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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지옥에도 이것만 있으면 '천국'

[영화로 읽는 세상 이야기 23] 소통이 넘치는 프랑스 교실 <클래스>

10.03.28 12:04최종업데이트11.05.2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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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영화칼럼은 시사회 후기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클래스>는 4월 1일 개봉합니다.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를 헤드 카피로 한 <클래스>는 프랑스 파리 19구의 중학교에서 실재 겪은 교실 풍경을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 (주)영화사 진진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한 '김예슬 선언'의 일부입니다.

자본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대학과 교육 현실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김예슬 선언'은 한국사회의 어깨를 내려치는 죽비가 되어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화두를 던졌습니다. 전인교육은 이미 용도 폐기됐으며, 한국 교육은 십년은 고사하고 일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한국교육을 비웃기라도 하듯, 졸업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아이들이 가가소소 웃어젖히며 나뒹구는 교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그나마 질 높은 공교육을 한다던 프랑스 중학교의 왁자지껄한 교실 안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클래스>의 한 장면입니다.

말썽꾸러기 학생들과 교사들이 좌충우돌 부대끼는 '교실'

마랭은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게 한 뒤 자유토론으로 수업을 한다. 질서와는 거리가 멀 정도로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교실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쌍방향 소통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 (주)영화사 진진



영화는 9월 신학기를 맞은 파리 19구의 중학교 교무실에 모인 교사들이 인사를 나누며 시작합니다. 프랑스어를 4년째 가르치고 있는 프랑수아 마랭(프랑수아 베고도)은 교실에서 3학년 학생들과 첫 만남을 갖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마랭을 거들떠도 안 본 채 떠들어대기만 합니다. 간신히 조용히 시킨 뒤 자기 이름을 쓰게 하지만 학생들은 사사건건 토를 달거나 휴대폰 문자질에 장난으로 응답하면서 마랭과의 험난한 1년을 예고합니다.  

그렇다고 교사들은 참교육에 매진하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새로 부임해 온 교사와 함께 학생 리스트를 짚으며 '좋은 놈, 나쁜 놈, 조심해야 할 놈' 식으로 등급을 매기고, 학생들은 물론 동료 교사에게도 짜증만 내는 모습이 교사로서의 긍지와는 거리가 먼 시니컬하고 무기력한 '선생님'으로만 비칩니다.

<클래스>는 아프리카와 아랍, 아시아 등지에서 이민 온 학생들이 공부와는 담 쌓고 이유 없는 반항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끽하는 가운데, 이들 문제아들과 좌충우돌하는 교사들이 교실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건을 종합선물 세트처럼 때론 경쾌하게 때론 묵직하게  날것 그대로 일어나는 풍경을 속속들이 들춰냅니다.

영화는 파리 19구의 중학교 교사였던 프랑수아 베고도가 실재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클래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노동문제 등 비주류 사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인력자원부>와 <시간의 사용> 등을 연출한 거장 로랑 캉테 감독은 이 영화에 실제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를 출연시켜 '교실'을 매개로 프랑스 사회가 안고 있는 단면을 해부해 리얼리티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랑스 사회 고민의 축소판...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네

학교 최고의 문제아 술래이만. 준비물은 고사하고 노트필기 조차 하지 않는 그를 마랭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과 격려로 이끌지만 교사로서 최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 (주)영화사 진진



다종다양한 학생들이 뒤섞여 있는 <클래스>는 프랑스와 유럽이 안고 있는 고민의 축소판입니다. 유로화라는 단일화폐의 유통이 곧 유럽 헌법의 제정을 보장하며 국경을 허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사회안전망으로부터 소외된 이주민들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유럽공동체를 향한 도정은 멀고도 지난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꼬집고 있습니다. 이는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집니다.

그래서 일까요? 영화는 친구와 스승과 인생을 성찰한 <죽은 시인의 사회>나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와 같이 교육 현실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대신 프랑스 공교육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립니다.

