시 후, 김연아는 얼음 위에서 변신을 시작했다. 연습 때 그녀의 모습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그런데 비욘세의 노래 <피버>가 흘러나오자, 김연아의 표정과 움직임이 순식간에 붉게 채색되는 듯 보였다. 은반 위에서 여왕 김연아가 '피버'란 날개를 펴고 있었다.

김연아는 붉은 열정을 덧칠한 무희처럼, 고혹적인 선으로 은반을 수놓아 갔다. 스텝은 화려했고, 트렌지션은 아름다웠다. 허스키한 비욘세의 음색과 어우러진 피겨여왕의 현란한 움직임은 보는 이의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경쟁(시합)의 부담이 없는 갈라 프로그램은 선수들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줄 있는 무대다. 김연아는 그런 갈라 프로그램에 자신의 열정을 한껏 담았다.

김연아의 갈라 프로그램 피버는 감동적인 연기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침전된 듯했던 태릉의 분위기는 김연아의 몸짓에 파도처럼 술렁거렸다. 차가운 공간을 녹이는 '정열적인 연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김연아의 열정 가득한 갈라 프로그램 피버 ⓒ 곽진성


연기의 절정의 순간, 음악과 한데 어우러지는 김연아의 이너바우어(몸을 뒤로 젖히며 스케이팅 하는 기술)가 은반에 유유히 흘렀다. 피겨스케이팅 기술 중, 가장 예술에 가까운 상태인 이너바우어를 선보이는 김연아가 은반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피버' 프로그램에 대한 김연아의 열정은 남달랐다. 여름 어느 날, 그녀는 피버 연습 시작에 앞서, 가져온 머리핀을 정성껏 꽂았다. 연습이었음에도, 실제 공연과 같은 느낌으로 연기를 펼치기 위해서였다. 예상치 못한 깜짝 준비에, 태릉에서 연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활짝 웃었다. 그런 철저한 준비는 완벽한 연기로 끝맺음을 했다.   

김연아가 은반 위에서 선보인 환상적인 스핀 ⓒ 곽진성


매일 매일의 연습에 있는 힘을 다해, '열연'을 펼치는 김연아. 그녀의 오늘은 더욱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은반 위의 찬란한 연기가 그녀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 속에서 더욱 밝은 내일이 기대되고 있었다.

그렇게 뜨거웠던 여름 훈련이 끝난, 2011년 8월 31일. 김연아는 전지훈련지인 미국 LA 출국에 앞서 모인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선수권 출전 여부를) 몸으로 부딪쳐 보겠습니다"라고, 담담하고 짧은 한마디였다.

피겨여왕 김연아, 날개를 단 듯. ⓒ 곽진성


하지만 그 담담한 한마디 문장이, 기자의 가슴에 와닿았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앞으로 펼쳐갈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 할 수 있는 말이었기에.

또 다른 도전, 피겨여왕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그리고 LA 출국 후, 약 한 달 반 후인 10월 15일, 16일 김연아는 하버드 자선 아이스쇼 무대에 섰다. 이국의 은반 위에서 그녀는 다시금 갈라 프로그램 '피버'를 선보이며, 운집한 수많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하버드 하키센터에서 선보인 김연아의 완벽한 연기는 지난 여름, 태릉 훈련이 밑바탕이 됐음이 분명했다.

김연아의 열정 가득한 연기가 은반을 수놓았다 ⓒ 곽진성


환상적인 '피버' 프로그램으로 날개를 폈던 김연아, 이제 그녀는 10월 18일 다시 국내로 입국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창립총회(10월 19일)'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들은, 피겨 여왕 김연아의 '미래'에 관한 물음을 이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지레 짐작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해진 미래란 없다. 미래는 오늘의 노력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찬란한 내일을 만들기 위한, 22살 김연아의 뜨거운 오늘이 은반을 빛내고 있었다.

오늘을 후회하지 않는 것, 최선을 다한 스케이팅을 하는 것. 그 열정이, 8년 전 피겨 국가대표 막내였던 이의 '올림픽 금메달' 꿈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다. 어린 국가대표 스케이터들의 존경과 배움의 대상이 됐다.

미래를 향해 함께 전진하는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왼쪽부터 이동원, 곽민정, 김민석, 조경아, 김해진, 이호정, 김연아, 박연준 선수 ⓒ 곽진성


당연한 미래란 없다. 많은 부담과 긴장, 그리고 더욱 높아진 기대에 맞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맏언니는 어제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몸으로 맞서나가고 있다. '열정'을 간직한 피겨여왕 김연아, 그녀는 다른 대한민국 피겨 국가대표 동생들과 함께, 더 큰 꿈을 향해 전진 중이다.

164cm, 피겨여왕 김연아의 실루엣은 오늘의 은반 위에서 뜨겁게 빛나고 있다.

164CM 김연아 날개를 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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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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