계층에 인종문제까지 겹친 교실에는 교육 불평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불안정한 교권은 학생들과의 시도 때도 없는 충돌 속에 위험 수위를 넘나듭니다. 입시지옥에 짓눌린 한국 교실의 아이들처럼 프랑스 교실의 아이들도 사방팔방 꽉 막힌 벽이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클래스>의 미덕은 이런 현실을 여과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교실 속 교사와 학생들 간의 관계에서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마랭과 학생들이 1년간 부딪치며 겪는 갖가지 사건을 통해 사제 간에 가로막힌 벽이 어떻게 하나씩 허물어지는 지를 사실대로 보여주니까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마랭의 교실에서 급기야 사건이 터집니다. 중국 학생 웨이의 부모가 불법체류자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추방위기에 몰립니다. 이어 영화는 다른 각도에서 교실을 응시합니다. 마치 프랑스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를 연상시키는, 이 학교 최고의 문제아 술레이만입니다. 이 두 사건은 학생들을 지키려는 교사들의 열정과 갈등 그리고 고민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쌍방향 '소통'이 넘치는 교실에서 프랑스의 희망을 읽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말썽꾸러기들과 우당탕탕 지지고 볶으며 갖가지 사건을 겪는 가운데 마랭과 아이들은 서로 한 뺨씩 성장한다. ⓒ (주)영화사 진진



영화는 프랑스 교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는양 보입니다. 하지만 그 속살을 파고들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학생과 교사 간에, 교사와 학부모 간에, 교사와 교사 간에 '소통'이 상존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입니다.

마랭이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고, 그를 매개로 다방면에 걸쳐 토론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공부나 성적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이 '천방지축 토론'은 상하 위계질서와 입시전쟁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한국의 교실에서는 꿈같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서열에 관계없이 모든 교사가 학교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하는 모습 즉, 교장은 안건을 발의하고 사회만 볼 뿐, 평교사들이 토론으로 결정해 나가는 모습은 우리네 학교의 교무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이것은 교사와 교사 간의 소통이 전제되어야 학생들과의 소통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비록 질서도 체계도 없이 우당탕거리는 교실처럼 보이지만 쌍방향 소통이 흐르는 교실에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향해 열려 있으며, 그럴 때 교실은 서로를 향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으며 한 뺨씩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영화는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차려 뺑뺑이와 사랑의 매와 행복은 성적순만이 휘날리는 한국 교실에 결정적으로 비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영화는 읽게 한다는 것입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를 차갑게 가로막는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며, 또 그렇게 교사가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학교운영 시스템을 갖출 때, 학생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이 '진솔한 소통'의 메시지는 <클래스>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입니다.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존재로 만나는 열린 교실을 꿈꾸며

<클래스>는 프랑스 사회와 교육 현장의 고민을 담아내고 공론화시킨 영화입니다. 한국사회와는 또 다르게 프랑스에도 교육 문제는 상존하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럼에도 학교의 주요 사안을 교사들이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자율적인 학교, 학급 평가회의에 학생 대표가 참여하는 열린 학교, 주입과 강요 보다는 토론과 소통에 집중하는 열린 교실 등은 우리에게 적잖은 숙제를 남겨 놓습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해답이나 결론을 제시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한국의 교실에서도 교사와 학생들 간에 진솔한 소통으로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지, 입시지옥의 학교와 교실에 희망의 훈풍을 불어 넣을 수 있을지 그 여부는 온전히 우리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팽팽하게 날선 갈등과 첨예한 대립 속에 마음의 문을 연 소통을 고리로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함께 배워나가는 마랭과 학생들의 모습은 쉬이 잊히지 않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남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파안대소를 나누며 축구를 즐기는 모습은 교사와 학생은 동등한 존재라는 소통의 정신을 각인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교실'은 그런 곳이어야 하니까요.

클래스 김예슬 선언 로랑 캉테 죽은 시인의 사회 닫힌 교문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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